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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 안 났는데 ‘따르릉’… 신뢰 잃은 화재감지시설

오경보 잦고 점검도 어려운 소방시설, 전문가 “시스템 개선이 답”
대책 내놓은 소방청, 올해 공동주택 감지기 설치 기준 개선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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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1/02/25 [11:03]

불도 안 났는데 ‘따르릉’… 신뢰 잃은 화재감지시설

오경보 잦고 점검도 어려운 소방시설, 전문가 “시스템 개선이 답”
대책 내놓은 소방청, 올해 공동주택 감지기 설치 기준 개선키로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1/02/25 [11:03]

▲ 화재경보가 울리고 있다     ©독자 제공

 

[FPN 최누리 기자] = 서울 동작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사는 이모(28)씨는 점심을 먹다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화재 발생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경보음을 듣자마자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철컹’ 닫히는 문소리만 울릴 뿐 주변은 고요했다. 이 씨가 밖으로 나갈지, 집에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 경보음은 몇 분 만에 그쳤다.

 

이 씨는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불안감에 문 밖을 나서지만 허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경보음이 울리면 ‘신속히 대피해야 하나, 집에 있어야 하나’를 늘 고민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입주를 시작한 이 건물은 하루가 멀게 화재경보가 울렸다. 화재 상황이 아닌데도 발생한 오경보였다. 입주 후 겪은 오경보만 해도 수십 번이다. 이 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7일에는 소방차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주민들은 화재경보가 울려도 반응조차 하지 않게 됐다.

 

이 씨 사례처럼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오경보는 입주민의 안전 불감증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오경보 땐 정확한 문제 파악조차 힘들다. 이상 신호를 보낸 화재감지기를 찾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화재감지기는 동일층에 최대 수십 개를 묶어 한 회로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층까지는 화재수신기에서 파악할 수 있지만 작동한 화재감지기의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다. 결국 오경보가 잦아지면 화재수신기 자체를 꺼놓거나 화재경보를 죽여 놓는 방법으로 대처하는 게 일반적이다.

 

▲ 2020년 7월 21일 오전 8시 29분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SLC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이 같은 화재수신기 차단 문제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대형화재 사고에선 번번이 화재수신기를 정지시켜 놓다가 피해를 키웠다. 

 

지난해 7월 5명이 숨진 용인 SLC물류센터 화재 당시 화재감지기와 수신기, 소방시설로 이어지는 연동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물류센터 관리업체가 평소 오작동이 잦다는 이유로 연동시스템을 정지시켜 놓은 게 화근이었다.

 

2018년 8월 9명이 숨진 인천 세일전자 화재도 마찬가지다. 세일전자 측은 외부 경비업체 소속 경비원들에게 화재경보가 울리면 오작동일 수 있으니 수신기를 끄라는 매뉴얼을 제공했다. 화재 당일 경보가 울리자 경비원은 매뉴얼에 따라 수신기를 고의로 껐다.

 

전문가들은 건축물에 일반적으로 설치되는 화재감지시설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30층 미만 공동주택 등 건물에 설치되는 일반 화재감지시설은 화재감지기의 정확한 설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고 비화재보를 고려한 화재감지기별 기능(감도) 설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 화재감지시설은 소방시설 점검 과정에서도 한계를 불러오고 있다. 실제 최근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이 공동주택의 소방시설 세대별 점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점검 비율은 고작 15%에 그쳤다.

 

심지어 점검 용역 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세대 내를 점검한 것처럼 허위 서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모든 세대를 점검하기 어려운 소방시설 점검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런 문제 역시 세대 내를 직접 들어가지 않고선 화재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우리나라 화재감지시설의 기능적 한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꼽힌다. 따라서 정확한 화재 위치 확인이 가능하고 세대 내 화재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화재감지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반복되는 비화재보나 오작동으로 주민들은 화재경보를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생각할 뿐 아니라 점점 화재 위험에 둔감해진다”며 “실제 불이 발생해도 신속히 대피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경보 발생 시 원활한 조치가 가능하고 공동주택 세대 내 점검이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는 등 소방시설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구형 화재감지시설이 아닌 아날로그 감지기를 설치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방청도 화재감지시설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중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화재 발생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설치 환경에 따라 기능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지능형 화재감지기의 의무 설치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 지능형 화재감지기는 ‘아날로그 감지기’로 불리는데 화재 발생 여부만 알려주는 일반 화재감지기와 달리 실시간 화재감지기의 이상 상태 여부는 물론 위치 확인과 설치 환경을 고려한 화재감지기별 기능(감도) 설정이 가능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올해 중 공동주택에 화재 발생 위치의 확인과 원격 점검이 가능한 지능형 화재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동주택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할 계획”이라며 “규제영향분석 등 절차를 거치면 빨라도 올해 연말쯤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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