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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 ‘현장 오염물질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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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학교 이형은 | 기사입력 2020/02/26 [13:10]

보이지 않는 위험 ‘현장 오염물질의 이동’

서울소방학교 이형은 | 입력 : 2020/02/26 [13:10]

고온의 화마로부터 피부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화복, 방화장갑, 안전화, 두건을 비롯해 소방대원의 호흡기를 보호하고 호흡을 돕기 위한 마스크, 약 30분 정도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채워진 공기용기, 용기를 지탱하기 위한 공기호흡기 등지게, 요구조자에게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보조마스크까지 착용하면 비로소 소방관들이 화마와 맞서 싸울 장비들이 갖춰진다.


하지만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착용해도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탄화물질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탄화물질들은 보이지 않게 소방관들의 보호장비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피부 혹은 호흡기로 흡수된다.

 

과거 발생했던 화재들은 나무나 종이가 타는 일반적인 화재였던 반면 현대 화재는 플라스틱과 같은 다양한 인공자재를 통해 제작된 제품들이 많아 연소 시 대표적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 무수한 독성가스를 내뿜고 탄화된 후 유독성 발암물질을 남긴다.

 

▲ 일반인들에 비해 발병 비율이 높은 소방관들  © Honeywell

2017년 10월 캐나다 오타와대학교 연구팀은 미 화학학회지를 통해 소방관이 화재 진압 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에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캐나다 소방관 24명을 대상으로 화재 전후 이들의 피부와 옷에 묻은 PAH와 소변에 남아있는 PAH 대사물질을 측정했다. ‘PAHs’는 세포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발암물질로 주로 목재ㆍ플라스틱ㆍ가구ㆍ전자제품 또는 건축자재가 탈 때 발생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닌다.


그 결과 소변에 들어있는 PAH 대사물질이 화재 발생 전보다 후에 3~5배 높았다. 연구팀은 “이 정도로 증가한 수치는 DNA 돌연변이의 위험성을 평균 4.3배 높인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제니퍼 케일 박사는 논문을 통해 “소방관의 피부를 통해 발암물질인 PHA가 몸에 흡수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화재 진압 직후엔 피부에 묻은 유독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암 발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아울러 비슷한 연구를 진행한 미국 신시내티대학 직업-환경-폐 의학 교수 제임스 로키 박사는 ‘직업-환경의학저널(Journal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최신 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미국 내 총 11만 명의 소방대원을 대상으로 암 발생률을 조사한 총 32건의 연구보고서를 종합 분석했다.

 

▲ 미 의회 소방단체(Congressional Fire Services Institute)  

 

결과를 살펴보면 소방관의 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고환암 100%, 다발성골수종 50%, 비호지킨림프종(임파선암) 50%, 전립선암이 28%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키 박사는 소방관들은 보호장비를 착용함으로써 열과 화학물질로부터 보호되고 차단될 수 있지만 화재진화 작업이 끝나고 소방서로 귀소 후 이를 벗었을 때도 옷과 장비에 묻어있는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즉시 샤워를 하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소방관들의 발암이슈와 관련, 지난해 5월엔 미국에서 ‘소방관 암 등록 법안(Firefighter Cancer Registry Act of 2018)’이 상원을 통과해 대통령 서명을 거쳐 제정까지 완료된 상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이를 바탕으로 소방관 개개인의 보건안전 이력 추적 관리를 위한 등록을 요청하고 있다. 입사년도와 현장활동 유형 등 다양한 정보가 등록 대상이다. 수집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장 단위별 개선 장비와 노후장비는 물론 안전 규정을 비교 분석해 소방관의 안전 예방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 화재진압 후 현장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소방대원들  © Task Force Tips website

특히 미국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매년 200만 불의 예산을 별도 편성해 소방관 암과 관련된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현장활동, 특히 극심한 화재 현장에서의 진압활동 이후 차량 탑승과 안전센터로 귀소 전 현장 오염물질 제거 절차(decontamination)를 시행하는 것이 당연시 돼 있다.(물론 아직 하고 있지 않는 곳도 있다.)


