국가가 외면한 고 김범석 소방관 최종 변론… 부친 “국가 책임” 호소

“목숨 걸고 헌신했던 소방관 처우 안타까워”

김혜경 기자 | 입력 : 2018/09/21 [12:05]

▲ 고 김범석 소방관     © 소방방재신문

[FPN 김혜경 기자] = 고 김범석 소방관 유족의 제2차 소송 변론이 20일 서울고등법원 1별관에서 진행됐다.

 

이날 법정에는 고 김범석 소방관의 부친인 김정남씨와 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 최인창 총재, 법무법인 나라 최돈익 변호사, 고 김범석 소방관의 동료들이 참석했다.

 

고 김범석 소방관은 지난 2006년부터 약 7년 9개월간 부산남부소방서와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에서 근무하면서 1천 회가 넘는 화재진압ㆍ구조 업무로 수백 명의 시민을 구조한 영웅 소방관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혈관육종암으로 당시 2살배기 아이와 아내를 두고 201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은 혈관육종이 의학적 근거가 없고 발병원인과 감염경로 등이 분명하지 않아 공무에 기인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유족보상금의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3월 말 열린 고 김범석 소방관의 제1심판결에서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기도 했다.

 

1년 정도의 변론 준비를 마치고 제2차 소송의 마지막 변론에서 유족 측은 소방청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의 ‘소방공무원 업무상재해인정을 위한 문헌검토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피고 측(공무원연금공단)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내비쳤고, 재판부에서는 원고 측에 내달 25일 선고일 전까지 소방관 업무와 혈관육종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학적인 문헌을 찾아 추가할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자리에서 고 김범석 소방관의 부친 김정남씨는 호소문을 준비해 읽으려고 했지만 당사자(원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지 못했다.

 

▲ 고 김범석 소방관의 부친 김정남씨     ©김혜경 기자

 

김정남씨의 호소문에는 “신체 건강했던 31살 젊은 청년에게 군 복무 후 약 8년간 오로지 소방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며 육ㆍ해상 재난재해 현장 말고는 달리 악성인자를 만들만한 상황이 없었다”면서 “의료기관이 밝혀낼 수 없는 분야라면 그 책임이 국가의 몫이어야 하지 가장을 잃은 유족에게 입증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중의 고통을 주는 일이며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제복을 입고 쓰러진 고 김범석 소방관에게 희귀 질병이란 오명으로 그의 이름을 지우지 말아 주시고 이 땅의 소방관에게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고 김범석 소방관의 부친인 김정남씨가 작성한 호소문 전문이다.


고 김범석 소방관 유족의 호소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공공의 크고 작은 송사를 처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있는 고 김범석 소방관의 아비 된 사람입니다.
성명은 김정남이며 나이는 70세입니다.

 

2014년 6월 23일 새벽 2시 20분, 김범석 소방관은 숨을 거뒀습니다.
심장 혈관육종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공무원 연금공단과 1차 행정소송에서 공무상 사망 불인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2차 소송 판결을 앞두고 유족에게 변론할 기회를 주신데 대해 경의를 표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늙은 아비의 가슴 속에 맺힌 통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고 김범석 소방관은 31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젊은 꿈을 펼치고자 했던 소방관이 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했습니다.

 

화재를 진압했었고
불 속에 들어가 시민을 구조했으며
바다에 뛰어들어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호수 또는 범람한 강물 속에서 시신을 인양했습니다.
병들어 쓰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살다 갔습니다.

 

국가는 청년들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해 국가 안전의 일선에 배치해두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케 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는 소위 위험직 공무원이란 명칭을 부여해 놓고 그 책임을 맡기고 있습니다.

 

화마 속으로 들어가도록 명했고 잠수복을 입고 극심한 수압 속으로 뛰어들도록 명했습니다.
국가는 그들에게 방화복과 산소마스크 하나로, 그리고 잠수복과 연결된 산소호스 하나로 소방관의 생명과 질병, 안전이 보장될 거라고 믿으려 한다면 너무 가혹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령은 있었으나 다치고 병들어 만신창이가 돼 있는 병상의 소방관, 이유도 모른 체 죽어간 소방관, 살아서도 이름 없는 소방관에게 국가는 무심했고 애써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방관의 희생은 한순간 빛나는 일회성의 의인이 아닙니다.
수백, 수천, 살신성인의 행동으로서 온 몸을 던지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국민이 가장 친숙하게 불러주는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엄숙한 법정에서 정의의 법 봉을 들고 계신 재판장님의 이름으로 부디 이 땅의 소방관에게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 주시고, 용기와 헌신을 한 줌의 재로서 떠나보낸 후 홀로 남겨진 가족에게 국가가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음을 증명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제복을 입고 쓰러진 고 김범석 소방관에게 희귀 질병이란 오명으로 그의 이름을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소방관의 꿈이 이뤄지게 해주시고,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들이 남기고 간 소방관의 명예를 다시 찾게 해 주십시오.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아비로서,
소방관으로 살다 간 자식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소방관인 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신체 건강했던 31살 젊은 청년에게 혈관육종의 인과관계는 소방관 직무 약 8년 동안 육ㆍ해상 재난재해의 현장 말고는 달리 악성인자를 만들만한 상황이 없었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군 복무 후 오로지 소방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한 것밖에 없었으니 270회 화재출동과 751회 구조출동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공무에 기인한 질병원인과 감염경로가 거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유족의 확신입니다.

