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조사관 이야기] 정황은 그러한데 딱히 특정할 수 없고 규명될 듯? 미지일 듯?우린 현대를 살아가면서 설마? 아하! 그럴 거야… 할 때가 있다. 무언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고 전혀 보이지 않지만 살짝 보이는 듯한 그런 기분을 느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이런 기분이 들 때 우린 ‘찝찝하다’는 표현을 쓴다.
화재조사관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면서 늘 명쾌하게 답을 찾았으면 하지만 녹록지 않다. 화재조사관도 명쾌하게 화재 원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화재 현장에서 원인을 찾아 규명하는 건 아니다.
화재 원인이 궁금하고 명쾌하게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은 화재조사관의 가장 큰 소망일 거다. 화재 현장을 조사했는데 원인 규명을 못 하면 마치 고무줄 없는 바지를 입은 느낌이 든다. 석연치 않고 무언가 빼 먹은 느낌이 자꾸 뇌리를 스치며 자신을 괴롭게 한다.
학습한 후 연구하고 타인과 지식을 교환하며 찾아 규명하려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보고서는 길어지고 화재조사관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항간엔 ‘미상’이란 원인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가장 편하고 “책임이 없다”란 말을 들으면 ‘내 생각과 차이가 있구나’ 하고 혼자 말을 할 때도, 의견을 개진하고 설명할 때도 있다고들 한다.
필자로서는 사실 가장 힘든 원인 규명이 ‘미상’이다. 모든 화재 원인을 타당성 있는 이유를 들어 배제하고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재 실을 점유한 이 씨는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은 채 탈출하지 않았고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다는 게 고시원 주인 김 씨 증언이다. 고시원 ③번 실에 있던 이 씨는 전신 2도, 45%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목격자 진술을 청취하라! ①번 실에 거주하던 신 씨는 취침 중 타는 냄새를 맡고 ①번 실 문밖으로 나와 살펴보니 ③번 실 문 틈새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걸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③번 실 내부에선 인기척이 없었고 화재 사실을 소리쳐 알리고 대피했다고 증언했다.
또 ③번 실 점유자 이 씨는 ③번 실 문 앞에 엎드린 채 있었다고 했다. 목격자 진술과 연소 패턴이 일치하는 것으로 볼 때 발화지점은 ③번 실에 한정된다. 복도와 다른 실은 일부 그을린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현장을 관찰하라!
증거를 찾아라!
석고보드 하소 현상은 일반적으로 약 800℃ 정도 열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하소 현상 주변에서 발화했거나 화재 하중이 크게 걸리는 가연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냉장고에서는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았고 마치 전면에서 화염에 노출돼 후면으로 연소한 현상으로 식별됐다. 냉장고 단열재는 우레탄 폼으로 제작돼 있으나 보통 화재 현장에 잔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냉장고 측면에 잔류하는 패턴은 대부분 전면에서 후면으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특이점은 문턱 내부에 집중 탄화한 지점이 식별됐고 하단부에 쓰레기 봉지로 판단되는 비닐봉지가 있었다. 물론 쓰레기와 가연물이 있어 집중적으로 탄화한 형태로 판단되지만 점화원이 뭐였을까.
인위적? 부주의? 이런 경우 만감이 교차한다. 화재가 발생했는데 탈출 시도도 하지 않은 데다가 집중 탄화한 지점이 출입문 앞이다. 뭔가 석연치 않은 형상이 자꾸 떠오르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글을 읽는 독자나 혹 화재조사관은 “아, 그거네”하고 무릎을 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화재 원인은 추측성으로 증거 없이 논하면 억울한 가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증거가 없다면, 증거를 못 찾았다면, 원인을 섣불리 추정해 기록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차단기가 트립 됐다고 전기적 요인으로 기록하거나 화염이 천천히 진행된 패턴이 보인다고 미소화원이라고 기록하면 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심사숙고해야 하는 부분이 화재 원인이다.
원인이 아닌 건 배제하라!
여름이라 당연히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전기온돌 패널 조절기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 건 배제를 위한 증거 확보 때문이다. 화재 현장에는 직접증거와 간접증거, 증거가 아닌 증거 등이 존재한다.
즉 화재 원인의 증거가 아니더라도 현장에 있던 물건이나 기기들의 현상을 기록한다면 화재조사서 신뢰성이나 공신력에 도움이 된다.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고시원 ③번 실에 국한된 화재로 발화지점을 달리 특정해 논할 필요는 없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최초 목격자 신 씨는 ③번 실 문 틈새로 연기가 나오는 걸 보고 문을 두드렸으나 문이 잠긴 채로 있었고 인기척도 없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또 ③번 실 내부만 연소 현상이 관찰되고 복도나 주변으로 연소 확대 흔적 없이 그을린 형태만 잔류해 있었다.
③번 실에 국한된 화재로 내부에는 냉장고와 밥솥, 전기온돌 패널, 쓰레기 봉지가 있었다. 냉장고는 전기를 꽂아 사용했으나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았다. 밥솥은 플러그가 뽑혀 있어 사용하지 않은 형태가 확인됐고 전기온돌 패널의 Fuse를 확인한바 전혀 이상이 없어 배제할 수 있었다.
부주의 가능성은 ③번 실 내부는 약 7㎡의 크기로 내부를 발굴한바 부주의 개연성이 발굴되지 않았다. 다만 출입구 신발을 벗어 놓는 지점에 휴지를 담아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비닐봉지와 닭 뼈, 소주병이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음주 후 흡연한 담배꽁초에 의해 발화됐을 가능성이 있으나 증거물 없이는 논할 수 없었다.
다만 ○○고시원 대표 김 씨의 ③번 실 거주자 이 씨가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해(화재 전일) 고시원에서 자신과 술 한잔을 하자고 했으나 거절했다는 진술과 입원 치료 이전에도 여러 차례 죽고 싶다는 내용의 얘기와 메모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는 진술로 인위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연소 패턴은 ③번 실 내부에 국한돼 있었다. ①번 실 거주자 신 씨가 문을 두드려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던 건 취침 전 음주에 의한 건지, 화재로 인해 자구력 상실상태가 된 건지 알 수 없다. ③번 실 점유자 이 씨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인위적으로 착화했을 개연성은 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음주 후 취침 중에 발생한 화재로 음주로 인해 화재인지가 늦었을 수 있다. ③번 실 내부 전선에서 단락으로 여겨지는 용융 흔적이 수사기관 감식에서 발굴됐다.
하지만 전기온돌 패널은 기온상승으로 인해 사용하지 않았으며 온도조절기 Fuse를 확인한바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전기밥솥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냉장고 전선도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전기적 특이점을 논할 수 없는 점과 화재는 ③번 실 내부에 특정되는 화인이 없었던 것으로 볼 때 인위적인 착화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정확한 화재 원인은 논단할 수 없다.
1) 하소: 어떤 물질을 공기 중에서 태워 휘발 성분을 없애고 재로 만들다. 2) Fuse-element: 과전류가 흐르면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열에 의해 녹아서 끊어지도록 만든 퓨즈의 가용 부분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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