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동해안 덮친 최악 산불… 서울 면적 3분의 1 초토화213시간 만에 주불 진화, 역대 두 번째 피해 규모
|
겨울 가뭄과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진 경북 울진ㆍ강원 삼척 산불이 역대 최장기 산불 기록을 세우며 213시간 만에 주불을 진화했다. 강원 강릉과 영월 등 동해안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까지 포함하면 서울 면적의 3분의 1 이상이 불타 두 번째 피해 규모다.
3월 4일 오전 11시 17분께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삼척까지 번졌다. 이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남하해 울진읍 등 주거밀집지역과 금강송 군락지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산림청은 소방을 비롯해 군과 지자체 등으로부터 많은 헬기와 장비, 인력을 지원받아 산불 진화에 전력을 쏟았다. 막바지엔 금강송 군락지가 있는 소광리와 산세가 험한 응봉산 쪽 불길이 거세져 진화에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산불 발생 213시간 만이다.
이 밖에도 3월 4일 오후 12시 45분께 영월 김삿갓면 와룡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약 93시간 15분, 3월 5일 오전 1시 8분께 강릉 옥계면 남양리 주택에서 발생한 불은 동해까지 번져 89시간 52분 만에 진화가 완료됐다.
이번 산불 진화엔 10일간 누적으로 헬기 1212대가 투입됐다. 소방차 등 누적 6180대 장비와 소방ㆍ산불진화대ㆍ군인ㆍ경찰ㆍ공무원 등 총 6만9698명(연인원 기준)이 동원됐다.
소방청, 전국에 화재위험경보 ‘심각’ 첫 발령… 산불 총력대응
소방은 3월 4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선착대가 처음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신고 접수 17분 만인 오전 11시 34분께. 산림 등 관계기관과 초기 화재진압에 주력했지만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불면서 불길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이에 소방청은 이날 오후 ‘전국 소방동원 1호’를 네 차례에 걸쳐 발령했다. 다음 날인 5일 오전 5시 30분께 ‘전국 소방동원령’을 2호로 격상하고 오전 8시께 전국에 화재위험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2000년 8월 ‘전국 소방력 동원 및 운영 관리에 관한 규정’ 제정ㆍ시행 이후 한 건의 산불로 ‘전국 소방동원령 1호’가 네 차례나 연속 발령된 건 처음이다. 소방청 차원에서 전국에 화재위험경보 ‘심각’을 내린 것도 최초의 일이다.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따르면 화재위험경보의 ‘주의’는 기상특보(주의보)가 1개 발령됐거나 중요행사 기간 중 내려진다. ‘경계’는 3개 이상 시ㆍ도에 기상특보 2개가 발령됐거나 중요행사 기간 중 특보가 1개 발령됐을 경우 발표된다. ‘심각’은 3개 이상 시ㆍ도에 기상 특보가 3개 이상 발령됐거나 중요행사 기간 중 특보가 2개 발령됐을 때 내려진다.
소방관서는 화재위험경보 ‘심각’이 발령되면 가용 소방력의 100%를 즉시 대응 태세로 유지한다. 또 산불 등 화재 시 초기 단계부터 소방관서장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의용소방대원은 화재 예방 활동에 동원되고 산불 등 화재진압 활동에도 투입된다.
동원령에 따라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의 가용 인력이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ㆍ강릉ㆍ영월에 분산 배치됐다. 3월 4일부터 13일까지 동원된 소방인력만 1만130명(연인원 기준)이다. 소방차는 3450대에 달한다.
현장에서 대응을 시작한 소방은 산불 예상 경로를 파악하며 지자체, 관계기관과 함께 주민을 대피시켰다. 또 민가와 요양원, 국가주요시설 등 시설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때 산불이 울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와 삼척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 금강송 군락지 등 주요 시설을 위협하면서 소방과 산림에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울진 산불이 처음 발생한 4일엔 불길이 시속 2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최초 발화지점에서 직선거리로 11㎞ 떨어진 한울원전 울타리 주변까지 불씨가 날아들었다. 소방은 한울원전에 고성능화학차(로젠바우어) 5대를 비롯한 소방차 24대를 배치해 산불확산 방지에 집중했다.
같은 날 오후 5시엔 삼척 원덕읍 호산리 LNG 생산기지 후문 1㎞까지 불길이 접근했다. LNG 생산기지는 98만㎡ 부지에 LNG 저장탱크 12기와 시간당 1320t 규모의 기화 송출설비를 갖춘 국가 중요 시설이다. 중부지방을 비롯해 강원과 영남지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만약 이곳까지 불이 번졌다면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소방은 월천저수지를 진화 자원 집결지로 정하고 민가보호를 위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호산 삼거리 주유소에는 현장지휘소를 설치했다. 이후 인력 26명과 장비 16대를 투입해 LNG 생산기지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예비 살수 작전을 펼쳤다.
여기에 올해 처음 도입한 대용량포 방사시스템 2대와 소방차 16대를 전진 배치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대용량포 방사시스템은 대형펌프차 26대가 동시에 방수하는 수준인 분당 7만5천ℓ의 소방용수를 최대 130m까지 방수할 수 있다.
