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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발견한 불꽃

인천 서부소방서 백준화 | 기사입력 2022/11/21 [09:00]

태국에서 발견한 불꽃

인천 서부소방서 백준화 | 입력 : 2022/11/21 [09:00]


어느덧 소방관이 된 지 2년 차. 화재 현장에서 가지각색의 불을 맞닥뜨렸지만 여전히 불이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불을 더 잘 끌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부했다.

 

그러나 접할 수 있는 책과 동영상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에겐 그보다 더 살아있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운명처럼 기회가 왔다. SNS에서 서울 강남소방서 김준경 교관님의 CFBT(Compartment Fire Behavior Training) 교육 모집 글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곧바로 교육을 신청했다. 당시 나는 CFBT 교육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불을 배우겠다는 의지 하나만큼은 차고 넘쳤다. 

 

2022년 5월 그렇게 나는 태국으로 갔다.

 

태국의 첫인상

선선한 바람이 불던 한국과 달리 5월의 태국은 뜨거웠다. 습도도 높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해야 하는 우리 소방관들에겐 훈련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태국 CFBT 훈련장은 방콕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처음 훈련장을 봤을 때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겨우 건물 한 동과 컨테이너 몇 개가 전부라니!

 

이 먼 곳까지 날아와 경험할 정도로 대단한 시설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그곳이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육에 앞서 현지 스태프들께서 환영회를 열어줬다.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텀블러와 티셔츠 등 선물도 줬다. 원활한 교육 진행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주고 항상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줘 정말 감사했다.

 

 

진압하지 않아도 되는 불! 처음으로 불을 관찰하다

CFBT의 역사와 소방(공무원) 보건 안전관리 규정 등의 이론 수업을 마친 뒤 본격적인 실화재 훈련이 시작됐다. 

 

첫 번째 훈련은 데모셀(Demo Cell) 훈련으로 셀(Cell)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에 들어가 쌓아둔 목재에 불을 붙여 화재 성상을 관찰하는 훈련이다.

 

소방관으로서 어떻게든 불을 끄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유심히 관찰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훈련에서 불은 진압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화재진압이라는 부담감을 떨쳐내고 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아름다웠다. 이따금 머리 위로 흐르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뜨거웠다. 모든 걸 태워버릴 듯 작열하는 화염 속에서 심장 소리가 내 귀를 강하게 쳤다.

 

지금은 아름답게 보이는 이 불이 산을 잡아먹고, 집을 태우고, 사람을 해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잠재우겠다. 네가 아무리 끔찍한 화마라도 반드시 너를 진압하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불꽃을 똑바로 응시했다. 

 

불을 관찰하는 것과 동시에 펄싱(Pulsing) 주수기법을 통해 중성대의 변화를 살펴보고 직접 화점을 공격하는 펜슬링(Penciling) 주수기법도 연습했다. 주수기법 한번 한번이 화점과 중성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 효과가 좋았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들 

화재진압 훈련뿐만 아니라 불 자체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연소의 3요소, 열 전달 방법, 연기, 소규모 실험을 통한 화재원리 관찰 등 불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연소의 3요소는 가연물, 산소, 점화원이다. 연소의 3요소 중 하나라도 충분하지 않으면 연소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가장 기초적이며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현장에서 불을 끌 때 고려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을 듣고 나의 편협한 생각을 반성했다. 

 

연소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화학반응이다. 특히 산소의 경우 21%에서 15%로 6%만 감소해도 연소가 심하게 방해된다. 즉 화재 현장에서 문을 닫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불을 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질식소화의 개념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이용해 현장에서 산소를 통제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화점만 찾아 주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이 후회됐다. CFBT 교육을 통해 책에 쓰인 딱딱한 이론이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생생한 지식으로 탈바꿈됐다.

 

▲ 화재이론, 소방(공무원) 보건안전관리규정 교육 

▲ 실험을 통한 화재원리 이해


화점을 향해

3D 주수기법의 궁극적 목적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화점에 도달해 열방출률을 줄이는 것이다. 교관님께선 주수기법 훈련 간 움직임을 가져가는 동적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움직임 없이 주수를 했던 정적훈련 경험은 있었지만 소방호스와 함께 이동하며 주수하는 동적 훈련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동영상을 보며 어설프게 홀로 연습했던 때와 달리 정확한 자세를 알려주는 교관님들과 함께 의지를 불태우는 동기들이 있었다.

 

덕분에 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될 수 있었고 힘든 훈련도 즐겁게 버텨낼 수 있었다. 

 

연습 후 셀 안에 실제로 불을 붙여 연습한 주수기법을 적용해 봤다. 훈련은 화재실 내부 진입 절차를 실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내부 상황 판단, 화점을 향해 이동, 화재진압 순으로 진행됐다.

 

훈련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것처럼 긴장했다. 심지어 빠르게 화점에 도달하겠다는 마음이 앞서 내부 상황 판단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훈련이 끝난 뒤 교관님께서 이건 훈련이지 평가가 아니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우리는 화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불이 보인다고 무작정 물만 뿌리면 구조대상자는 물론이고 동료들과 나의 안전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 주수기법을 연습 중인 CFBT 2기


화재를 읽어라! Reading the Fire!

‘화재 읽기’란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판단하는 것으로 상황에 따른 화재진압 전술을 펼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다. 화재 읽기 교육은 화재 현장 영상을 보고 현장의 건물 구조, 환경, 연기, 불꽃 등1)을 판단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앞서 배운 내용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내겐 조금 벅찬 과정이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종합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엉망이 됐다.

