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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신(神)의 노함인가, 안전불감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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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2/08/22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신(神)의 노함인가, 안전불감증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2/08/22 [10:00]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토속신앙이 있고 그 신앙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이란 어쩌면 인류와 함께 존재했던 정신적 버팀목이 아녔겠느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종교를 잘 알진 못하지만 인도의 불교는 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모시는 신앙이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그리스도의 사상(史上)으로 예수를 모시는 신앙이다. 가톨릭은 로마 바티칸에서 보편교회의 전통을 의미하는 사상의 신앙이다.

 

무속신앙은 우리나라 토착 종교고 이를 믿는 사람이 많다. 집에 신단을 차리고 숭배하며 그 사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길함이나 길운을 빌 때 들이나 계곡을 찾아 굿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종교를 믿던 신앙하는 사람의 자유고 그 누구도 신앙에 관해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믿고 따를 뿐이다.

 

종교를 믿는 시설이나 단체에서 화재 또는 재난이 발생하면 흔하게 신앙이 부족해서 그러하니 기도하고, 수련하라고 한다. 종교를 갖고 신앙심을 키우는 건 어찌 보면 개인의 성향이고 다른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확고한 진리이자 신앙을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상태로 생각된다.

 

어느 초여름 신전을 모시는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화재는 오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발생했다. 신단을 차려놓은 방에서 최초 화염이 시작됐다.

 

관계자 진술을 처음에 확보하라!

주택 내부에서는 부부가 안방에서 자고 있었고 신단엔 촛불을 켜 놓은 상태였다고 관계자 오 씨가 진술했다. 오 씨는 화재 현장에서 속옷 차림인 채 밖으로 대피했고 경황없는 모습으로 일관된 진술을 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처음 하는 진술은 무심코 현장 상황을 그대로 얘기하고 가감 없이 오염되지 않는 내용을 그대로 진술하기에 최초 진술한 내용은 신뢰성이 높다.

 

현장을 살펴라!

화재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건물 2층에서 발생했다. 발생 시간은 오전 1시께로 3층 주택엔 취침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현장 도착 시 화염이 창문을 통해 분출하고 있었고 “3층에 구조대상자가 있다”는 무전이 들렸다.

 

진압대원과 구조대원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재조사관은 조사관 나름대로 분주하게 현장을 조사했다. 부상자는 화상 1, 경상 3명 등 4명이었는데 구급차 4대로 분산 이송했다.

 

목격자 진술과 현장 연소 패턴

관계자 오 씨는 취침 중 타는 냄새가 나서 확인하니 신(神)을 모시는 방 신단에서 불길이 보여 수돗물로 진화를 시도하면서 119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신방(神房)1)에서 최초 불꽃을 봤고 무속신앙 제단(이하 신단)에 촛불을 켜 놓은 채로 취침했다고도 했다.

 

화장실 수돗물이 틀어진 상태였고 부엌과 작은 방은 소훼도가 약하게 나타나 있었다. 큰방과 거실보다 신방이 심하게 소훼된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 [사진 1] 분출 화염

 

천장 연등에 연결된 조절기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됐다. 하지만 창문이 열린 상태로 촛불을 켜 놨다면 바람에 의해 내부에 설치된 종이나 연등에 늘어진 장식이 바람에 날려 촛불에 닿아 착화됐을 가능성이 있다.

 

현장에서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선입견을 품고 현장을 조사하다 보면 진실을 볼 수 없다. 목격자 진술은 참고만 하고 현장은 진술 내용과 연소 흔적, 증거의 가능성, 다른 증거의 발화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해 조사해야 한다. 특정인 진술에 치우쳐 현장을 조사하다 보면 진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 [그림 1] 평면도

 

연소 패턴을 확인하라!

평면도의 신단이 차려진 지점에서 불이 났고 주변으로 연소 확대한 흔적이 관찰됐다.

 

▲ [사진 2] 주방

 

주방은 하단보다 상단의 소훼 상태가 심했다. 전체적인 연소 흔적만으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화염이 이동한 형상으로 판단했다.

 

▲ [사진 3] 안방

 

안방의 침대나 장식물은 모두 표면만 탄화한 형태였다. 화염 전파보단 복사열에 의한 형태로 관찰됐다. 전체적인 연소 패턴은 하방 연소한 형상으로 판단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상단만 탄화하고 벽지도 검게 표면만 탄화한 형태로 잔류했다. 사진 왼쪽 아래에 의류가 원형 그대로 잔류한 형태는 화염 전파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사진 4] 주방 옆 작은방

 

작은방도 상단에서 하단으로 하방 연소한 형태였다. 하단은 미연소 상태로 잔류해 있다. 발화지점과 관계없는 부분을 촬영해 기록에 남기는 건 연소 확대 경로를 파악하고 발화지점을 축소하기 위해 하나하나 배제하며 발화지점에 근접하는 방법이다.

