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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팜 100㎞ 극한체험…] 이색 도전 소방관 ‘판타스틱 4’-Ⅱ 미시령 힐링 가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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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소방서 박흥규 | 기사입력 2020/04/07 [10:30]

[옥스팜 100㎞ 극한체험…] 이색 도전 소방관 ‘판타스틱 4’-Ⅱ 미시령 힐링 가도에서

강원 횡성소방서 박흥규 | 입력 : 2020/04/07 [10:30]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100㎞를 4명이 한 팀이 돼 38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도전 형식의 기부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가난과 불공정에 맞서기 위한 옥스팜의 활동으로 전 세계 94개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

 

횡성소방서 우천119안전센터에서 같은 팀으로 근무하는 필자를 포함한 이형철, 김병호, 석윤수 대원 등 4명은 8월 30일 강원도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했다. 지금부터 옥스팜 100㎞ 극한체험의 두 번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CP3(인제읍 원대리 513-1 회동마을)


그렇게 CP3에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병호와 형철이는 윤수가 나갈 방법을 알아봤는데 택시를 타고 인제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최 측에서 안내한 택시에 전화를 거니 못 온다고 하는 곳도 있었고 여러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찾아오겠다고 한 곳도 있었지만 대회 관계자들도, 우리도 이곳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어렵게 택시를 태워 윤수를 보내고 도우미분에게 컵라면 하나를 부탁했는데 줄을 선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급한 마음에 물도 제대로 끓이지 않은 채 익지 않은 라면을 주셨다. 둥둥 뜬 면발을 몇 입 씹어 보다가 딱딱해서 그냥 다 버렸다. 바나나는 더워서 그런지 모두 물컹한 게 상한 것 같았다. 제대로 허기를 채울만한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게토레이와 자유시간 두 개를 더 챙겨 다시 출발했다. 

 

CP4는 오전 0시가 지나면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고 해서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거기선 우거지 국밥도 나오고 마사지 서비스, 잠자리, 무엇보다도 내가 보낸 신발을 찾을 수 있다. 출발 때부터 발이 아파 CP4에 빨리 가서 신발을 갈아 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평소 신던 신발만 신었어도 이렇게 발가락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마지막 고통이라 생각하고 CP4까지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CP4까지는 내리막을 2㎞ 정도 내려갔다가 오르막 2.5㎞, 다시 내리막 3.5㎞를 내려와야 한다. 개울 4개를 건너고 그 유명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통과한다고 했다. 

 

▲ 원대리 자작나무 숲

 

다행히 이번 코스는 그늘로 이뤄진 숲을 걸을 수 있어 마음은 상쾌했다. 흙으로 된 임도라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마지막 내리막길(3.5km)을 만나서는 발가락 고통이 최고에 달했다. 체중이 앞발에 쏠리는 데다 등산스틱도 없어 오직 발바닥 힘으로만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발이 아작나는 느낌이었다. 

 

CP3에서 발가락을 살펴봤을 때 엄지와 중간 발가락에 큰 물집이 보였는데 너무 아프다 보니 ‘피가 나오고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내리막길에 투박한 자갈들이 잔뜩 깔려있어 발을 뗄 때마다 끊임없이 발 고문을 받는듯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 내리막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끔찍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갈 때 목표했던 CP4가 눈앞에 나타났다. 도착 시각은 오후 7시 14분이었다. 

 

▲ CP4 인제군 남면 햇살마을 향토식당


CP4(인제군 남면 자작나무숲길 741)


 

CP3에서 라면도 제대로 못 먹고 출발해서 지쳐있었는데 여기서는 국밥이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우거지국과 김치, 깍두기, 밥을 실컷 먹었다. 배가 안차서 밥과 국을 추가로 더 먹었는데 형철이와 병호는 많이 지쳤는지 조금만 먹고 바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천천히 밥을 한 공기 더 먹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짐을 찾으러 갔다. 짐을 찾자마자 얼른 신발을 갈아 신었다. 

 

곧 밤이 시작되니 반바지와 땀에 전 윗도리, 속옷을 벗고 긴 바지와 새 티셔츠, 새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김에 화장실에서 머리도 감았다. 

 

누워 쉴 수 있는 커다란 천막 두 동이 마련돼 있었지만 벌써 사람이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다들 힘들어 밥 먹고 누워 자는가 보다…’ 이제부턴 계속 밤길을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산속에서 잘 수 없으니 미리 잠을 자고 떠나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누울 자리도 없는 데다가 사람이 많아 마사지도 받지 못한 우리는 그냥 출발해야 했다. 그나마 기쁜 일은 그리도 나를 괴롭혔던 신발을 갈아 신었다는 거였다. 확실히 갈아 신은 신발은 신축성이 좋고 앞볼이 넓어 통증이 덜 했다. ‘흐 흐 흐 좋다...’ 

