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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퇴보하는 소방공사 분리발주, 타 분야까지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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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9/02 [13:56]

[기자칼럼] 퇴보하는 소방공사 분리발주, 타 분야까지 망친다

최영 기자 | 입력 : 2020/09/02 [13:56]

▲ 최영 기자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분리도급) 의무화 법안이 6월 9일 공포됐다. 9월 10일이면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 소방 분야 민과 관, 학계, 언론 등이 모두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은 마침내 전기와 통신에 이어 특수 공종인 소방공사의 분리발주 제도 현실화라는 큰 결실을 이뤄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줄곧 건설업계 힘에 밀려 이루지 못한 소방산업의 숙원은 그렇게 실현됐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제도는 하도급 병폐 해소를 위한 방안이자, 소방 공종에 적정 공사 금액 투입을 가능하게 만들어 소방시설의 품질 향상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더 나아가 소방 공종의 독립성을 확보해 발전을 이루고 국민을 화재로부터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수백 명의 국회의원과 국민이 손을 들어준 이 분리발주 제도가 제대로 안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제도의 온전함을 결정짓게 될 하위법령(시행령)의 형상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건설업계와 주요 정부 부처는 물론 일부 소방공사 업계에서조차 분리발주 예외 범주의 폭을 넓히려는 움직임에 소방청은 결국 물러서는 모양새다.


과연 소방공사 분리발주 제도 도입 이후 소방산업 분야에 ‘밝은 빛이 드리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온전치 못한 제도는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안을 저지 못 한 건설업계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는 법률 공포 이후에도 분리발주 제도를 최대한 무용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위법령에서 분리발주의 예외 폭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넓혀보려는 시도다.


대한건설협회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가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일괄입찰과 대안입찰, 기본설계 기술제안입찰 등 기술형 입찰 발주 시에는 분리발주에서 제외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자 책임 구분이 어렵거나 공정관리에 지장이 발생하는 공사, 공사 성질이나 규모에 비춰 분리발주가 비효율적인 공사 등도 예외 해야 한다는 의견을 소방청에 제시했다. 또 공사 기간이 지연되거나 공사 비용이 현저하게 증가할 때도 예외에 포함해 달라고 주장한다.


종합건설을 대변하는 건설협회는 공사 성질을 고려해 더 다양한 유형의 발주 건을 분리발주 대상에서 예외 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법률 시행령 특성상 이렇게 부처 간 강한 이견이 나타나면 개정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소방청과 기획재정부, 국토부, 건설업계의 줄다리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줄을 잡은 소방의 아귀힘이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의 압력에 굴하는 꼴이다. 소방청은 정부 부처 예산까지 주무를 수 있는 기획재정부의 막강한 파워가 걱정인걸까. 소방 분야가 20여 년간 온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분리발주 제도를 왜 스스로 망가뜨리려는 걸까.


이대로 시행령이 개정된다면 소방은 특수 공종의 분리발주 제도를 퇴색시킨 꼴이 될 수밖에 없다. 50여 년 전부터 분리발주 제도를 시행해온 정보통신과 전기공사 제도에조차 없는 문구를 소방청이 예외 조항으로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과 재건축, 일괄발주, 기술형 입찰 등의 문구가 대표적이다.


오랜 기간 분리발주 제도를 시행해 온 정보통신공사나 전기공사 관련 법 중 그 어디에도 없는 규정이다. 결국 소방청이 정보통신공사와 전기공사 분야에서 건설업계로부터 목숨 걸고 사수해 온 분리발주 제도의 뿌리까지 흔드는 황당한 결과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서울을 마지막으로 전국 17개 시ㆍ도 조례로 도입된 분리발주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 조례 어디에도 현재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내용을 분리발주 예외 조항으로 두고 있지 않다. 이대로 시행령이 만들어진다면 조례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와 건설업계의 완강한 반대에도 수백 명의 국회의원과 국민이 손을 들어준 분리발주 제도다. 그런데 지금 소방은 스스로 퇴보하는 것도 모자라 타 특수 공종의 기반까지 망치려 하고 있다.


일부 소방공사 업계도 심각한 문제다. 소방공사 분리발주 제도를 오히려 소방이 앞장서 예외 범주를 넓히려 하기 때문이다. 기계와 전기로 구분돼 공사가 이뤄지는 지금의 소방공사 특성상 전기와 기계를 별도 분리해 발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민간 발주 건에 대해선 하도급을 전면 허용해 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특히 민간 부분의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에는 탄력적으로 하도급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얼마 전 입법 예고된 하위법령 예외 대상에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문구까지 들어갔다. 이 역시 타 공종이나 조례에서 전무한 규정이다.


이처럼 어렵게 도입한 분리발주 의무화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는 결과를 소방업계가 자초하고 있다. “왜 그간 소방공사 분리발주 필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며 법 도입에 힘써 왔나”라는 의문과 동시에 한숨이 나오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는 20년 넘게 건설업계 힘에 밀려 이루지 못한 소방산업의 숙원이다. 어렵게 도입한 만큼 소방 공종에 만연한 하도급 병폐를 반드시 해소하고 적정 공사 금액을 투입해 소방시설의 품질 향상을 이룬다는 본연의 목적을 꼭 실현해야 한다.


소방 스스로 소방공종의 독립성 확보와 안정화가 국민을 위한 길이라 외쳐온 지난날을 벌써 잊은 건가. 진통 끝에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와 소방청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는 법률 통과 이후 정립되는 하위법령에 관심이나 있는 건지도 의문이다.


제도 도입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온전함을 갖추기 위해선 최소한 정보통신공사나 전기공사의 분리발주 제도처럼 유사 형태로라도 하위법령을 정립해야 한다. 그게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다. 이조차 이뤄내지 못하고 오랜 세월 어렵게 지켜온 타 특수 공종 분리발주 제도에까지 민폐를 끼쳐서 되겠는가.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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