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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원인 미상의 화재! 발화지점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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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3/20 [14:20]

[화재조사관 이야기] “원인 미상의 화재! 발화지점을 찾아라!”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3/20 [14:20]

<119플러스>에서 조명하는 화재조사 사례. 그 네 번째는 지난 호에 이어 다시금 비닐하우스 화재 사고다. 비닐하우스 사례를 연이어 소개하는 이유는 화재 조사 과정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 대표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사실 농사용 비닐하우스 화재에서는 그 원인과 발화부를 찾는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비닐하우스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땐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사고에서는 최초 발화지점이나 발화 원인, 연소 확대 방향 등을 추론하기가 참으로 난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디엔가 그 흔적은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은 화재조사관의 가장 큰 숙제다. 그렇기에 어떤 현장에서도 조사관의 노력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두 동의 비닐하우스가 홀랑 타버린 이번 사고 역시 조사가 쉽지 않았다. 네 번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봄날의 비닐하우스 화재

따듯한 봄 햇살이 비치는 5월 말 오후 11시 55분께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났다. 첫 신고자는 인근 도로를 지나던 행인이었다. 이 행인은 한 식당 근처에서 불이 났다고 신고한 뒤 지나갔고 두 번째 목격자는 비닐하우스에서 불길이 크게 치솟고 있다고 신고했다.

 

▲ [사진 1] 화재 현장

 

화재 당시에는 [사진 1]처럼 화마가 비닐하우스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대로변에서 비닐하우스가 이렇게 연소하는 모습만으로 첫 발화지점과 연소 방향을 찾아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난감한 일이다. 비닐하우스 특성상 내부에 가연물이 다량 적재돼 있으면 급격하게 연소 확대되고 화염의 크기도 크다. 비닐하우스는 본래 목적대로 농사나 원예용으로도 사용되지만 이 현장처럼 창고나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곳도 많다. 특히 비닐하우스 자체는 모두 가연물이고 보온재 역시 부직포로 돼 있어 급격한 연소 효과가 나타나는 일이 흔하다.

 

▲ [사진 2] 비닐하우스 입구

 

[사진 2]처럼 비닐하우스가 전소된 경우 발화지점과 화염의 선행 지점을 찾기란 녹록지가 않다.

 

이런 현장에서 발화지점을 특정해야 하는 경우 화재조사관은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화재 피해자들은 각각 점유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발화지점을 확실히 찾아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편안한 방법은 ‘나 몰라라’ 하는 거다. 그러나 이는 화재조사관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자 국가의 무책임함을 공표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화재 현장에서 증거를 찾아 헤맬지라도 발화지점이 아니라 발화부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는 그 건물 자체가 가연물이고 내부 적재물이 어떤 물질이냐에 따라 완전 연소하거나 미연소 잔류물이 남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이 화재 현장은 미연소 잔류물에서 연소 방향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화재 당시 풍향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불고 있었다. 두 비닐하우스 모두 전소했다면 간단한 논리로는 좌측에서 발화돼 우측으로 진행된 패턴으로 오인할 수 있다. 게다가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탄화 잔류물이 많아 잔화를 정리할 때 굴삭기까지 동원되면서 더더욱 발화지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재 현장 속 퍼즐은 어디?

 

▲ [그림 1] 평면도


우선 조사를 위해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평면도를 그렸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부가 대략 어떻게 구성돼 있었는지는 확인이 가능했다. 두 비닐하우스 구조는 대동소이했다. 다만 공간을 창고로 활용하는 곳과 냉장, 냉동고로 사용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사무실과 화장실 위치도 동일했다.

 

그렇다면 평면도를 기준으로 ①번과 ②번 비닐하우스 중 어느 쪽이 더 발화 가능성이 있을까?

 

평면도만 본다면 당연 ②번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는 전기에너지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열 가능성 역시 커 보였다. 그러나 이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화재 현장은 단순한 현상만으로 발화부를 정할 수 없다. 모든 증거나 자료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피해 당사자나 제3자가 봤을 때도 확실하게 규명된 발화지점이어야 하고  화재 원인에도 객관성이 확보돼야 한다. 과학적인 논리로 조각난 화재지점과 화재 원인의 퍼즐을 맞춰야 한다.

 

이 현장의 경우 비닐하우스 내부에 적재물과 구획물이 많았다. 붕괴 위험에 따라 잔화 정리에 어려움이 있어 굴삭기를 동원했다. 굴삭기가 현장을 뒤집고 정리하며 잔화 정리를 하는 것은 진압대 입장에서 최적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화재조사관 입장에선 최악일 수밖에 없다. 현장의 증거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 [사진 3] 굴삭기를 이용한 잔화 정리

 

▲ [사진 4] 잔화 정리 후 화재 현장의 모습

 

당시 현장은 진압대원이 손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많은 탄화 잔류물이 있었다. 굴삭기를 이용해 바닥까지 뒤집어가며 잔화를 정리했다. 만약 이 비닐하우스가 발화지점이라면 증거는 모두 멸실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굴삭기를 이용하면서 비닐하우스 한 동이 멸실됐다. 

 

화재 현장에서 발화부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 멸실된 비닐하우스가 최초 발화지점이라면 무엇으로 객관화할 것인가? 이런 경우 화재조사관이 발화부를 찾기 위해 몇 배에 이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더욱이 멸실된 비닐하우스가 발화부였다면 이 화재는 영원히 발화지점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잔류된 증거만으로 화재 지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퍼즐 속 숨은 목격자가 전해주는 사실들… 

이곳에는 화재 현장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목격자가 숨어 있었다. 바로 무인경비시스템과 폐쇄회로다. 무인경비시스템을 확인할 땐 여러 각도에서 점검하고 고민해야 한다. 즉 감지된 열 감지기의 위치가 발화지점일 수 있고 열 감지기가 설치된 반경 12~15m 이내가 발화지점일 개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무인경비시스템의 감지 시간과 실시간을 반드시 확인해 기록하는 게 필요하다. 무인경비시스템의 감지 기록에 주목했다.