 

그런 나를 보고 교관님께선 틀려도 좋으니 부담 갖지 말라고 다독여주셨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일단 가장 쉬운 것부터 하기로 했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것부터 판단하는 일이다. 

 

건물의 종류는 무엇인가? 복도식 아파트다. 몇 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는가? 8층이다. 연기는 발생했는가? 그렇다. 색깔은 어떠한가? 검은색이다. 연기의 양은 어떠한가? 많다. 불꽃은 보이는가? 그렇다. 불꽃은 어떠한가? 창문을 통해 외부로 분출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먼저 판단하고 그것을 토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파트 내부는 구획돼 있다. 그런데 불꽃이 창문 밖으로 분출될 정도로 크다. 연소의 3요소! 불은 예민하고 까다로운 화학반응이다. 저 정도로 불꽃이 크려면 분명 어딘가에서 산소가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은 불꽃이 분출되는 배기구와 산소가 공급되는 급기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어딘가 문이 개방된 상태인 것이다. 또 저 정도 불꽃이면 내부의 열기는 상당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표들을 판단했으니 이제 어떻게 진압해야 할지 생각할 차례다.

 

내부 구조대상자에 대해서 들어온 정보는 없다. 팀을 나눠 직상층 인명검색과 대피 유도를 하고 다른 팀은 화재진압을 실시한다. 분무주수를 활용한 간접공격을 할까. 아니 팽창된 수증기 열 때문에 내부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대상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 화점을 직접 공격하자. 먼저 열려 있는 급기구를 통제해 유입되는 산소를 억제한다. 화재실 내부 진입 절차를 실시하고 펄싱과 펜슬링을 활용, 화점을 직접 공격해 화재를 진압한다. 인명검색은 빈틈없이 한다.

      

위 내용은 교육 당시 했던 ‘화재 읽기’를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본 것이다. 처음엔 뭘 생각해야 할지도 몰라 막막했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판단하고 나면 그 후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자연스레 판단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빠른 속도와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기에 훈련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현장은 예측하기 힘든 변수도 많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화재 읽기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BE-SAHF를 활용한 화재 읽기 수업


신기한 소방 장비의 세계

여러 지역의 소방관들이 모인 터라 훈련 외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건 다양한 장비였다. 소방서에서 받은 기본 장비를 가져온 나와 달리 교관님들과 동기들의 장비는 신기한 게 많았다.

 

관창부터 시작해 방화복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헬멧도 다양했다. 중성대를 표시하는 기능이 있는 랜턴과 어떤 열화상카메라는 화면도 넓고 녹화 기능도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강의실에 모여 열화상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다 같이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는데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장갑도 다양했다. 그렇게 여러 종류의 장갑은 처음 보는 터라 신기해하던 나에게 동기 한 명이 장갑을 빌려줬다. 보급용 장갑과 외관은 비슷해 보였으나 성능은 확실히 달랐다. 뜨거움의 정도가 덜했고 물에 젖은 채로 벗고 착용하기가 편했다.

 

훈련이 끝난 후 장갑의 가격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사비로 구매한 동기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소방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었고 장갑을 빌려준 동기가 정말 고마웠다.

 

외국의 장비를 사용해본 것도 흥미로웠다. 교육 동안 사용한 SCBA는 Interspiro 회사의 장비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건 공기용기가 2개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흔히 쓰는 공기용기보다 크기가 작은 대신에 2개가 한 세트였다.

 

하나의 용기가 파손 등의 이유로 작동하지 않을 때 다른 1개의 용기로 현장 활동 또는 비상 탈출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면체 조작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양압전환, 대기호흡전환, 바이패스 등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다르지 않아 장비를 익히기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소방 장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비마다 특성이 다를 텐데 여러 장비를 사용해보며 현장에 더 맞는 장비, 나와 맞는 장비를 찾고 싶었다.

 


태국에서 발견한 세 가지 불꽃

머나먼 땅 태국에서 나는 세 가지 불꽃을 발견했다. 

 

첫 번째 발견한 불꽃은 내 생애 처음으로 관찰해본 화염이다. 진압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주한 불꽃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였다. 불이 무엇인지 궁금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불과 마주 보며 인사를 했던 순간이다.

 

두 번째 발견한 불꽃은 판단하고 읽어낸 현장의 불꽃이다. 불의 겉모습을 관찰했으니 이제 불의 마음을 읽어야 할 차례다. 불은 살아있다. 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현장에 변수를 만들어 낸다. 예측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을 판단하고 읽어내야 한다.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은 구조대상자와 구조자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화재 읽기’ 교육에서 발견한 두 번째 불꽃은 내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줬다.

 

세 번째, 내가 태국에서 발견한 가장 큰 불꽃은 바로 소방에 대한 이야기로 모든 순간을 채우던 교관들과 동기들의 열정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내 가슴에도 열정이 옮겨붙었다.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 쫓을 수 있는 목표가 생겼다. 이들을 따라가고 싶다. 끊임없이 노력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방관이 되겠다. 

 

▲ 훈련을 마치고 디브리핑하는 모습

▲ 김준경 교관 주관 하에 3D 주수기법을 연습하고 있다.

 

모든 순간을 불에 대해 배우고 불을 어떻게 진압할지 고민했다. 이론이 이해가 안 되면 훈련장으로 나가 직접 불을 경험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훈련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그 생생한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행복했다. 

 

CFBT 교육은 나의 소방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 초심이 사그라질 때마다 나는 그날의 불꽃을 떠올리며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1) BE-SAHF(Building, Environment - Smoke, Air(track), Heat, Flame)

 

인천 서부소방서_ 백준화 : wnsghk831@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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