 

국가는 소방관의 희귀암과 작무와의 인과관계를 현대의학으로 밝혀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기각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헌신했던 소방관의 죽음에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방관은 국가안전의 수호자로서 직무의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결과에 따른 최종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기관이 밝혀낼 수 없는 분야라면 그 책임이 국가의 몫이어야 하지 가장을 잃은 유족에게 입증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중의 고통을 주는 일이며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고, 국가가 그리해서도 아니 되는 일입니다.

 

의학적 근거와 감염경로가 불명확하다는 한마디 말로서 죽은 자의 희생과 헌신 전부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그 말을 수용할 수 없는 유족의 다툼은 국가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할 뿐입니다.

 

유독 소방관에게 많은 희귀질환 발병은 피할 수 없는 유독성 물질의 노출과 스트레스, 해저수압, 오염된 수질, 트라우마, 외상 등 사람에 따라서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인체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과입니다.


그러한 환경인자는 언제든 소방관을 공격하고 있는 독창이라 할 수 있으나 소방관은 온몸으로 방패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위험직 소방관의 희귀질환을 완벽하게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행정이 없다면 속수무책인 그들의 희생을 국가가 배려함으로써 소외된 유족과 바라보는 많은 국민의 마음도 함께 위로가 되리라 봅니다.

 

이 시대의 재난현장에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의, 자연적 또는 화학적 인자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죽음 앞에 의학적 소견이 중요하겠지만, 환경평가가 우선돼야 합니다. 그곳이 소방관에게 찾아온 절망 앞에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병마의 근원이 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재산을 보호하는 엄청난 과정들이 질병의 불확실한 인과관계에 의해 모두 지워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언제까지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수백, 수천,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들의 위험직무 전체가 부정되고 유족을 두 번 울릴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이 소방관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름 없이 죽어가야 하는지, 헌신했던 소방관에 대한 처우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감히, 국가에 묻겠습니다.
위험에 처한 수백의 생명과 재산을 구해냈던 소방관의 헌신 가치가 어떻게 근무 중 찾아온 병마의 불확실한 인과관계보다 못 한단 말입니까?

 

국가가 만들어 놓은 인과관계의 틀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방관이 어떻게 병사해야 하고 얼마나 더 만신창이가 돼야하는 것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임을 다 했던 그들의 명예가 기억되도록 해주십시오.
시민의 희생을 대신했고, 고통을 함께 나눴던 숭고한 직업,
절망의 늪에서 구조돼 새로운 삶을 되찾아 준 국민의 심부름꾼,
남은 유족이 소방관으로 살다간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안전한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소방관에게 발암물질로부터의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욱 안전한 장비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적어도 소방관의 안전과 질병의 예방은 장비로부터 나와야 하며, 근무 중 병사한 소방관의 죽음에 대한 인과관계는 국가가 입증해야 옳은 절차라 할 것이며 이제는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한 힘겨운 다툼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병상에서 더 이상 출동할 수 없는 그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을 따뜻하게 배웅해 주는 것이 국가의 손이어야 하며 그것이 제도적 개선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현장의 소방관은 생명을 살리는 용기와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 존중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 걸음 돌아서면 남편이며, 아빠이고, 아들이며, 국민입니다.

 

전문 소방인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소방관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내일도 있어야 할 국가의 또 하나의 재산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흘러내린 검은 땀방울이 떳떳하고 영예로워야 합니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생명을 살리고 안전과 구조, 구급을 알려주는 시민의 이웃이며 믿음입니다. 그것이 고 김범석 소방관이 남기고 간 흔적입니다.

 

아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범석아 너는 소방관으로서 열심히 살았다.
수고했다.
편히 쉬어라.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몰랐고 만나보지도 않았던 고 김범석 소방관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공감하고 동참해주신 많은 분의 응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119소방관 직무를 수행하고 계시는 모든 소방관의 건강과 안전이 함께하시길 바라고 부상과 투병, 재활의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소방관 여러분들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족의 작은 변론일지라도 부디 귀담아 주시고 한 젊은 소방관의 죽음에 대해
살아생전 맡은 바 책임에 열정을 다했고 주어진 소임에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법으로써 살펴보시고 양심으로서 판결해 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2018년 9월 20일
고 김범석 소방관 부친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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