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여주시의 한 다방 운영자는 2008년 9월 22일 오후 9시 49분께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119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공무원들은 오후 9시 57분께 다방에 도착했다.
소방공무원들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LPG 가스통 밸브를 잠그고 내부를 살핀 뒤 때마침 다방에 도착한 위 가스사용시설을 설치한 업자 A에게 ‘가스 배관에 누수가 있는 것 같으니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하라’는 말을 남겼다.
또 건물 주민에게는 가스누출지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고지했다. 그렇지만 따로 출입 통제나 대피는 시키지 않았고 오후 10시 6분께 철수했다.
그런데 소방공무원들이 철수한 지 7분 뒤인 오후 10시 13분께 다방에서 LPG 가스 누출로 인해 가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이하 ‘이 사건 가스 폭발 사고’). 이로 인해 2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위 건물과 주변 건물 대부분이 파손됐다.
피해자 36명은 이 사건 가스 폭발 사고가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와 한국가스안전공사, 경기도 소속 소방공무원들의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고 하면서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 A와 그 종업원 B1), 보험사2), 여주시3), 한국가스안전공사4), 그리고 경기도에 사고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의 피고 경기도에 대한 구체적 청구 원인 피해자들은 피고인 경기도 소속 소방공무원들이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폭발위험에 대비해 건물 내부와 그 인근에 있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현장에서 철수한 과실이 있으므로 피해자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경기도는 소방공무원들이 일정 구역을 지정해 주민들에게 출입하지 말 것을 고지하고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 A에게 주의사항을 인계한 후 철수하는 등으로 소방공무원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모두 했으므로 업무상 과실이 없다고 맞섰다.
1심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6. 14. 선고 2009가합22865 판결) 1심 재판부는 소방공무원들이 출동 이후 건물 옥상에서 LPG 가스통의 밸브를 잠그고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 A에게 주의사항 등을 알리면서 건물 주민들에게 가스누출지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고지한 사실은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소방공무원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한 건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소방공무원들이 건물에서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걸 인지했고 건물 옥상에서 가스통을 확인한 결과 가스통 외벽이 냉각돼 가스 배관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는 걸 확인했음에도 가스탐지기 등을 사용해 가스가 얼마나 누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점화원(불씨)의 존재를 차단해 폭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거나, 건물 주민들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상 사고 현장에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다 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나머지 피고들의 배상 책임도 모두 인정했다.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 측은 가스시설 변경공사를 하면서 강관으로 설치해야 하는 가스 배관 일부를 고무호스로 설치하는 등의 과실을 저질렀다고 봤고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이러한 가스시설 상의 문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항소심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 7. 10. 선고 2013나51652 판결)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 경기도에 관해서는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소방공무원들이 건물 주민들에게 가스누출지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알렸음에도 일부 피해자의 경우 다방 안에 들어가거나 건물 주변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과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에 일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소방공무원들의 배상 책임이 60~80% 정도로 제한된다고 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들은 모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가스 폭발 사고가 가스 배관 일부를 고무호스로 설치한 과실 때문에 발생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다방 옆 분식점에서 가스가 누출돼 폭발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 피고에게는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사고의 발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와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과실 여부 역시 불명확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4다58108 판결) 항소심 판결에 대해 피고 경기도만이 상고를 제기해 소방공무원의 책임 여부를 둘러싼 판단이 다시 이뤄졌으나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은 가스 누출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소방공무원들이 가스탐지기 등을 사용해 누출된 가스양을 확인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항소심과 판단을 같이 했다.
결어 이 사건은 소방공무원들이 현장을 떠난 뒤 불과 7분 만에 발생해 소방공무원의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떠나는 소방공무원들을 신뢰해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스는 그 특성상 누출 여부 등을 눈으로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스 누출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적절한 장비를 갖고 출동해 가스 누출 여부와 누출된 가스의 양 등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약 가스 누출량이 상당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위험구역을 설정하고 대피명령을 내리는 등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한편 이 사건 판결은 과실과 손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돼야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현행 법리를 따른 판결이기는 하나 예방 주체와 대응 주체에게 사고 발생의 책임을 적절히 분배하진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발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고를 야기한 주체는 아무런 배상책임도 지지 않은 반면 대응 상의 과실을 범한 주체에만 배상책임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고든 사후적으로 발생 원인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사고 현장이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응 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탓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실제로 우린 많은 사고에서 사고를 야기한 원인자는 불명인 채로 대응 주체만이 대응 실패의 책임을 지고 여론의 포탄을 맞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제도나 인력, 기술의 개선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대응 주체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는 유사한 사고 발생을 막고 피해자의 피해복구를 위한 재원을 효과적으로 마련할 수 없다.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신속하고도 과학적인 사고 조사의 토대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
1)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는 가스 배관 중 일부를 강관이 아닌 고무호스로 설치하는 등의 설치상 과실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피고가 됐다. 2) 가스사용시설 설치업자와 가스사고배상책임 보험계약을 체결했던 보험사다. 3) 여주시는 한국가스안전공사를 감독할 지위에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피고가 됐다. 4)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가스사용시설에 대해 정기검사 등을 실시했으면서도 문제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고가 됐다.
한주현 변호사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근무하며(2018-2020) 재난ㆍ안전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보험이나 손해배상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청원_ 한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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