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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외벽 ‘활활’ 전 국민 가슴 쓸어내린 울산 아르누보 화재

대형 화재에도 사망자 ‘0’… “소방ㆍ주민 대처 빛났다”
화재 확산 키운 주범은 외장재 ‘알루미늄 복합 패널’
주민 위한 피난층… 외려 건물 뒤덮은 원인으로 작용
2012년부터 차츰 강화된 외장재 법규 “소용없었다”
대책 마련 분주… 소방시설 강화하고 대응력 높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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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0/11/10 [08:43]

[집중취재] 외벽 ‘활활’ 전 국민 가슴 쓸어내린 울산 아르누보 화재

대형 화재에도 사망자 ‘0’… “소방ㆍ주민 대처 빛났다”
화재 확산 키운 주범은 외장재 ‘알루미늄 복합 패널’
주민 위한 피난층… 외려 건물 뒤덮은 원인으로 작용
2012년부터 차츰 강화된 외장재 법규 “소용없었다”
대책 마련 분주… 소방시설 강화하고 대응력 높이기로

최영 기자,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0/11/10 [08:43]

▲ 10월 8일 오후 11시 14분께 울산 남구 달동 주상복합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15시간 36분 만에 꺼졌다.  ©독자 제공

 

[FPN 최영, 박준호 기자] = 연휴를 앞둔 지난달 8일 오후 11시 14분께 울산 남구 달동의 주상복합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15시간여 만에 꺼졌다.


삼환아르누보는 지하 2층, 지상 33층 높이에 연면적 3만1210.12㎡ 규모로 2006년 건축허가를 받아 2009년 4월 3일 사용승인을 득한 주상복합 건물이다.


3층 야외 테라스에서 시작된 이번 화재는 건물 꼭대기인 33층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이 불로 주민 92명과 소방대원 3명 등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127가구 중 16가구 전소, 8가구가 반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건물 전체를 뒤덮은 대형 화재였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로 소방의 신속한 대응과 주민의 침착한 대처가 꼽힌다. 또 콘크리트 구조물(외벽 제외)로 이뤄진 건물 특성상 방화구조로 인해 세대 간 연소 확산 방지가 대체적으로 잘 이뤄져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소방의 분석이다.


그러나 삼환아르누보 화재 이후 ‘가연성 외장재’가 적용된 건축물의 위험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 외장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기존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고 이후 열린 소방청 국정감사에서도 삼환아르누보 화재는 이슈였다. 고층 건축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고가사다리차 부재와 외벽에서 시작된 불길이 반대편까지 번진 이유를 두고 국회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70m 고가사다리차 9대를 추가 배치하고 화재 발생 위치 표시가 가능한 화재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울산 삼환아르누보 화재 사고와 드러난 문제점, 정부 대책을 정리했다.

 

◇ 소방ㆍ주민 신속 대응으로 사망자 ‘0’
울산 남구 달동 중심가에 위치한 삼환아르누보에 불이 난 건 지난달 8일 오후 11시 14분.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은 불이 건물 외벽으로 급속히 번지자 11시 44분께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중앙119구조본부와 부산, 경북, 경남소방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113m에 달하는 건물 높이와 당시 울산에 내려진 강풍주의보(초속 18.4m) 등으로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은 소방은 다음 날 오전 6시 10분께 동원령 1호를 발령하고 중앙119구조본부와 서울소방 등 9개 기관을 동원해야만 했다.

 

▲ 울산 삼환아르누보 화재엔 소방대원 1565과 헬기, 소방차 등 262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9일 오전 10시 20분께 28층에서 한 차례 재발화하면서 소방은 진압 작전에 애를 먹었다. 불은 낮 12시 35분이 돼서야 초진 됐고 화재 발생 15시간 36분 만인 오후 2시 50분께 완전 진압할 수 있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는 1565명에 이르는 대원과 헬기, 소방차 등 262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한때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킬 만큼 강한 화염이 일었지만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기적에 가까운 결과엔 소방의 신속한 출동과 주민의 침착한 대응이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화재 당시 건물 내부에 고립된 주민은 수건에 물을 적신 후 입을 대고 몸을 피했다. 28층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은 6m 높이의 상위층에서 뛰어내린 가족 4명을 펼친 이불로 받아내는 등 서로 피난을 도왔다.


소방공무원들은 집집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인명 검색을 했다. 직접 구조대상자를 업고 꼭대기 층인 33층에서 1층까지 무사히 구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고 직후 소방과 주민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을 극찬하기도 했다.