이번 산불에선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보호가 관건이었다. 소광리는 국내 소나무 중 재질이 뛰어나 최고로 치는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하다. 2247㏊ 면적에 수령이 200년이 넘는 노송 8만그루가 있다. 수령이 520년인 보호수 2그루와 수령이 350년인 미인송 등 1천만그루 이상의 다양한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소방은 6일부터 12일까지 소광리 일대에 소방관 639명과 소방차 277대를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또 소광리 임도상에 소방차 76대를 배치해 세 차례에 걸쳐 예비 주수하는 등 군락지 방향으로 남하하는 화선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불길이 퍼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민가 방어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울진 산불이 발생한 첫날인 4일 오후 6시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고포마을은 불길이 마을 전체를 덮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소방은 소방차 3, 산불전문진화차 2대 등 장비 5대와 인력 12명을 긴급 배치했다. 소방차를 활용해 주택 등에 예비 주수도 진행했다. 소방에 따르면 산불전문진화차는 마을 곳곳을 누비며 주택으로 번진 불을 막았다. 그 결과 마을 주변 산림은 상당 부분 탔지만 주택 50채 중 5채만 소실되는 수준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의용소방대원의 활동도 돋보였다. 4일부터 11일까지 울진과 삼척, 강릉, 동해, 영월 등 산불 현장에는 의용소방대원 5273명이 동원됐다. 이들은 산불 현장에서 등짐펌프를 둘러매거나 불 갈퀴를 사용해 혹시 모를 잔불 진화에 힘썼다. 현장 대원들의 급식 지원과 피해 현장 복구지원에도 나섰다.
서울 면적 3분의 1 불타… 역대 두 번째 피해
울진에서 시작해 삼척까지 번진 산불은 213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되면서 산불 역사상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198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길게 이어진 2000년도 동해안 산불(191시간)을 뛰어넘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집계한 이번 산불 피해 면적은 최초 2만4940㏊였다. 그러나 4월 6일을 기점으로 중대본은 2만523㏊로 수정 발표했다. 지역별로는 울진ㆍ삼척이 1만6302㏊, 강릉ㆍ동해가 4221㏊였다.
피해 면적은 산불 통계를 집계한 1896년 이후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천794ha)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준이다. 서울 면적(6만500㏊)과 비교하면 33.9%, 축구장 면적(0.714㏊)의 경우 2만8744개, 여의도 면적(290㏊, 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은 70.8배 정도다.
울진에서만 1만4140㏊의 피해가 발생해 단일 발화 산불 면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참석의 1만3343㏊보다 피해 면적이 넓었다.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는 226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울진 1717억2900만, 동해 283억6천만, 삼척 147억1200만, 강릉 112억7천만원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산불로 주택 322동, 농기계 1899대, 농ㆍ어업시설 393개소 등의 사유시설과 공공시설 82곳이 소실되는 피해가 났다.
정부는 이번 산불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던 배경으로 강풍과 짙은 연기 등을 꼽았다. 산불 초기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불면서 피해 구역으로 급속히 번져 진화에 난항을 겪었다. 산불 현장 일대는 자욱한 연기로 뒤덮여 헬기 진화도 어려웠다. 특히 울진 응봉산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고 산세가 험해 진화인력 투입이 쉽지 않았다는 게 산림청 설명이다.
매년 봄철마다 양양과 고성ㆍ간성 사이에서 국지적으로 강하게 부는 ‘양간지풍’이 이번 산불의 주범으로 꼽힌다. 양양과 강릉 구간에서 불기도 해 ‘양강지풍’으로도 불린다.
양간지풍은 상층 대기가 불안정한 역전층이 강하게 형성될수록, 경사가 심할수록, 공기가 차가워지는 야간일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산불의 확산 속도를 올리는 건 물론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 현상까지 일으킨다.
이번 울진ㆍ삼척 일대에 번진 산불도 강풍을 타고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경북도 경계를 넘어 직선거리로 27㎞가량 떨어진 삼척 LNG 생산기지까지 위협하는 데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울진ㆍ삼척 산불 원인조사 본격화… 첫 합동감식
10일간 이어진 울진ㆍ삼척 산불이 사실상 진화되면서 정부가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경북 울진군과 울진경찰서, 경북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산림청,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는 16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 산불 발화지점에서 합동감식을 벌였다.
앞서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는 산불 직후 2회에 걸쳐 사전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해당 지점은 주민 신고가 들어온 마을 주변으로 보행로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 옆이다.
산림당국 등은 산불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불이 시작된 4일 발화지점 주변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발화 시점을 전후로 이 지역을 지나던 차량 4대의 번호와 차종을 확보했다. 경찰과 울진군은 이를 토대로 조사하고 있다.
울진군은 그간 차주 4명을 대상으로 전화나 면담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고 차량 블랙박스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등을 바탕으로 산림청, 경찰 등과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산불 이재민에 조립주택 제공 등 범정부 지원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울진과 삼척, 강릉, 동해 주민에게 임시 조립주택과 공공 임대주택 등을 제공하고 건강보험료 경감과 국민연금 납부 유예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동해안 산불피해 수습ㆍ복구 지원 방향’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재민이 무료로 거주할 수 있는 임시 조립주택을 설치해 1년간 무상 제공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재민을 대상으로 2년간 임대료 50%를 감면하는 조건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한다. 만일 이재민이 자가 복구를 희망하면 재해주택 복구자금 융자(최대 8840만원)를 지원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재민의 건강보험료를 3개월 동안 최대 50% 경감하고 국민연금은 1년의 납부 예외 기간을 부여할 방침이다. 집이 없어진 이재민의 경우 병원과 약국 이용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인하하기로 했다. 멸실된 건축물에 대해선 전기와 가스요금을 감면하거나 납부 유예를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피해 지역 주민의 휴대전화 요금은 가구당 1만2500원, 유선전화는 월 요금 100%, 인터넷은 월 요금 50%를 감면하는 등 통신서비스 요금 감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소방청은 이재민 수용시설과 수도가 파손된 민가 등을 대상으로 생활용수를 지원한다.
정부는 중앙재난피해합동조사단을 구성해 18일까지 중앙정부 차원의 피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토대로 복구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