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부터 외면받는 소방관들… “재해보상제도 개선해야”

고위험 현장 소방공무원 재해보상제도 개선 심포지엄
두 번 상처받은 순직자 유가족들 “환경부터 조성돼야”
전문가들 “소방관 재해보상제도 변화 필요” 한목소리

유은영 기자 | 입력 : 2018/11/28 [14:47]


[FPN 유은영 기자] = “신랑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위험직무순직을 받고자 7개월 동안 달렸습니다. 신랑이 순식간에 사망해버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소방관으로서 명예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위험 현장근무 소방공무원의 재해보상제도 개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올해 5월 10일 숨진 고 이정렬 소방관의 아내가 참석해 울음을 겨우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고 이정렬 소방관은 현장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고강도 종합전술훈련을 마치고 귀가한 이후 자택에서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다.


“막내가 6살인데 아직 아빠가 돌아가신 줄 몰라요. 아빠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줄 압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고통이 너무 커요. 강연희 소방관 유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순직 이전에 먼저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많은 소방관이 사망 시 순직을 신청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외상으로 사망하지 않는 이상 그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소방관이라 할지라도 순직 판정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 심포지엄은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서울 중구성동구갑)과 소방청, 대한변호사협회가 함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점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 자리에는 고 이정렬 소방장의 아내 외에도 고 강연희 소방관의 유족이 참석했다. 고 강연희 소방관이 속해 있던 관할119안전센터 정은애 센터장은 객석에서 “보통 소방공무원의 18.6%만 폭행 사실을 신고하는데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한 여자 소방공무원 경우 신고율이 8% 정도밖에 안 된다”고 호소했다.


정 센터장은 “이런 분위기에서 여자 구급대원은 폭행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다. 고 강연희 대원도 본인만 맞았다면 신고하지 않았을 거다. 1년도 안된 후배가 맞으니 폭행 신고를 했을 것”이라며 “고 강연희 소방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이 됐을 거다. 단순히 고 강연희 소방관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고 강연희 소방관은 지난 4월 2일 도로 위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주취자를 병원으로 이송 후 두부 폭행과 성희롱, 폭언으로 인한 병원치료 중 사망했다. 그녀 또한 사건 발생 당시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직’은 인정받았지만 ‘위험직무순직’으로는 아직 인사혁신처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 많은 현행 재해보상 제도… “개선 시급”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주어진 변호사(소방활동 방해 관련 민, 형사 소송사례 분석을 통한 소방관 권익보호 실태 고찰), 이용재 변호사(공무상 재해의 업무관련성 평가와 담당과의 문제), 남화영 소방청 소방정책과장(순직ㆍ공상 소방공무원 보상제도 및 정책방향)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 주어진 변호사ㆍ대한변협 소방관법률지원단운영위원회 간사     © 최누리 기자


주어진 변호사는 “소방관들은 빈번하게 폭언ㆍ폭력 등 소방활동 방해 행위에 노출돼 있으나 민, 형사상 소송을 제기해도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오히려 역으로 악성 민원이 제기돼 고통받는 등 제대로 된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 소방관들이 적극적인 법정대응이 가능토록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며 “법원 또한 소방관에 대한 폭언ㆍ폭행은 곧 재난에 대한 국민 전체의 대응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로 무겁게 인식하고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형사 고소ㆍ고발 사안 564건 중 대부분은 벌금형에 처했으며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147건에 불과하다. 이중 집행유예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이용재 변호사ㆍ대한변협 소방관법률지원단운영위원회 위원     © 최누리 기자


이용재 변호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정으로 소방공무원을 포함한 공무원의 재해보상의 인정 범위와 보상범위가 확대됐으나 여러 해에 걸친 연구 결과도 반영하지 않았다. 감정인 지정과 감정인의 감정 의견으로는 개별 사건에서 재해보상이 이뤄져야할 공무원들도 보호범위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을 맞아 구체적인 공무상 재해의 인정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찬희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정책담당관은 “열린 마음으로 소방청과 대화하겠다”면서 “실제 국가유공자 지정 입증에 어려움이 있어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있으나 소방관이 출동해 일반적인 화재현장에서 노출되는 빈도라든지 출동 횟수 등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면 보건안전관리시스템과 같은 기초연구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숙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만성 유해요인 노출에 의한 공무상 질병에 대한 보상은 잘 이뤄지지 않고 직업성 암에 대한 노출과 암 발생과의 관련성을 개별 소방관이 입증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소방청과 인사혁신처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 설명에 따르면 아리조나 주법 23-901.01에서는 직업성 질환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는 뇌종양이나 방광암, 직장암, 대장암, 림프종, 백혈병, 호흡기 선암 등이 소방관이나 경찰관에게 발생해 장애나 사망할 경우 직업성 질환으로 가정한다.


특히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고용 전 신체검사에서 암의 증거가 없고 최소 5년간 유해업무에 배정된 경우에는 발암물질이 암 발생과 합리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은퇴 소방관과 경찰관에게도 적용된다.


정 교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나 아리조나 주법에서 인정해주는 소방관의 직업성 암처럼 우리나라 소방관에 대해서도 향후 인정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현직 소방관인 하종봉 부산소방안전본부 보건안전팀장이 부산 직원들의 실사례를 들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그간 심의 결과를 보면 의학적으로 원인 불명이면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모두 불승인됐다.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원인이 나오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나 발병원인 물질에서의 근무기간 등을 고려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되면 입증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앞으로는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의학적 원인만 볼 것이 아니라 정황과 제반 사항을 고려해 판단하는 제도로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김구연 CBS노컷뉴스 기자는 고 강연희 소방관을 예로 들며 “모든 논의의 시작점은 소방관이 만나는 비합리적인 일상이 아닐까 싶다”면서 “이런 문제가 왜 이제야 공론화되는지,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누군가 떠나고 순직이 돼야 이런 얘기를 나누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취재 중 강연희 소방관 자녀가 ‘아빠, 우리 엄마는 언제 현충원 가?’라고 물었다. 이는 강연희 소방관 남편이 해줄 답변은 아닌 것 같다. 변호사와 인사처, 소방청, 입법부, 행정부가 머리를 맞대 머지않은 시간 내에 답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남화영 소방청 소방정책과장     © 최누리 기자


한편 소방청은 이 같은 소방공무원의 순직과 공상 입증지원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관계부처와의 협의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관련 부서와 소방과학연구실, 각 시ㆍ도, 대한변호사협회, 성심병원 등이 함께 당사자나 유족의 정신적인 부담과 경제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국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한 관련법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지만 길게는 18개월 동안 잠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용인시정)이 발의한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에는 재난현장에서 3년 이상 종사한 공무원이 암, 뇌혈관 등 질환 발병 시 인과관계 입증을 공무원연금공단이 부담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올해 4월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울산 중구)이 발의한 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에는 재난현장에서 5년 이상 종사한 공무원이 암 뇌혈관 등 하위법령에서 정하는 질환이 발병될 경우 인과관계 입증을 인사혁신처장이 부담토록 했다.


지난 16일에는 실기나 실습, 훈련 후 24시간 이내 사망한 경우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토록 하는 내용의 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을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부산 동래구)이 발의하기도 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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