 

◇ 화재 확산 주범 ‘알루미늄 복합 패널’
3층 야외 테라스 한쪽에서 시작된 불이 단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던 이유로는 알루미늄 복합 패널이 지목된다. 타 외장재에 비해 가벼운 알루미늄 복합 패널은 단열과 흡음, 방음 등의 성능이 뛰어나 많은 건물에 쓰인다.

 

▲ 삼환 아르누보의 외장재인 알루미늄 복합 패널. 1㎜의 알루미늄 패널 2개 사이에 3㎜ 폴리에틸렌이 내장된 샌드위치 구조를 띈다.  © 소방방재신문

알루미늄 자체는 비교적 불에 강한 편이지만 문제는 패널 내부에 쓰인 폴리에틸렌이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알루미늄 복합 패널은 내장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내화 성능이 크게 좌우된다”며 “삼환아르누보는 양면으로 구성된 알루미늄 패널 틀을 접착하기 위해 폴리에틸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폴리에틸렌이 화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에틸렌 수지는 에틸렌을 중합시켜 얻은 열가소성 수지로 일반 가연성 재료보다 열방출률이 3~5배 더 높아 화재에 취약하다. 독일의 한 업체 보고서에 따르면 1㎡ 폴리에틸렌은 휘발유 3.8ℓ와 같은 열량을 가져 사실상 불쏘시개나 다름없다.


또 콘크리트 철근 구조물과 알루미늄 복합 패널 사이의 틈은 화염을 확산시키는 수직관통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삼환아르누보는 단열층을 형성하기 위해 콘크리트 외벽에 10cm의 공간을 띄우고 글라스울로 단열 처리한 후 알루미늄 복합 패널을 붙여 시공했다. 외장재와 벽 사이에 위아래로 뻥 뚫린 이 공간이 일종의 불길을 옮기는 ‘샤프트’ 역할을 한 셈이다.


박재성 교수는 “건물 외벽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공간에서도 불과 열이 소리 없이 타고 올라가 화재를 키울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불길이 될 수 있는 내부 공간을 방화구획 하는 등 실효성 있는 확산 저지 방법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환아르누보에 만약 글라스울 단열재가 아닌 화재에 취약한 일반 우레탄이나 스티로폼이 쓰였다면 화재 피해는 더욱 심각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화재 시 입주민 피난층 외려 ‘火’ 키워

 

▲ 울산 삼환아르누보 화재는 지상 3층 테라스 부근에서 최초 발생해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 불길이 건물 반대편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까닭은 화재 시 피난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는 15층 때문이었다.     ©최영 기자


화재 당시 삼환아르누보 건물은 한쪽 벽을 관통해 반대편까지 불길이 확산했다. 그 이유는 화재에 취약한 피난층의 구조 때문이었던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삼환아르누보는 15층을 화재 시 피난을 위한 전용층으로 활용해 왔다. 건축 허가상 주민 공동시설로 분류된 15층은 승강장을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뻗어 있는 구조다.


하지만 건물 정면 우측 테라스 쪽 피난층은 내부가 전소됐다. 천장에는 반대편 벽면으로 불길이 옮겨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뻥 뚫린 구조의 피난층 천장에 화재에 취약한 마감재를 써 반대편까지 불이 확산했다.


이 공간 내 천장 마감재로 쓰인 SMC(Sheet Molding Compound)가 문제였다. 열경화성수지로 만들어진 SMC는 일종의 플라스틱 천장 마감재다. 보통 필로티 구조층이나 화장실 천장 등에 쓰인다.

 

▲ 피난층이으로 운영하던 삼환아르누보의 15층은 외벽을 타고 올라온 불길에 속수무책으로 전소됐다. 오히려 반대편으로 불길을 옮기는 통로 역할을 했다.     ©소방방재신문


2015년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다친 경기도 의정부시 화재 아파트와 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건물에 쓰였던 자재와 같은 종류다. SMC는 습기와 오염, 화학물질에 강하고 단열 효과가 뛰어나지만 화재엔 취약하다.


황인호 경기 오산소방서 화재조사관 연구 자료에는 필로티 천장에 쓰이는 이런 마감재를 화재 확산의 주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황인호 조사관에 따르면 SMC 천장재의 용융점은 400~500℃ 정도다. 화재 시 천장 마감재가 타면서 홀(hole)이 생기고 천장과 마감재 사이 공간에서 공기가 혼합되면서 급속한 폭발 현상도 일으킨다.


