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폭발하는 불량 소화장치 수습 도와준 한국소방산업기술원“법 근거도 없는데” 갑자기 도입된 A/S용 약제 용기 부분품 검사
|
[FPN 최영, 박준호 기자] = 불량 주방 자동소화장치를 대량 유통한 S사가 피해자들에게 불량 사실을 숨기면서 뒷배까지 채울 수 있었던 까닭은 따로 있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 지난해 말 A/S 전용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검사 제도를 뜬금없이 시행해줬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S사에게는 불량 제품의 수리와 교체를 한층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던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취재 결과 확인됐다.
주거용 주방 자동소화장치는 소화 약제를 저장하는 ‘용기’와 화재를 감지하기 위한 ‘감지부’, 가스누설을 알려주는 ‘탐지부’, 신호 수신과 경보를 발해주는 ‘수신부’, 감지부 신호를 받아 밸브 등을 개방시켜 주는 ‘작동장치’, 가스 공급을 차단해 주는 ‘’가스차단장치’ 등 다양한 제품이 함께 구성되는 시스템형 소화장치다.
소방관련법에 따라 강제 인증인 ‘형식승인’을 받아야 하는 이 주방 자동소화장치는 법규정상 이 같은 여러 구조품을 모두 갖추지 않으면 형식승인이나 유통 전 제품검사(개별검사)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S사는 지난해 말부터 폭발 사고가 이어지는 ‘소화약제 저장용기’ 부분만을 별도로 검사받아 A/S에 사용해 왔다. 이는 S사가 불량 소화장치를 시스템 전체가 아닌 용기만 교체해주면서 비교적 싼 값에 공동구매 형태로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문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규정상 불가능한 소화약제 용기의 부분품 검사가 갑자기 허용됐다는 점이다. 기술원이 이 부분품 검사를 시행해 준 배경과 절차도 석연치가 않다.
규정에도 없던 A/S용 부분품 검사 시행 배경이…
기술원이 지난해 말 갑자기 시행한 소화약제 용기의 부분품 검사는 소방관련법(기술기준)에 근거조차 없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행된 이유는 뭐였을까.
<FPN/소방방재신문>과 국회 김영호 의원실이 그 배경을 추적해 본 결과 배후에는 황당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또 이 과정에서 기술원이 허위 문서를 작성해 관련 업계에 공지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기술원은 지난해 10월 12일 주방 자동소화장치의 용기검사를 시행하겠다고 공표하면서 관련 제조업체들에게 회의 자료를 배부했다. 이 문건에는 기술원과 소방기구공업협동조합(소방산업협동조합, 이하 조합)의 3차 정기협의회 당시 주거용 주방 자동소화장치의 용기검사 관련 제안을 받았다고 적시돼 있다.
조합은 소방용품 제조업체가 모인 민간단체다. 기술원은 이날부로 조합의 제안 요청을 수용해 앞으로는 교체용 A/S 부분품으로 소화약제 저장용기에 대한 검사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국회 김영호 의원실에 제출된 ‘소방산업기술원과 조합의 회의 등 개최 현황 자료’와 ‘공문서 수발신 목록’에서는 2018년 기술원과 조합과의 3차 회의를 연 사실이 없었다. 제조업체들에게는 조합과의 공식 회의를 통해 시행하는 것처럼 꾸며 놓고 실제 회의는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술원 측은 “회의 문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초안을 작성했었는데 이 때 잘못 표기됐던 것”이라며 정기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소방기구공업협동조합 임원이 2018년 9월 6일 방문해 면담하는 과정에서 제안이 있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정기협의회는 아니지만 조합이 건의한 건 맞다는 설명이다.
조합 제안으로 주방 자동소화장치의 부분품 검사가 시행됐다는 사실은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조합 이사장이 폭발 사고를 일으키는 소화장치 제조업체 S사의 대표이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방용품 제조업을 대표하는 조합의 이사장이 직위를 남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방 자동소화장치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A/S용 소화약제 용기에 대한 별도 검사는 과거부터 필요하다고 기술원 측에 요청했었지만 늘 세트(시스템형 전체)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기술원 입장이었다”며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시행한다는 기술원이 이상했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10년이 넘도록 A/S용 제품의 별도 검사가 이뤄진 적이 없었던 걸 하루아침에 푼다고 하니 황당했다. 하지만 필요성은 분명 있기에 큰 문제로 보진 않았다”고 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조합에 소속된 주방 자동소화장치 제조사에 부분품 검사 논의를 한 적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업체들은 모두 “논의한 적이 없다”고 답변해 왔다. 또 당시 조합 면담 자리에 참석한 주방 자동소화장치 생산 업체는 S사 대표(조합 이사장)가 유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합에 소속된 한 주방 자동소화장치 업체 관계자는 “조합에 회비를 내고 있지만 사실 제구실을 못해 활동을 거의 안 한다”며 “조합에서 주방 자동소화장치의 부분품 검사가 논의된 적도,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합 이사장을 역임 중인 S사 대표가 업계와의 논의조차 없이 자사 제품의 불량 문제 수습을 위해 약제 저장용기의 부분품 검사를 건의한 셈이다. 그간 십수 년 동안 주방 자동소화장치의 전체 세트품 검사를 고집하던 기술원이 돌연 부분품 검사를 수용하겠다며 기존 방침까지 뒤집자 업계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분품 검사 시행하겠다” 공표 하루 만에 제품 승인받은 S사
기술원이 주거용 주방자동소화장치 약제 저장용기의 부분품 검사 시행을 계획한 시점은 지난해 9월 12일. 하지만 관련 제조업체들에게 정식 공지된 건 10월 12일 제조업체 회의를 통해서다. 이때 주방 자동소화장치 제조사들은 소화약제 용기의 부분품 검사방안을 기술원으로부터 처음 안내받았다.