 

출발 시각은 오후 8시 30분. 이제 여기까지 50㎞를 걸어왔으니 나머지 50㎞만 더 가면 된다. 

 

▲ 급경사 내리막 오솔길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드랜턴에 의지하면서 계속 앞사람만 따라가야 했다. 계곡이 깊어 급경사 내리막은 2.7㎞나 된단다. 

 

난이도는 별 4개(★★★★)다. 바위와 큰 돌들이 즐비하게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며 내려가다 보니 정신이 다 없었다. 게다가 많은 참가자가 더 늦기 전에 이 코스를 동시에 통과하려다 보니 계곡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줄이 꽤 길게 형성돼 우리를 밀 듯이 내려왔다. 할 수 없이 밀리고 밀려 빨리 빨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병호가 조금만 더 가면 내리막 끝이라고 했다. 그럼 거의 다 왔다는 얘길 텐데 내려와서도 산을 타듯 산 둘레를 계속 돌아 걸어야 했다. 그렇게 계속 둘레길을 도는데 마침 우리에게 다가온 관계자가 아직 3㎞ 정도 더 남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분명 GPS 상으로 9㎞ 가까이 왔는데 3㎞를 더 가라니! 병호도 다 왔다고 아까부터 얘기하고 있었는데…. 헉!’ 

정말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현실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도대체 누가 이걸 측정해 놨는지 믿을 수 없었다. 욕이 막 나온다. ‘밤이라 더 멀게 느껴지는 걸까?’ 하여튼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다행히 신발이 아까보단 편해 괜찮았지만 문제는 너무 멀다는 것이다. ‘알려준 ㎞도 믿을 수 없고… 덩달아 GPS도 의심스럽고… 으~ 아’ 

 

힘이 드니 발걸음을 더 옮길 수가 없어 이제껏 너무 먹은 데다가 달아서 먹기 싫었던 자유시간을 할 수 없이 또 꺼내 먹었다. 

 

‘연양갱도 벌써 몇 개짼가? 한 코스당 자유시간 두 개, 연양갱 두 개는 필수로 먹는 것 같다’ 

 

입은 달아서 거부하지만 먹고 나면 확실히 힘이 나는 게 걷는 속도가 달라졌다. 먹어야 걸을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인내심이 다 할 때쯤 작은 마을이 보였다. 

 

“아… 이제 간신히 CP5(소류정)에 도착했네. 정말 너무하다, 너무해”

 

내 한계를 넘나드는 코스였다.

 

▲ CP5에서 인증사진


CP5(인제군 남면 가넷고개길 48-8)


인제군 남면에 위치한 소류정 도착 시각은 오전 0시 13분, 18시간째 걷고 있는 것이다. 누적 거리는 60km로 이제 40km가 남았다. 

 

지금껏 병호는 허벅지가 자꾸 쓸려 따가운지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다리를 벌려 걸으며 힘든 여정을 버티고 있었다. 형철이는 특별히 아픈덴 없는 것 같았지만 힘이 드는지 많이 지친 모습이었고 눈가에 다크 서클이 선명한 게 참 안 돼 보였다. 나는 쉬면서 양말을 벗으니 엄지발가락 물집이 더 커져 있었다. 미리 붙여 놓은 물집방지패드를 뗄 수 없어 주변에 바셀린만 발랐다. 

 

이제 밤을 새우고 걸어야 한다. 중간에 자면 일어나기 힘들 것이고 몸도 천근만근이라 계속 걷는 게 힘들어질 수 있다. ‘힘들어도 계속 걷는 수밖에…’ 

 

산속의 밤 온도가 15~16℃는 되는 듯해서 체온 관리를 위해 부지런히 출발했다. 

 

CP6은 12.6㎞로 인제 남면 38대교 입구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해서 오르락내리락 임도를 8km 정도 걷고 완만한 오름과 내림의 둘레길 3.6km를 도는 코스다. 

 

 

야간에 걷기 위험한 코스이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참가자 안전을 위해 셔틀버스로 안전한 지점까지 이동시켜줬다. 버스를 타는 15분은 모두 공식 기록에서 공제해준다고 했다. 

