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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전 희귀암을 앓는 대한민국 소방관입니다

인천강화소방서 119구조대 김영국 소방장 | 기사입력 2020/10/19 [16:56]

[발언대] 전 희귀암을 앓는 대한민국 소방관입니다

인천강화소방서 119구조대 김영국 소방장 | 입력 : 2020/10/19 [16:56]

▲ 인천강화소방서 119구조대 김영국 소방장 

2020년 10월 18일 새벽. 구조대 사무실의 시곗바늘은 자정을 훌쩍 넘어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24시간 중 15시간 이상 근무를 소화해낸 동료들은 취약시간대에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대기실로 쪽잠이라도 청해보러 들어갔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 탓인지 동료 대부분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동료들이 잠든 사이 나는 소내 근무를 서게 되는 이 새벽 시간을 즐긴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 나는 책을 보거나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사색에 잠기곤 한다. 오늘은 잠시 사색에 잠기다 문득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내 인생의 큰 사건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2017년 1월께 내 왼쪽 뺨에 생기기 시작한 조그만 덩어리는 끝내 혈관육종이라는 희귀암으로 밝혀졌다. 이 병이 몇 해 전 사망한 고 김범석 소방장과 같은 질병이라는 사실은 내게 앞으로 순탄치 않을 삶을 예고해 줬다.


고 김범석 소방장은 죽기 전 ‘아들에게 아프다가 죽은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으로 살다가 간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며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긴 후 작고했다.

 

그의 그런 유언으로부터 시작된 공상 신청은 국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긴 소송 기간을 거쳐 작년 말에야 그의 명예로운 죽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화재현장은 물론 각종 재난현장에서의 유해물질과의 조우는 소방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암과 싸우며 느낀 생각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을 병마에 대해 소방관들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국가의 현 시스템이 참으로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대부분은 우리가 고생하는 걸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근무하진 않는다. 다들 그만큼 소명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직장이기보다 진짜 업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 소방관들의 처우는 지금도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내 경우는 민간의 자본금을 지원받아 시행된 소방청 공상입증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소방방재신문이 시초가 돼 여러 언론에 사연이 알려졌고 인사혁신처 특수질병전문조사제의 도움과 긍정적인 검토로 끝내 공상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소방청과 인사혁신처, 언론, 그리고 관심 가져주신 많은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잘못된 제도가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각 기관이나 부처는 나름대로 그에 따른 제도와 보완책을 마련한다. 소방청의 공상입증지원사업과 인사혁신처의 특수질병전문조사제도가 그렇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나 법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 또한 미봉책에 불과할 거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누군가는 소리를 내야 하고, 작은 변화는 조직 내부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방관인 우리 스스로가 노를 젓지 않으면 더이상 그 배는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의 배가 순풍을 탈 때까지 나 역시 노를 젓는 걸 멈추지 않겠다. 그 배가 끝내는 대륙에 다다르길 기원해본다.

 

인천강화소방서 119구조대 김영국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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