 

▲ [그림 2] ①번 무인경비시스템 감지

 

▲ [그림 3] ②번 무인경비시스템 감지

 

▲ [그림 4] 무인경비시스템 비교

 

[그림 2]는 ①번 비닐하우스 무인경비시스템 적외선 감지 센서가 동작한 기록이다. 02감지기의 감지 시간은 오후 11시 52분께다. 이는 화재 신고 시간보다 약 3분 정도 빠른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①번 비닐하우스에서 발화됐을 개연성이 있다. 같은 시간에 ②번 비닐하우스에는 어떤 현상이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다행히 ②번 비닐하우스에도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②번 비닐하우스의 평면도와 무인경비시스템 감지기 위치를 확인한 뒤 감지 시간을 짚어봤다.

 

②번 비닐하우스 무인경비시스템에서는  오후 11시 54분께 Ch 5의 출입문 감지기가 동작한 것이 확인됐다. ①번 비닐하우스 보다 약 2분 늦게 감지된 셈이다.

 

①번 비닐하우스 적외선 감지 센서 02가 52분에 동작하고 ②번 비닐하우스 Ch 5번이 54분에 동작했다는 것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화염이 전파됐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①번 비닐하우스가 발화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 [사진 5] 인근 폐쇄회로 촬영 모습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에서는 불꽃이 확인됐다. 그러나 발화지점이 정확히 인지되지는 않았다. 다만 불빛이 있고 연소한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 [사진 6] 발화지점 폐쇄회로의 주ㆍ야 비교 모습


[사진 5] 폐쇄회로의 감지 시간은  오후 11시 53분께였다. 52분에 ①번 비닐하우스에서 최초 불이 감지되고 53분께 폐쇄회로에서 화염이 보인 뒤 54분에 ②번 비닐하우스 감지기가 감지한다. 이 순서만으로는 ①번 비닐하우스가 발화부일 개연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①번 비닐하우스 적외선 감지 센서는 비닐하우스 밖에 설치돼 있던 것으로 이 당시 ①번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사진 7] ①번 비닐하우스 차단기

 

▲ [사진 8] ②번 비닐하우스 차단기

 

①번과 ②번 비닐하우스 차단기는 모두 트립된 상태로 잔류돼 있었다. 트립 현상은 통전된 상태를 의미할 뿐 화재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전기가 통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각각의 무인경비시스템에서 확인되고 인근 식당에 설치된 폐쇄회로 화염 촬영 시간이 오후 11시 51분 10초께로 이 시간은 실시간과 약 2분 차이다. 실시간은 오후 11시 53분으로 확인된다.

 

이 시간은 ①번 비닐하우스 외부 적외선 감지 시간이 오후 11시 52분 38초께인 것을 고려할 때 적외선 감지가 선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5]와 같이 ①번 비닐하우스에서는 오후 11시 53분 55초께 전원이 단전되는 신호가 접수되며  오후 11시 54분 22초께 05번 감지기가 작동한 후 오후 11시 54분 49초에 한 번 동작한다. 오후 11시 54분 50초께에는 좌측 01번이 동작한다. 이후 오후 11시 54분 54초에 1회 동작이 더 되고 오후 11시 54분 55초에 다시 05번 감지가 동작한다. 이는 좌측 라인 방향으로 화염이 진행된 것을 나타낸다.

 

②번 비닐하우스는 최초 감지 신호가 오후 11시 54분 36초께고 우측 도면의 ch 5에 최초 감지되고 54분 42초, 54분 45초, 54분 49초, 54분 52초에 걸쳐 총 5회 감지된 뒤 오후 11시 56분 51초에 회선이 단선되는 신호가 수신된다.

 

②번 비닐하우스 무인 경보시스템은 전화 회선을 사용하고 있어 실시간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게 무인경비시스템 회사 측 설명이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감지 시간이 실제 화염의 전파 방향이라고 신뢰한다면 ①번 비닐하우스와 ②번 비닐하우스 중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①번 비닐하우스 주장치는 출입구 좌측에 설치돼 있었다. 전기가 단전되더라도 내부 내장 배터리에 의해 신호 명세가 지속했던 것이고 전기가 차단되더라도 주장치가 소손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적으로 감지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화염의 전파 방향이 ①번과 ②번의 바깥쪽에서 화염이 진행됐을 개연성이 크다. 폐쇄회로에서 화염의 경계면이 나타나는게 이를 뒷받침한다.

 

②번 비닐하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깥쪽에서 ①번과 ②번 비닐하우스 사이로 화염이 전파됐다면 전원이 차단되지 않은 상태로 잔류됐을 개연성이 있다.

 

각 동의 무인경비 경계 시간을 보면 ①번 비닐하우스는 화재 발생 전일 오후 5시 43분 58초에 close(문이 닫힘) 상태로 오후 11시 52분 38초의 감지 신호 시까지는 출입 상태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②번 비닐하우스의 경계 시간을 보면 오후 1시 10분 40초에 경계가 시작된다. 이 시간을 보면 ②번 비닐하우스에 출입한 시간이 화재 시간에 더 가깝다고 할 것이다. 기계적 수치로만 Time mapping을 한다면 ①번 비닐하우스와 ②번 비닐하우스 중간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크다.

 

두 비닐하우스 모두 내부에 설치된 열 감기지는 모두 동작하지 않고 외부에 설치된 적외선 감지기와 Magnetic switch가 동작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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