미국 소방관들은 이러한 현장 오염물질 제거 절차를 통해 발암을 예방하고 발암률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소방관의 발암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대돼 방화복 세탁기 전면 지급하거나 청사 환경ㆍ기능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소방관의 공상 관련 법안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현장에서 검게 물든 방화복을 입고 차량에 탑승해 그대로 안전센터로 복귀한 후 그 방화복을 입고 그대로 다음 출동을 준비한다. 격렬한 화재 현장으로 지친 몸에 에너지를 보충하고자 컵라면과 같은 간식을 먹는다.


얼굴에 시꺼먼 그을음과 재가 묻은 소방관은 정말 영웅적이고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탄화물질들이 이동하는 경로는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2018년 2월 미국 팜비치 소방서와 실베스터 암 연구 센터는 소방대원이 현장 활동 중 보호장비와 장비들에 묻은 현장 오염물질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얼마만큼 이동하는지 육안으로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 실베스터 암 연구 센터의 알베르토 박사  © Youtube

 

▲ 슈퍼파우더를 묻히고 있는 소방관  © Youtube


연구 절차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먼저 소방관들은 모든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망으로 제작된 좁은 격실로 들어가 현장 활동을 하는 것과 같은 동작을 취하면 연구진들이 위에서 소방관의 몸에 적외선으로 검출되는 슈퍼파우더(미국에서는 도둑을 잡을 때도 사용한다)를 뿌린다. 이 슈퍼파우더가 바로 소방관들이 현장 활동 시 보호장비와 기타 장비에 묻는 현장 오염물질, 즉 발암물질 인 것이다.


이렇게 묻은 현장 오염물질들은 소방관과 함께 차량을 타고 안전센터로 이동하고 안전센터에서 모든 장비를 벗고 세척작업을 마친다. 그러나 대원들에게는 놀랍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물질들이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오염물질은 소방차량을 비롯해 소방관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의 모든 집기와 컴퓨터, 가구 그리고 휴게실 심지어는 대기실의 침대까지도 묻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소방대원들이 이러한 현장 오염물질을 개인의 집까지 가져간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발견됐다는 점이다.


소방관의 발암을 예방하고 보다 건강한 근로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가능하다면 현장에서 묻은 다량의 오염물질은 현장에서 즉시 씻어야 한다. 사실 필자는 위와 같은 현장 오염물질 제거를 주제로 본부 장비개발대회에 출전해 발표한 바 있으나 동절기 방화복이 얼어버리고 젖은 채로 차량을 탑승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심사위원의 반발에 채택 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 오염물질 제거의 중요성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되고 있기에 분명 우리나라도 곧 도입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현장활동 후 샤워를 하지 않고 퇴근한 아빠와 공놀이를 한 아이의 손바닥에서 검출된 현장 오염물질  © Youtube

 

▲ 사무실 키보드와 각종 가구에 묻은 현장 오염물질  © Youtube

 

두 번째로 출동 후에는 방화복을 다른 방화복으로 교체하거나 혹은 깨끗하게 세탁한 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현장 오염물질 제거 후 즉시 젖은 방화복을 밀봉해 귀소 후 세탁, 정리하거나 혹은 전문 세탁업체에서 수거해 세탁 후 재납품하는 서비스가 있다.

 

우리도 실정에 맞는 대안과 해결책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올바른 세탁과 올바른 건조는 방화복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입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과정인 만큼 소유하고 관리하는 소방관 각자의 노력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화재진압 후에는 반드시 1시간 이내에 샤워해야 한다. 발암물질이 피부로 흡수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샤워하는 것을 권장한다.


사실 이러한 노력으로도 100% 현장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만큼 소방관들이 접하는 현장 오염물질, 즉 발암물질의 농도와 범위가 넓다는 뜻이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은 공무원 중 가장 낮다고 한다. 퇴직해서도 질병으로 사망하는 소방관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본인의 생명은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는 소방관의 삶은 마치 촛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방관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가족이다. 모든 소방관이 각자의 노력을 통해 현장 오염물질 제거에 대한 의식과 그 인식을 개선하고 나뿐만이 아닌 동료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발암 예방을 노력해야 한다.

 

퇴직 후 멋진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소방관들이 되길 희망해 본다.

 

서울소방학교_ 이형은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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