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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방 이야기가 아니다. 09 조금만 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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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소방서 조이상 | 기사입력 2022/02/21 [10:00]

이 글은 소방 이야기가 아니다. 09 조금만 더 천천히

충남 아산소방서 조이상 | 입력 : 2022/02/21 [10:00]

지난 여름 길에 사람이 누워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다. 날도 더운데 어떤 아저씨가 뙤약볕에 앉아있었다. 

 

구급대원이 말을 걸고 손을 잡으려는 순간 아저씨는 발로 구급대원을 차고 주먹질을 했다. 경찰에 폭행으로 협조 요청을 했다. 경찰도 오고 소방 사법팀도 왔다. 

 

아저씨는 조현병 환자였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헤이와이어를 연상하면 된다.

 

구급대원은 폭행을 당했지만 폭행처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 모 가수가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폭행과 음주운전은 결과론적이기는 하다. 실수든, 고의든, 화가 나든, 자신의 힘을 과시하든,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된다.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느낀 건 아저씨의 행동은 강아지가 더 큰 상대가 오면 짓거나 무는 행동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방어적이었다. 아저씨 눈의 9할은 두려움이었다. 경찰이 와서 조사하려고 했으나 원활하지 않았다. 결국 아저씨는 병원에 안 가기로 했다. 거부 확인서를 받고 작은 소동의 전반전은 끝났다.

 

4일이 지났다. 

 

주택화재 신고를 접수한 건 오전 8시 40분. 교대점검이 시작될 때였다. 현장에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갔다. 그때 그 아저씨 집이었다. 허름한 판잣집에 아저씨는 불을 낸 것이다.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고 아저씨는 창문 밖으로 살려달라고 외쳤다.

 

막내 반장은 동력절단기를 이용해서 출입문을 자르고 아저씨를 구조했다. 아무 옷도 입지 않은 아저씨를…. 몸에 화상을 많이 입었다. 모포로 아저씨를 덮은 후 구급차로 이동시키고 고압산소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했다.

 

나는 남아서 활활 타는 판잣집의 불을 껐다. 그 안에는 쓰레기장처럼 잡동사니가 너무 많아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래도 최근에 크로스핏 한 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옥상에서 LPG 가스를 잠그고 잔불 제거를 하는데 경찰과 이웃 주민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요즘 경찰과 사회복지공무원이 많이 찾아와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불을 완전히 끄고 센터로 돌아왔다. 1시간 뒤에 구급대원이 돌아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아저씨는 이런 말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주님이 구해주셨다고… 지옥에서 살아났다고…”

 

자신이 자초한 불지옥이었지만 지옥 ‘불’에서 살아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지옥은 불을 말하는 것일까? 공무원들을 말하는 것일까? 주님이 구해주셨다는 말에 나는 화부터 났지만 조현병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의 신앙고백에 토를 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두려운 건 그 아저씨가 누구를 때리고 “주님이 하셨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저씨가 경찰이고, 사회복지공무원이고 많이 찾아와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공무원들의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아가 우리는 뭐 하는 사람일까? 

 

마라톤으로 비유해 본다. 경찰은 길을 잘못 가면 길을 알려주는 역할이고 사회복지공무원은 신발이 떨어진 채 뛰는 사람의 신발을 교체해주는 사람이다. 소방관은 뛰다가 넘어지면 손잡고 일으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사실 뛰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냥 쉬어야 되는 사람인 것이다. 언젠가 이 아저씨가 화상 치료를 마치고 복귀했을 때 누군가는 조금 더 조심스레 다가가면 좋겠다.

 

충남 아산소방서_ 조이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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