그런데 S사는 이 회의 이후 단 3일만인 10월 15일 최초로 형식승인을 받는다. 주말이었던 10월 14일과 15일을 제외하면 단 하루 만에 형식승인 접수와 승인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 셈이다. S사는 형식승인을 받은 뒤 고작 4일 만인 10월 19일 1천 개의 A/S용 제품을 검사받았다.
용기 부분품 검사의 시행 공지 후 딱 일주일 만에 A/S제품의 공급 체제를 갖춘 것이다. 회의 당일과 휴일, 형식승인 획득일을 제외한다면 최초 검사를 받는 데까지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방법상 형식승인을 받아야 하는 소방용품은 짧게는 35일에서부터 길게는 120일이 소요된다. 주방용 자동소화장치도 규정상 75일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용기만 A/S용으로 형식승인을 받는다 해도 너무 빠른 수준이라는 게 소방용품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원은 보통 업무가 포화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식승인 처리 기간에 임박해서 내주는 경우가 많다”며 “형식승인 접수 후 하루 만에 이뤄지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현재 이 A/S용 제품의 형식승인을 보유하고 있는 제조사는 S사를 포함해 두 곳이다. 국내 공급량 1위를 차지하는 다른 업체의 경우 A/S용 제품 검사 시행이 공표된 지 65일(주말 제외)이 지난 올해 1월 22일이 돼서야 형식승인을 받았다. S사는 하루 만에, 이 업체는 신청 후 1개월 정도가 걸렸다.
이후 최초 제품검사는 형식승인 후 16일(휴일 제외)이 지난 2월 18일 진행됐다. 단 하루 만에 형식승인을 받은 뒤 4일 후 제품검사까지 모두 마친 S사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 두고 한 업계의 관계자는 “기술원이 해도 너무 했네”라는 짧은 말로 의견을 대신했다.
검사 체계 바꿔준 덕에 수천만원 아낀 S사
기술원이 갑자기 시행한 소화약제 저장용기 부분품 검사는 S사가 폭발 제품을 교체해주는 데 들어간 제품 검사 수수료를 5천만원이나 절감해 주는 역할을 했다.
관련 법상 주방 자동소화장치는 대당 4609원의 검사 수수료(부가세 별도)를 기술원에 내야 한다. 하지만 기술원이 법 규정도 없는 A/S용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부분품 검사를 시행하면서 한대 당 약 390원 정도로 수수료가 줄었다.
S사가 지난해 제도 시행 직후부터 검사받은 A/S용 제품의 수량은 1만3700개로 파악된다. 만약 정상적으로 현행 제도에 맞춰 세트 검사를 받았다면 6314만3300원이 소요됐어야 한다.
그러나 S사는 부분품인 소화약제 용기만 검사받으면서 검사 수수료로 534만3000원만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A/S용 부분품 검사 도입을 통해 S사는 5780만원 가량을 아낄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폭발하면 어쩌나…” 같은 업체 제품 써야 했던 피해자들
“폭발 사고가 난 제품을 또 설치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동일한 회사 제품을 누가 다시 설치하고 싶겠어요. 근데 호환이 안 되고 다시 전부 설치하려면 30만원이나 든다니 어쩔 수가 없죠”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폭발 사고를 겪은 한 주부는 폭발한 소화장치가 걱정돼 다른 기업의 제품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스템형 주방 자동소화장치를 다른 메이커 제품으로 달면 전체 시스템을 모두 교체해야 하고 덩달아 교체 비용은 수십만원대로 치솟기 때문이다.
S사 제품은 소화약제 용기만을 교체해도 호환이 가능하다. 공동구매라는 명분으로 가격까지 할인해 준다고 하니 다른 업체 제품을 선택하는 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의 목소리다.
기술원의 A/S용 제품 검사 시행이 한몫을 했다. 용기만 검사해 주면서 S사 입장에선 이미 공급해 놓은 불량 제품의 문제 부분만을 더 수월하게 수리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입주자들은 폭발 제품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타 업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겨 버렸다.
최영, 박준호 기자 young@fpn119.co.kr
‘주방자동소화장치 폭발’ 관련 반론보도문
소방방재신문은 지난 2019년 9월 8일, 9월 30일, 10월 3일 세 차례에 걸쳐, ①S사가 제조한 ‘주거용 주방자동소화장치’가 제조 공정에서부터 불량을 원인으로 ‘폭발’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였고, ②S사는 이러한 불량 사실을 알고도 숨기거나 오히려 제품 교체를 통해 많은 이득을 거두고 있으며, ③S사의 대표이사가 한국소방기구공업협동조합(한국소방산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의 직위를 남용해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부분품 검사를 시행 받는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S사 측은 “①S사의 ‘주거용 주방자동소화장치’는 제조 공정에서 수차례의 비파괴검사와 부정기시험 등을 거치고 국가 공인 검증기술원으로부터의 검정에 합격한 정상품으로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제품의 소화용기와 헤드가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원인파악 및 해결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②S사는 정해진 법에 따른 담보책임기간 이내에 있는 소화용기에 대해서는 이를 무상 수리하고, 그 기간이 지난 제품에 대해서는 가능한 저렴한 가격에 이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③S사의 대표이사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소화용기 부품 교체 등 합리적인 A/S가 가능하도록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부분품 검사 시행을 요청하였던 것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소방방재신문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