즉 뻥 뚫린 건물의 피난층은 마치 가연성 천장 마감재를 쓴 필로티 건물처럼 불의 확산을 도왔고 천장을 타고 건너편 벽면의 외장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피난층’에 화재에 취약한 건축자재를 써 오히려 반대편 외벽까지 불길을 옮긴 ‘독’이 된 셈이다.

 

◇ “지속 강화된 법규는 소용없었다”
삼환아르누보 화재는 그동안 강화돼 온 법규에도 이렇다 할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가연성 외장재 문제에 더해 피난안전구역 등의 미비는 그간 고층 건물을 대상으로 이뤄진 법규 강화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삼환아르누보는 지난 2006년 건축허가를 받은 뒤 2009년 4월 3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법규 강화가 본격화된 2012년 이전 지어진 건물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이후 2012년부터 30층 이상 고층 건물에 가연성 외장재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다 5명이 사망한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이후 6층 이상, 제천스포츠센터 참사를 계기로 2019년 8월부터 3층 이상 또는 1층 필로티 주차장에 준불연 이상 자재 사용을 의무화했다.


한편 2012년 3월부터 50층 이상이나 200m 이상 초고층 건물, 30층 이상부터 49층까지의 준초고층 건물엔 중간 대피층인 ‘피난안전구역’을 반드시 갖추도록 강화됐다.


최소한 이 같은 법규들이 적용된 건물이었다면 이번 사고처럼 외벽으로 쉽게 불이 확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 삼환아르누보 15층 피난공간 입구에는 15층과 28층을 피난층으로 사용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방방재신문


내화건축자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축물의 외벽 마감재 규정이 강화되면서 이젠 알루미늄 복합 패널도 준불연 이상 성능을 갖춰야 한다”며 “현재 시험기준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나마 과거의 자재들보다는 안전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준불연 이상 등급의 알루미늄 복합 패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알루미늄 패널 내부의 심재가 가연성일지라도 겉면에 붙은 알루미늄 덕에 준불연 성능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다. 자재의 겉표면 위주로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관련 시험방법을 실물 화재 실험이나 내부 심재에 대한 별도 시험을 별도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열린 국회 전문가 회의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김성한 소방기술사는 “건축자재의 화재안전성을 실질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선 실물 실험 방식을 거쳐 현장에 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고층 건물 전수조사ㆍ입상배관 분리 설치 등 대책 추진
이번 화재 이후 정부는 고층 건물 화재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먼저 건축물의 구조적인 화재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강화한다. 초기 진화와 신속한 피난을 위해 화재 발생 위치표시가 가능한 화재감지기(아날로그 감지기) 설치를 검토한다.


또 건축물에 설치된 소방시설에 소화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기존 30층 이상에만 규정하는 입상배관 분리 설치(연결송수관과 스프링클러 배관 분리) 규정을 모든 건물로 확대할 방침이다.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창문 인근에 스프링클러 헤드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부터 올해 말까지 고층 건축물 화재안전시설 유지관리와 내ㆍ외장재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소방청과 국토교통부,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한국소방안전원 등 6개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실무팀을 꾸려 내년 1월까지 고층 건축물 제도개선 필요사항을 발굴하는 등 개선방안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소방은 또 고가사다리차 보강을 추진키로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현재 70m 고가사다리차는 서울과 인천, 경기에 각 2대, 부산, 대전, 세종, 제주 각 1대 등 총 10대가 운용 중이다.

 

▲ 10월 9일 70m 고가사다리차가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 울산소방본부 제공


울산엔 70m 고가사다리치가 없어 화재 당시 부산에서 출발한 고가사다리차가 6시간 만에 현장에 투입됐다. 소방청 국감에서도 70m 고가사다리차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사업비 총 126억원을 들여 울산과 대구, 광주, 강원, 충북, 전남, 전북, 경북, 경남에 각 1대씩, 총 9대의 고가사다리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고층건축물 화재대응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전담대응팀도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소방훈련의 체계화를 위한 ‘소방훈련 지원센터’도 운영한다. 이곳에서 ▲피난(비상용) 엘리베이터ㆍ피난계단 이용 인명 대피훈련 ▲현장지휘소ㆍ전진지휘소ㆍ방재실 간 정보전달체계 훈련 ▲비상용 엘리베이터ㆍ피난계단 이용 소방력 이동(진입)훈련 ▲연결송수관(옥내소화전) 등 자체소방시설 활용 화재진압 훈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분기마다 소방차량을 활용한 고층건축물 방수훈련도 시행키로 했다.
 
최영, 박준호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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