 

오전 1시께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우리는 마치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군 수송기를 타고 적진에 투하되는 공수부대 요원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적의 엄청난 대공포 공격을 받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대원도 죽고 수송기도 대공포 공격을 받아 격추되면서 대부분이 사망하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았다. 수도 없이 대원을 적진에 투입하지만 일부만 살아남아 작전을 수행한다. 

 

‘내가 투입되는 부대원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내리기 싫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셔틀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버스 의자에서 내릴 때는 통증으로 다리를 펴기 힘들었다. 내려서 다들 열심히 움직이기에 우리도 걸어 나갔다. 걷는 속도는 이전보다 아주 느려졌다.

 

38대교 위에서 ‘Old Fire Fighters’팀을 만났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강릉지역 소방 대선배님들이셨다. 연세는 50대 중ㆍ후반으로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진 힘이 넘치시는지 반갑게 안부 인사를 하고는 우릴 앞질러 가셨다. 

 

▲ Old Fire Fighters


절뚝절뚝 걸어가는 나와 다리를 벌려 걷는 병호, 지쳐 걷는 형철이. 그렇게 우리 팀은 소양강을 끼고 임도를 계속해서 걸어 올라갔다. 오전 2시가 넘어가자 형철이와 병호가 잠 좀 자고 가자고 했다. 여태 우리가 걸었던 도로는 좁은 오솔길로 풀이 많고 쉴 자리가 없었는데 저만치 나무로 만든 넓은 전망대 데크가 나타났다. 

 

▲ 소양강둘레길 전망대. 여기서 쪽잠을 취했다.

 

낮에 보면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같은 곳인데 벌써 텐트가 2개가 처져있고 누군가 자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잠깐 자 보자’ 

 

준비해 온 은박비닐을 꺼냈다. 체온 유지용 비닐인데 직사각형 모양의 단순한 은박비닐이라 몸을 감싸고 잠들기엔 애매했다. 형철이는 은박비닐을 바닥에 펴놓고 그 위에 잠들어 버렸고 나는 나름 은박비닐로 몸을 휘감고 누웠다. 

 

불편한 점은 봉지형이 아니라 손으로 비닐을 붙들고 자야 한다는 거였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비닐을 손으로 계속 잡지 않으면 공간이 많이 떠 추웠다. 잠 좀 들라 하면 다른 팀들이 우리 옆에 들어와서 떠들어 대는 바람에 시끄럽고 바닥까지 딱딱해서 비닐 하나로 잠을 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은박비닐에서 잠들기 전

 

그렇게 30여 분 누워있었을까? 형철이와 병호가 추워서 못 자겠다고 어서 가자고 했다. 오전 3시가 다 된 시간이라 밤이슬도 많이 내린 상황에서 어설픈 은박비닐로 체온을 유지하며 잠을 자기란 턱도 없었다. 잠은 20분도 채 못 잔 것 같았다.

 

병호가 앞서가고 그 뒤 형철이, 내가 맨 뒤에서 걸었다. 난 발이 아파 도통 속도가 나질 않았다. 디딜 때마다 통증이 있으니 종종걸음으로 걷게되고 발가락이 아프지 않게 하려고 다른 부위에 힘을 주니 더 쩔뚝댈 수밖에 없었다. 

 

앞에 가는 형철이가 지그재그로 걸었다. 자면서 가고 있는 거다. 막 넘어질듯 하다가 또 가고 넘어질듯 하다가 또 가고… 그렇게 몇 시간을 갔다. 형철이는 해병대를 나왔는데 군대에서 포기하지 않는 군인 정신을 제대로 배운 듯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엔 어두워서 잘 안보였는데 맨 앞에 가던 병호도 계속 자면서 갔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병호가 선두라 앞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헤드라이트로 바닥을 비추며 길을 찾아야 했는데 자면서도 길을 찾아갔으니 사고 안 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전 6시가 되자 날이 밝아오면서 인제대교가 보였다. “와… 인제 다 왔다!”고 내가 외쳤다. 

 

 

하지만 병호는 3㎞를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인제대교를 지나면 인제 시내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인제 시내로 바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강을 따라 둘레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했다.

 

‘언제 이렇게 강변에다 둘레길을 만들어 놨지?’ 내가 인제에서 근무하던 2010년에는 보지 못했던 길이다. 경치 좋은 소양강 둘레길은 평소 같으면 감탄하면서 걸었을 텐데 오늘은 계속 욕만 나온다.  

 

“도대체 누가 이런 코스를 설계한 거야!” 

