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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5 - PTSD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0/09/22 [15:5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5 - PTSD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0/09/22 [15:50]

 

누군가 그랬다. PTSD는 갑자기 오는 거라고… 요인은 항상 내재해 있다가 트리거가 당겨지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고…

 

2012년 출동 없이 한적했던 어느 주말. 점심도 먹었겠다 노곤한 몸을 대기실에 뉘어 뒹굴고 있던 차에 출동벨 소리가 일시적 빈맥을 만든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상황실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울리고 우리는 부리나케 구급차에 오른다. 현장에 도착하니 공장 사람들 예닐곱이 나와 있는데 어느 누구 하나 구급차를 향해 손 흔드는 이 없고 아무도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환자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회색 잠바를 입은 아주머니가 내 옆에 서 있던 남자를 무표정하게 가리킨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더니 오른팔이 다 터진 남자애가 있었다.

 

나는 십 초 정도 멍- 하게 팔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차가운 식염수를 때려 부었다. 어떻게 처치할지 부상 부위를 살펴보며 공장 관계자에게 계속 질문했다. 젊은 남성은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고온 프레스에 짓눌려 나일론 재질의 작업 잠바와 면장갑이 함께 열에 녹아 납작해져 있었다. 마치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 같았다. 옷을 자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웻거즈를 순식간에 붙인 후 붕대를 감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환자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제야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니 아무런 표정이 없다. 눈의 초점도 맞지 않는다. 공장 사장에게 물어보니 실습 나온 19살 공고 학생인데 ‘자폐증’ 환자란다.

 

‘아… 어쩐지 아프단 소리를 안 하더니…’

 

손가락 사이마다 거즈를 끼워주고 붕대를 감은 후 부목을 덧대고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출발한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더니

 

“무서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아까 먹었던 점심이 금방이라도 올라올 듯했다. 이날 이후 눈을 감으면 이제껏 만났던 망자들의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망자를 만났던 장소를 지날 때마다 고인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다행히 이런 증상은 열흘을 넘기지 않았고 지금은 어떤 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갖게 됐다.

 

시간이 한참 지나 그 학생을 병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오른손은 의수를 한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는 체라도 할까 하다 멀리서 쳐다보고 이내 구급차로 돌아왔다.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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