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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의 미 공군 소방서 이야기]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다른가?

재난 현장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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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 이건 | 기사입력 2020/03/18 [10:00]

[이건의 미 공군 소방서 이야기]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다른가?

재난 현장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고민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 이건 | 입력 : 2020/03/18 [10:00]

 


이건 소방검열관은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 화재예방팀 근무
중앙소방학교, 서울소방학교 등 외래교수 
소방칼럼니스트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대외협력위원
2018 충주세계소방관경기대회 명예홍보대사
저서 <주한미군 취업가이드>,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이 글에서는 결코 단순하게 미국 소방이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소방관은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라는 역할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재난 현장 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또 다른 시각에서 함께 고민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매년 상당수의 소방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미국 소방에 대한 관심과 연구 수요가 그만큼 증가한 까닭이다.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미국의 정책과 기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시스템을 우리 현장에 적용하기 전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법과 규정이 현장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현행법상 소방관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가 아니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영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을 비롯해 다른 법령에서도 소방관의 보건과 안전을 위한 보호장치들이 들쑥날쑥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재난에 직접 대응해야 하는 소방관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일선에서는 기존의 소방 관련 법규만으로는 재난에 대응하는 소방관들의 보건ㆍ안전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상당 부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소방관 공상이나 순직 승인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기존의 소방 관련 법들이 촘촘한 보호망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현장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 구축과 정책적 업무 연속성이다. 많은 현장대원은 현재 국회를 비롯해 소방청과 소방본부, 소방서 자문위원들이 주로 학계나 연구원 중심인 데다가 생산되는 연구용역 보고서의 상당수가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게다가 통상 1년에서 1년 반 주기로 바뀌는 관련 부처 장관이나 소방청장, 본부장 등 고위직의 짧은 임기도 정책적 업무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 한몫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소위 ‘깜짝 정책’들이 등장하고 3년 내지 5년을 모니터링해야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정책들은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비로소 미국 소방에 대한 벤치마킹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20여만 명이라는 거대한 소방력을 보유한 나라 미국은 강력한 안전 관련 법체계와 인프라가 조성돼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소방산업과 시작부터 체계적으로 소방대원을 양성하려는 교육ㆍ훈련ㆍ직무 기준 표준화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현장에 강한 소방대원을 양성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본적인 면에서 미국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첫 번째 특징이 바로 미국 소방에는 없는 ‘근속 승진’이란 제도다. 

 

근속 승진은 승진 적체가 심한 하위직 공무원의 사기진작 등을 위해 상위직급에 결원이 없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제도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근속 승진이란 제도가 구성원의 사기를 높이고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경우 계속해서 근속 승진을 하다 보면, 즉 계급이 올라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이 된다. 이 때문에 근속 승진이란 제도가 준비되지 않은 지휘관을 양산하고 있다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근무 경력이 쌓이면 호봉 또는 직급(Pay Grade)은 올라가지만 계급이 자동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미국 소방은 사전에 상위 직급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직무 기준에 맞는 자격을 취득한 자만이 승진 고려대상이 된다. 이마저도 당사자가 시험에 응시해 선택돼야만 승진이 된다. 그만큼 준비된 미래 지휘관으로서의 노력과 역량을 강조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그동안 꾸준히 논쟁이 된 ‘소방간부후보생’이란 제도다. 다년간 소방간부후보생들에게 강의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그들의 존재가치를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다. 오히려 여러 사람의 냉정한 시선을 의식이라도 하듯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존중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재난 현장 대응 능력 강화란 측면에서 본다면 소방위라는 계급에 부여된 무게감에 비해 1년이란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다양한 재난을 경험하고 이를 몸과 마음으로 숙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한 시간이란 의미다.

 