 

‘악마의 코스였던 CP5만 도착하면 그 뒤 코스는 평범한 길이니 쉽게 100㎞를 완주할 수 있을 거라 팀원들을 독려하며 달려왔는데 지금 이 코스는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강가 낭떠러지 구간을 추락 방지 줄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한다. 졸음이 쏟아지는 팀원들이 자면서 걷고 있는데 떨어지면 어떡하라고 끝까지 우릴 괴롭히는 코스를 만들어 놨네. 아~ 놔…’ 

 

이제 다 왔나 싶으면 강변을 끝도 없이 돌고 돌아야 했다. 발도 아프고 잠도 쏟아져 더 길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길을 통과한 다른 분들의 공통 의견은 다들 거리가 안 맞는다는 거였다. 실제보다 2㎞ 더 길다는 얘기다. 병호도 12㎞ 이상은 걸은 것 같다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강에가 펜션(CP6)은 언제 나오는 거야!’

 

우리와 자주 겹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KCTC(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팀원들도 지쳤는지 앞서다가 퍼져서 쉬고 다시 앞서다 쉬고를 반복했다. 

 

‘내 도착하면 담당자들에게 따지리라 누가 이렇게 실측하지 않고 코스를 만들었냐고…’ 

 

그렇게 많이도 원망하며 쉴 새 없이 걸으니 어느새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제 다와 가는가 보다’ 

 

▲ 강에가 펜션 도착 전 소양강 상류


산에서 내려와 소양강 강변길을 걸으니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CP6(인제읍 남북리 강에가 펜션)


CP6 도착 시각은 오전 7시. 오전 1시에 출발해 13㎞를 무려 6시간 동안 걸어온 것이다. 벌써 많은 분이 도착해서 컵 우동과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아예 펜션 안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분도 많았다. 여기에는 밥이 없단다. ‘아침인데 밥도 안주고 너무 하는구나…

 

사실 어젯밤에 듣기로는 오후 10~11시에 선두팀들은 100㎞를 완주했다고 하니 그분들은 여기를 오후 6시께 통과했을 수도 있었겠다. 

 

컵 우동을 맛있게 먹고 나서 퉁퉁 부은 발을 살펴봤다. 신발에 발이 꽉 차 잘 벗겨지지 않았다.  ‘헉! 엄지발가락을 둘러싼 거대 물집이 보인다’ 

 

 

물집을 터트릴 수도 없고 그냥 모른 체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물티슈로 땀에 범벅된 발을 닦고 다시 양말을 신었다. 

 

‘부디 오늘 오후까지만 버텨줬으면 좋겠다. 이제 73.8㎞를 왔으니 26㎞만 더 가면 되리라’

 

CP6→CP7 배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CP7을 향해 출발했다. 

 

▲ CP6에서 인증사진


CP7 코스는 인제 시내 국도변 둘레길을 걸어가는 거다. 가다보니 주변에 인제소방서가 보인다.

 

 

‘이제부터는 진짜 평탄한 도로만 따라 걸으면 될 거다. 덕산리 마을회관(CP7)까지 6.8㎞니 그리 힘들지 않을 거야’ 다만 햇빛이 점점 강해져 등도 따갑고 더웠다. 트레킹 코스 상의 가로수 그늘 쪽으로 최대한 붙어서 이동했다. 여러 팀이 부지런히 따라오는데 나보다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난 여전히 종종걸음으로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걸었다. 병호와 형철이는 저만큼 멀리 앞서가서 이젠 보이지도 않았다. 

 

뒤에서 걸어오던 ‘끼리끼리’ 여성팀의 한 분이 내가 안 돼 보였는지 자기 등산 스틱을 빌려줬다.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 데 이걸 쓰면 좀 편하실 거예요”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자꾸 써보라 해서 건네준 스틱을 사용해 걸으니 좀 괜찮은 듯했다. 

 

사실 사전 연습 때 스틱을 사용해 봤지만 네 발로 걷는 게 익숙지 않아 오히려 리듬이 엉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우리 팀 모두 스틱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CP4 내리막길에선 필요하다고 느껴졌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발을 절며 갈 때는 스틱이 있었다면 좀 편할 수도 있었으리라… 

 

오전 9시가 다 됐는데 정근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정근은 강원소방연합팀으로 지금 막 CP8에서 밥을 먹었고 마지막 10㎞만 남았다고 했다. 

 

‘헉! 소방팀 중에서 가장 빠른 것 같다…’ 

우린 아직 멀었고 속도도 낼 수 없으니 우리 페이스대로 꾸준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강원 횡성소방서_ 박흥규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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