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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팜 100㎞ 극한체험…] 이색 도전 소방관 ‘판타스틱 4’-Ⅲ 미시령 힐링 가도에서

강원 횡성소방서 박흥규 | 기사입력 2020/04/10 [10:00]

[옥스팜 100㎞ 극한체험…] 이색 도전 소방관 ‘판타스틱 4’-Ⅲ 미시령 힐링 가도에서

강원 횡성소방서 박흥규 | 입력 : 2020/04/10 [10:00]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100㎞를 4명이 한 팀이 돼 38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도전 형식의 기부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가난과 불공정에 맞서기 위한 옥스팜의 활동으로 전 세계 94개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

 

횡성소방서 우천119안전센터에서 같은 팀으로 근무하는 필자를 포함한 이형철, 김병호, 석윤수 대원 등 4명은 8월 30일 강원도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했다. 지금부터 옥스팜 100㎞ 극한체험의 마지막 얘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CP7


▲ 뜨거운 태양과 무더운 날씨에 다들 지쳐있다. 앞 병호, 뒤 형철  

그렇게 덕산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6.8㎞라 금세 도착할 줄 알았는데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아스팔트 도로를 걷자니 너무 덥고 발도 아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결국 오전 10시가 돼서야 간신히 CP7(덕산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여기도 밥이 없어 바나나 2개를 먹고 자유시간 3개를 챙겼다. 지금까지 먹은 자유시간과 연양갱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달아서 먹기는 싫은데도 먹고 나면 다시금 힘이 났다. 엄지발가락 물집이 걱정돼 의료진을 찾아 발가락에 거즈를 감아달라고 했다. 

 

“혹시 물집이 터지면 거즈로 보호하고 있게끔 상처를 좀 감싸주세요” 

 

제법 크기가 커진 물집을 의료진이 두껍게 거즈로 감싸줬다. 신발을 신으니 앞부분이 터질 듯 빵빵했다. 그래도 처음 신었던 신발의 불편함보단 나아서 참고 갔다. 

 

봉사하는 새마을 부녀회 분들이 보이길래 장난기가 발동했다. 

 

“심폐소생술 교육받으셨죠?”

“네”

“만약 여러분 남편이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살려야죠” 

 

그때 내가 흘리듯이 “내뻐려~ 둬~~”라고 했더니 “뭐 내버려 두라고요?”하고 막 웃었다. 부녀회원들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때 나는 “사랑하는 남편은 무조건 살려야죠.^^ 돈 벌어 오라고…” 그랬더니 한 부녀대원이 웃으며 나에게 “만약 아내가 쓰러졌으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하길래 “꼭 살려야죠. 왜냐 세끼 밥 좀 잘 챙겨 달라고…”

 

 

자전거 도로라 마침 전국동호인사이클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선두 1명이 달리더니 그 뒤로 여러 대의 자전거가 속도를 내며 쫓아왔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인제가 모험레포츠 도시답게 다양한 스포츠 행사를 열며 옥스팜 걷기대회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 같았다. 

 

CP8에 가면 밥을 준다는데 많이 지쳐서 밥이 제대로 들어갈지 걱정이었다. 대충 먹고 빨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밤에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자꾸 어지러웠다. 발바닥도 따끔거려 걷던 중 길가 정자에 잠시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벌써 많은 팀이 우릴 앞질러 가고 있었다. CP4에서는 260여 번째로 중간쯤이었는데 이곳까지 너무 늦게 걸어와서 더 뒤처진 것 같았다. 속도를 내려 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냥 버티기로 꾸준히 걷는 형편이었다. 

 

CP8


겨우 CP8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1시 19분, 이제껏 31시간을 걸어왔다. 종점을 한 코스 남긴 여기가 마지막 체크포인트다. 휴게소라 사람들이 꽤 많았고 자원봉사자들도 마지막이니 힘내라고 응원해줬다. 덥고 지쳐 식욕은 없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대충 산채비빔밥을 시켜 비볐다. 씹는 듯 마는 듯 비빔밥을 욱여넣고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자유시간과 게토레이를 조금씩 챙기고 호흡조절을 했다.