문제는 소방위라는 계급에서 한 단계 더 승진해 소방경이 되면 일선 소방서 안전센터의 센터장이 된다. 센터장이 된다는 것은 각종 재난의 초동 지휘관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장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지휘관에게 이런 자리는 오히려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경력과 무관하게 지휘관의 특출난 능력이 재난 현장에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방은 어느 한 사람의 개인기나 원맨쇼에만 의존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재난 현장에서 대응 능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처럼 소방대원들이 가장 낮은 계급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 개인의 노력과 필요한 직무 자격을 취득한 후 마침내 지휘관이 되는 구조와 비교해 본다면 어느 제도가 재난 현장 대응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조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세 번째로는 끊임없이 전문성을 훼손한다고 비판받고 있는 ‘순환 보직’이란 제도다. 순환보직이란 조직 구성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다른 직위나 직급에 전보 또는 배치하는 제도로 장기근무로 인한 매너리즘이나 부정부패 등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여지없이 업무 공백이 발생하곤 한다. 심지어 기관장이 자주 바뀌기라도 하면 직원들은 새로 바뀔 기관장의 지시를 받기 위해 현재 추진 중인 업무 처리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소방은 재난관리 측면에서 보면 ‘현장 전문성’으로 조직의 존재감을 평가받는다. 그래서 준비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필요하지만 순환 보직은 오히려 재난 대응 능력을 약화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만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소방의 경우 대부분 경력직 특채로 인재를 채용해 가급적이면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는 ‘소방관 직무 자격 교육과정’에 관한 것이다. 갈수록 대형화되고 복잡한 재난의 추이에 맞춰 보다 세부적인 직무 관련 교육과정을 마련해 현장 전문성을 쌓아가야 하지만 이런 흐름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전국에 설치된 9개 소방학교 모두 만성적인 인력 부족, 특히 소방교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교관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경기도소방학교의 경우만 봐도 전체 교관 수가 20명이 되지 않는다. 이는 150명의 교관을 확보해 교관 1인당 3명의 교육생에게 세심하게 기술을 전수한다는 방침을 가진 미 국방부 소방학교와는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미국 소방에서는 소방관이 직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먼저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이는 자동차를 운전하기 전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격취득을 강조하는 것은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가장 최소한으로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준비된 자신감을 갖춘다는 것을 말하며 합법적으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자격을 취득한다는 것과 업무를 잘하는 것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소방관 개인이 직무 윤리와 소명 의식을 갖고 지속적인 훈련과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쌓아가야만 한다. 이것은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지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래서 더 많은 노력과 자격을 갖춘 자가 자연스럽게 지휘관이 되는 구조가 바로 미국 소방이다.

 

미국에서 소방대원 훈련ㆍ자격 기준의 표준화 움직임이 시작된 계기는 1973년 발간된  ‘불타는 미국(America Burning)’이란 보고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이후 비영리 기구인 ‘미국방화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 이하 NFPA)’를 중심으로 미연방 소방국과 일선 소방서의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한 ‘미국방화협회 기술위원회(NFPA Technical Committee)’가 시대의 요구에 맞는 기준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세한 직무 기준은 각 주에서 소방대원이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필수요건으로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면 산불화재(Wildland Firefighter) 자격을 비롯해 항공기 화재(Aircraft Firefighter), 위험물 대응 관련 6단계 직무 자격(Hazardous Materials Awareness, Operations, Technician, Incident Commander, HAZMAT Safety Officer, HAZMAT Officer) 등 약 30여 종의 기준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산불 화재, 항공기 화재, 위험물 사고 등 크고 복잡한 재난에 대해 별다른 자격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단지 소방관이란 이름으로 모든 재난에 출동하고 있다. 

 

아래에 제시된 ‘미 국방부 소방대원 자격표’는 직급별로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자격 기준을 정해놓고 있으며 자격증(Certificate)별 사전 준비 요건과 우선순위를 정해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자격을 취득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미 국방부 소방대원 직무자격표. X로 표기된 부분은 해당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자격이며 Z로 표기된 부분은 해당 임무나 차량이 주어질 경우 추가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자격을 나타낸다. K로 표기된 부분은 일시적으로 현장대응단장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추가로 취득해야 하는 자격을 표시하고 있다.  © 출처 DoD Fire and Emergency Services Certification Program


미 국방부 소방대원 자격 시스템이 마련된 주된 목적은 전 세계에 배치돼 근무하는 소방대원들의 직무를 표준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미 국방부 소방서비스 질의 향상과 개인별 직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화재를 진압하는 대원에서부터 지휘관에 이르는 ‘직업의 사다리’를 한 단계씩 차례로 오르는 과정을 통해 현장에 특화된 소방대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개념이 깔린 것이다.

 

▲ 필자가 취득한 소방간부 고급과정 자격증과 위험물 안전담당관 자격증, 미국소방대원 직무자격 현황


알다시피 미국 소방은 수많은 재난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이런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 미국 소방의 한 단면만을 우리 현실에 도입하려는 것은, 또 그것을 소방의 선진화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결국 관건은 우리 소방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현장 전문가와의 협업, 국가의 법ㆍ정책적 지원, 깨어있는 시민의식, 소방산업 성장 등 안전의 톱니바퀴가 잘 맞아 돌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토대가 마련됐을 때 비로소 재난 현장 대응 능력 강화란 열매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_ 이건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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