 

▲ [사진 5] 신방

 

[사진 5]는 신방에 설치된 신단이다. 전체적으로 골고루 연소했다. 백색 선으로 표시한 부분에 촛대가 설치돼 있었고 모두 켜놨다고 했다. 촛대 위에 안전하게 설치된 촛불이 주변을 연소시키려면 촛대가 쓰러지든지, 가연물이 촛불에 접촉하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화재진압이 끝난 후 현장을 확인하니 촛대 3개가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만 촛대 하나만 상단이 파손돼 초를 꽂았던 부분이 이탈됐다.

 

가능성 있는 원인을 살펴라!

현장에서는 발화요인의 가능성이 있는 증거물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 먼저 촛불을 켜 놨다고 하니 촛대에 잔류한 형태로 화재 당시 점화돼 있었는지, 출화했는지, 외부 화염의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살펴 확인해야 한다.

 

관계자 진술대로 그냥 ‘촛불 발화’로 단정하지 말고 촛불이라도 정당한 근거를 찾아 보고서에 기록해야 한다. 그게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목격자 진술에 의존해 그 원인만을 찾아 규명한다면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

 

먼저 촛대 세 개 중 왼쪽에 있던 촛대를 확인해 출화 여부를 판단한다. 왼쪽에 있던 촛대는 받침대에 초가 녹아 파라핀이 물 위에 부상(浮上)돼 있었다. 화염이나 촛불 자체 열기에 의해 모두 용융된 상태에서 진압 주수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 [사진 6] 왼쪽에 있던 촛대

 

왼쪽에 있던 촛대의 파라핀 형태는 용융됐다가 냉각되며 굳은 형상이었다. 따라서 직접 출화 가능성은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변 가연물이 바람에 날려 접촉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 [사진 7] 가운데 있던 촛대

 

가운데 있던 촛대 케이스는 플라스틱으로 판단된다. 용융 형태가 촛대 내부 방향으로 연화한 형태를 띠어서 내부 발열보다 외부 수열에 의한 형태로 판단했다.

 

내부에서 발화해 주변으로 연소 확대했다면 플라스틱 케이스가 밖으로 연화돼야 한다. 그러나 내부로 움츠린 형태로 연화됐다는 건 외부 수열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판단했다.

 

▲ [사진 8] 오른쪽에 있던 촛대

 

[사진 8]처럼 촛대에 초나 파라핀 흔적은 잔류하지 않았다. 촛대 몸체는 세라믹, 초를 꽂는 곳은 텅스텐으로 제작됐다. 초가 다 타들어 가도 연소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 [사진 9] 촛대와 전선 확인

 

오른쪽 촛대 받침 텅스텐이 있던 부분이다. 측면에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신전 상단에 연등을 켜기 위해 설치한 전선이라고 했다. 촛대 받침은 현장 조사 시 [사진 9]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전선에서는 전기적 요인에 의한 흔적이 관찰되기도 했다. 백색 사각 부분에 있는 건 연등 광도 조절기로 확인했다.

 

▲ [사진 10] 연등 광도 조절기 전선의 용융 흔적

 

연등 광도 조절기 연결선에서 전기적 흔적으로 식별되는 용융 흔적이 관찰됐다. 물론 전기적 흔적이 선행됐는지, 화염에 의해 피복이 손상되며 전기적 흔적이 형성됐는진 알 수 없다. 현장의 정황이나 증거, 전선과 화인의 배열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 [사진 11] 플러그 용단 흔적

 

신방 출입구 오른쪽 벽면 콘센트에 꽂혀있던 플러그다. 전선에서 전기적 용단 흔적이 관찰됐다. 화재 현장에는 흔하게 존재하는 게 전선의 용단 흔적이다. 용단 흔적만으로 발화 원인을 논단하긴 쉽지 않다.

 

연소 패턴이나 가연물, 전선 인입과 부하 관계, 차단기 ON/OFF 등을 고려해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

 

▲ [사진 12] 천장 전선의 용단 흔적

 

천장 조인트 박스에 연결된 전선을 확인해 보니 전선에서 용단 흔적이 관찰된다. 전선의 전기적 용단 흔적 중 어떤 흔적이 선행됐는지 알아보려면 연결된 차단기와 탄화물, 미연소 잔류물, 입력과 부하 등을 모두 확인해야 선행 여부를 비로소 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물이 전기적 용단 흔적으로 판단되면 ‘전기적 요인’으로 결론지으려고 한다. 이런 판단은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어 증거가 있어도 신중해야 한다. 증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하지만 그 증거가 여러 개 수집될 땐 혼돈이 있을 수 있다.