 

“자 이제 가자!” 

‘마지막 남은 거리는 10km, 발에 피가 나도 걸어가야 한다’ 

 

원통 설악휴게소에서 새길이 아닌 미시령 옛길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

 

 

우리 앞에 군인팀 두 사람이 딱 붙어서 스틱을 들고 아주 짧은 보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도 벌써 20시간 이상 발이 아파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이 군인 분들도(많이 젊어 보임) 멈추지 않고 일정하게 계속 가파른 도로를 올라가는 게 아닌가! 포기하고 싶을 텐데 그 고통을 감수하고 끊임없이 스틱과 종종걸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이들은 앞만 보면서 계속 가고 있다! 나도 힘을 내야지…’ 

 

근데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자꾸 힘이 빠졌다. 할 수 없이 너무 먹어서 질려가는 자유시간을 또 꺼내 물었다. 그렇게 한 개를 다 먹고 나니 희한하게 또 힘이 났다. 

 

‘이러다 자유시간 중독되는 거 아냐?’ 

 

이제까지 먹은 걸 세어 보니 연양갱 16개, 자유시간 14개, 파워에이드 1.5ℓ, 게토레이 1.5ℓ쯤 되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난 먹은 걸 잘 흡수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중간중간 계속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형철이와 병호는 별로 먹지 않고도 잘 걸어가는 듯했다. 물론 내가 못 본 사이 상당량을 먹었겠지만 나보다는 엄청나게 안 먹는 것 같았다. 

 

미시령 옛길은 미시령을 향해 서너 번 굽이길을 돌아야 했다. 이 길은 차가 거의 안 다녀 자전거로 하이킹하는 분들과 오토바이 바이킹족들이 자주 찾는 코스 같다. 가는 길에 BMW 오토바이가 넘어져 두 분이 고장 난 곳을 점검하고 있었다. 

 

‘코너링이 심하거나 모래까지 있으면 자전거나 오토바이에는 쥐약인 곳이다. 그냥 슬라이딩 다이빙할 수밖에…’ 

 

한참을 올라가니 십이선녀탕 푯말들과 선녀마을이 보인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듯한데 앞서간 병호에게 전화했더니 벌써 도착했단다. 그때가 오후 4시 40분이었다. 병호는 20분만 더 가면 ‘Finish line’이니 도착하면 5시 셔틀을 타고 귀가하자고 했다. 난 오후 5시까지 꼭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면 34시간에 100㎞를 완주하는 거다. 

 

‘이젠 막판이다’ 

 

난 뛰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로 발바닥이 찢어져라 달렸다. 발에 무리가 가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시간만이 중요했다. 종점인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내려오던 대회 관계자들이 나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줬다. 

 

“힘내세요!” 

 

나처럼 뛰는 참가자는 거의 없었다. 난 멋지게 Finish line을 통과하는 상상을 하며 달렸다. 거의 1㎞ 이상을 달린 듯하다. 저 앞에 만해마을이 보인다. 사람들도 보이고 크게 Finish line도 보인다. 

 

Finish Line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뛰었다. 

 

그런데… “잠깐 멈추세요! 팀원들과 함께 통과하세요! 혼자 들어오시면 다른 팀원들 기록은 인정 안 합니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전광판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2분이었다. 급하게 전화를 해서 병호를 불렀다. 

 

“병호야 빨리 와. 시간이 없다. 같이 들어가야 한대”

 

잠시 후 병호와 형철이가 뛰어왔다. 55분쯤 온갖 폼을 잡으며 Finish line을 통과했다. 박수 쳐주시는 분에 사진을 찍는 분, 사진 안 나왔으니 다시 폼 잡으라는 분까지… 

 

‘어쨌든 100㎞를 왔다. 막상 와보니 별거 아니었는데 왜 이리도 힘들어했을까…’

완주기록증을 프린트해 주는 곳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내 공식기록은 34시간 40분 50초(Finish line은 34시간 55분에 통과했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한 15분을 공식적으로 모두 빼줘서 그렇다), 등수는 508명 중 262등이다.

 

‘자랑스럽다! 윤수가 같이 통과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팀 성적은 인정되지 않고 개인기록만 인정해 준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100㎞를 마무리했으니 다행이다. 

 

‘정말 끔찍했고 욕도 많이 했다. 대회 내내 내 인내의 한계를 계속해서 시험했지만 난 참고 견뎌냈다. 고통을 같이 나눈 형철이 병호에게 정말 고맙다’ 

 

이 친구들은 다시는 이런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걷는 동안 얼마나 많은 후회와 고통을 안고 왔는가. 100㎞ 이게 뭐라고… 병호는 ‘앞으로 10㎞ 마라톤 대회 같은 것도 안 나가고 장거리 대회 자체를 절대 안 나갈 거다’고 거듭 다짐을 했단다.

 

나도 수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코스를 기획한 관계자를 엄청나게 욕했다. 왜 이리 고통을 주느냐고….

 

이제 완주증과 완주 목걸이를 받고 보니 그런 마음이 좀 가셨다. 완주기록 사진을 찍는 사진대에 오르니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주고 업로드해 준단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까지 받으니 마음이 좀 풀렸다. 승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랄까? 

 

마사지사 10여 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지를 신청하니 온몸을 시원하게 주물러 줬다. 정말 정성을 다해 주물러 주는 듯했다. 물론 10여 분의 마사지로 그 피로가 싹 가시진 않았으나 우릴 배려해준다는 점이 무척 고마웠다. 

 

행사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점도 있었다. 특히 거리측정을 인터넷으로만 했는지 실제 거리와 많이 차이가 났다. 고통 속에서 걷는 참가자 입장에서는 100, 200m가 간절한데 2, 3㎞씩 차이가 나니 정말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짐을 싸서 우리가 출발했던 홍천 가람리조트로 향했다. 오후 6시 셔틀을 탔는데 마침 미모의 그룹인 ‘스웻래빗’ 여성팀이 Finish line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성팀 1위라고 했다. 많은 분이 환호하면서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다. 우리도 저 팀을 만나고 싶었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것 같다.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라 낙오 또는 기권하겠지 했는데 웬 걸.. ‘스웻걸’이었다.

 

우리도 힘들어 한 명이 포기했는데 호리호리한 여성팀이 저렇게 당당하게 100㎞를 완주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분들의 완주를 보며 버스는 우리가 왔던 길로 달렸다. 우린 긴장이 풀린 나머지 버스가 출발하기 무섭게 모두 곯아떨어졌다.

 

홍천 가람리조트에 도착한 후 다리를 절며 우리 차로 옮겨 탔다. 이제 다 끝났다! 지난 7월 15일에 시작한 우리의 빅 쇼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후회도, 고통도, 기쁨도 많았고 너무 힘들어 발악하는 내 모습도 많이 봤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소방관들 모두가 하나같이 끔찍함을 느꼈다고 했다. 연습했던 그 이상으로 힘들고 사악한 코스였고 고통스러웠다고….

 

실제 아프리카에선 물을 길어오기 위해 30㎞, 아이를 살리기 위해 60㎞, 안전과 생명을 찾아서 90㎞를 걷는다고 한다. 

 

‘난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옥스팜 100㎞가 여기서 시작됐다는데…’

 

마치며


▲ 2019년 9월 2일 우천센터에서  

이렇게 우리 ‘판타스틱 4’는 34시간 40분 50초 만에 100㎞를 완주했습니다. 중간에 팀원 한 명이 낙오하고 무척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또 그만큼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좋은 기회에 만날 것을 희망해 봅니다.

 

2019 옥스팜 ‘횡성소방, 판타스틱4’ 박흥규, 이형철, 김병호, 석윤수. 

 

그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강원 횡성소방서_ 박흥규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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