 

▲ [사진 13] 소락물 확인

 

소락물 중 미연소 연등이 확인된다. 천장에서 선행된 화재라면 천장으로 먼저 연소 확대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천장의 장식물이 소락된 건 측면이나 고정했던 부분이 연소하며 소락된 것으로 판단했다.

 

▲ [사진 14] 발굴 후 모습

 

신단의 탄화형태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 가연물과 잔류물을 제거하고 확인했다. 구조물의 배치는 비슷했으나 오른쪽의 탄화도가 심하게 관찰된다. 촛대를 복원해 확인한 결과 촛대를 중심으로 연소 확대했다고 판단했다.

 

▲ [사진 15] 오른쪽 촛대 확인

 

오른쪽 촛대를 화재 발생 전 있던 자리에 놓고 확인하니 촛대를 중심으로 연소한 흔적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확인된 3개 지점의 전기적 용단 흔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사내용을 정리해 보라!

점유자이며 신고자인 오 씨의 진술은 일관됐다. 취침 중 타는 냄새가 나서 확인하니 신방 신단 위에서 불길이 보였고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떠다 화재를 진압하려 했으나 실패해 밖으로 탈출했다고 했다.

 

안방과 작은방, 주방보다 신방이 심하게 소훼된 형태로 발화지점은 신방이 맞다. 신단 위에서 발화한 형상인데 왜 연등 일부가 미연소 상태로 소락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오른쪽 촛대에서 발화해 수직 연소 확대하고 천장에서 수평으로 화염이 이동할 때 연등을 고정했던 PVC 끈이 연소ㆍ소락해 미연소 상태로 잔류한 거로 판단했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화재는 오전 1시가 넘은 시간에 신고됐고 화재 당일 서울 기상청 기준으로 상대습도는 81%, 풍향ㆍ풍속은 서북서, 0.4m/sec, 온도는 22.4℃였다. 창문을 열어 놨기에 풍향의 영향을 받았을 거다. 신당 신단 위에는 화학약품이나 화학물질이 없었고 파라핀만 확인됐다.

 

방화 가능성은 가입된 보험이나 화재로 인한 수익 발생이 없고 점유자가 취침 중 속옷 차림으로 탈출한 상황이라 인위적인 착화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발화지점이 특정됨에 따라 외부 침입에 의한 방화 가능성도 배제된다.

 

전기적 요인을 살펴보면 화재 현장에서 전선의 용융 흔적이 3개소 식별됐다. 천장과 신단 위, 발화지점 출입구 오른쪽 벽면 콘센트 플러그에서 각각 발굴됐다. 천장에는 수열에 의해 형성된 용융 흔적이 식별됐다. 신단 위 용융 흔적은 단락 흔적으로 보이나 수열에 의해 전선 피복이 손상돼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 출입구 옆 콘센트에 형성된 용융 흔적이 단락 흔적으로 보이나 직접 발화 원인이라기보단 수열에 의해 피복이 손상되며 형성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재 당일엔 점유자 오 씨가 신단에 촛불을 켜 놓고 취침했다고 진술했다가 4일 후 재조사 과정에서 촛불을 켜 놓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최초 속옷 차림으로 현장에서 진술한 내용이 오염되지 않은 진술로 판단했다. 신단이 설치된 방 창문은 일정 부분 개방된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게다가 화재 전일 기상관측에 따르면 오후 11시께 북동풍, 밤 12시 30분께 서풍, 오전 1시께 남서풍이 관측된 것으로 볼 때 창문을 개방해 놓은 상태에서 켜 놓은 촛불이 산란되며 주변 종이나 늘어진 연등 부속물에 착화했을 개연성이 있다. 

 

결론을 내려라!

신단 오른쪽 촛대를 중심으로 연소된 흔적이 관찰된다. 왼쪽 촛대에는 파라핀이 용융된 상태로 부상된 형태가 관찰되는 반면 오른쪽 촛대에는 파라핀 흔적이 관찰되지 않는다.

 

중간 촛대는 심지와 초 케이스 형태를 확인하니 자체 발열보다는 외부 수열에 의해 형성된 형태로 관찰된다. 신단은 상단에서 하단으로 소락ㆍ연소된 형태였다.

 

오 씨는 촛불을 켜 놓고 취침했다고 최초 진술했고 화재 당일 창문이 열린 상태로 비바람이 불었다. 풍향이 수시로 바뀌어 신단에 켜 놓은 촛불이 산란하며 신단 주변 종이나 연등에 착화해 발화된 화재로 추정했다.

 

 

 


1) 신방(神房): 민속 무당이 영을 모셔 놓은 곳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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