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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부주의인가? 망각과 실수에 의한 재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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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2/12/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부주의인가? 망각과 실수에 의한 재난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2/12/20 [10:00]

한여름 쩌렁쩌렁 목놓아 노래를 부르던 매미 소리가 멀리 추억으로 남아있다.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고 호호 입김으로 추위를 달래는 행동이 자연스러워진다.

 

시간이 흐르고 겨울이 깊어가면 겨울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이 많아진다. 또 자연스레 화기나 전열기를 정비하고 사용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한다.

 

가을의 낭만을 즐기려 했으나 시간은 쉽게 허락하지 않고 겨울을 재촉해 불러들인다. 자연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고 그저 시간에 편승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릴 뿐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목표를 세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창의하며 최선을 다해 행복을 완성한다.

 

때론 뜻하지 않은 재난이나 좌절을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은 행복과 희망이 곁에서 함께하기에 미소와 더불어 열심히 살아간다. 평탄하고 안전한 삶이 유지되지만 남 일처럼 재난이 다가오기도 한다.

 

재난은 크게 전조 증상이 있는 재난도 있지만 대부분 재난은 전조 증상이 작고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다. 특히 화재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나 자칫 간과하고 지나간 부분에서 일순간에 불길이 휩싸이기도 한다.

 

늦은 여름, 중형마트 화재

어느 해 늦은 여름 저녁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화마가 살랑살랑 춤을 추며 다가온 화재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장엔 폐쇄회로가 설치돼 있었고 이날도 폐쇄회로는 열심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발화지점은 뚜렷하지 않지만 연소 확대 과정이 폐쇄회로에 고스란히 촬영돼 있었다.

 

다행히 현장 내부엔 사람이 없었다. 현장에서 관계인들은 모두 퇴근해 무인경비 시스템이 홀로 점포를 지키고 있었다. 오후 10시 34분께 마지막 직원이 무인경비 시스템을 ‘경계’로 설정한 후 퇴근했다.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폐쇄회로 영상에는 오후 10시 32분께 점포 내 전등이 모두 꺼졌다. 무인경비 시스템 경계 설정은 오후 10시 34분으로 확인된다. 폐쇄회로에 촬영된 영상은 건물 외부에서 화염이 시작돼 건물 내부로 연소하는 모습이었다.

 

관계자 황 씨는 건물 외부 화염이 시작된 부분은 천막으로 돼 있었다고 진술했다. 화염의 분열 흔적이 관찰되는 지점을 발화지점으로 판단했다.

 

분열 흔적이 시작된 지점에 18ℓ 크기의 사각 깡통이 관찰되고 깡통 내부에 담배꽁초와 종이컵이 탄화한 형태를 볼 때 재떨이로 사용했다고 추정했다.

 

처음 화재 현장에 도착해서 확인한 건 화염이 점포 외부에서 내부로 진행된 패턴을 보인다는 점, 점포 외부엔 화재 열원으로 작용할 만한 원인이 식별되지 않는다는 점, 단순하게 분열 흔적이 식별되는 중심에 재떨이로 사용하는 깡통이 있다는 점뿐이었다.

 

탄화한 건물 지붕 수열 흔적을 확인하라!

건물 지붕을 확인하면 연소 방향성이 잔류할 가능성이 크다. 화염이나 열기는 수직으로 상승하고 천장에서부터 열이 축적되기에 지붕의 변색 형태로 연소 확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또 건물 내부가 발화지점인지, 외부가 발화지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교하는 것도 발화지점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다.

 

▲ [사진 1] 점포 내외 비교


지붕엔 방향성이 확인되고 집중 탄화한 부분도 확연하게 나타나 있어 발화지점 추론이 가능했다. 점포 내부는 탄화흔적보다는 그을린 형태가 더 심했다. 한쪽 부분으로 집중 탄화한 형태와 구조가 변한 부분이 식별된다.

▲ [사진 2] 탄화한 점포


연소 방향성을 확인하라!
점포 내부가 탄화하고 천장 구조물이 일부 붕괴한 형태로 잔류해 있다. 철재의 만곡이나 붕괴 형태로 화염의 진행 방향을 추론하고 조금씩 발화지점을 축소할 수 있다.

 

▲ [사진 3] 연소 방향


사진에 잔류한 연소 방향성은 [사진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건물 외부에서 내부로 연소 진행한 형태, 즉 출입문에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탄화 형태가 외부에서 내부로 진행된 흔적이 확연했다. 하단과 오른쪽 탄화 정도가 약하게 나타나 있으며 상부는 검게 탄화한 형태가 관찰됐다.

 

▲ [사진 4] 탄화 정도 확인


[사진 3] 출입문 하단이 [사진 4]다. 하단의 탄화도와 수열 흔적에서 방향성이 확인된다. 바닥 부분 플라스틱에 방향성이 나타나 있고 문기둥 철재에는 수열 흔적이 확연하게 잔류해 있다.

 

구조물(수조) 표면이 탄화하며 균열 흔적은 마치 크로커다일 패턴(Crocodile pattern) 같았다. 수열 방향에 따라 균열 흔적의 크기가 다르고 일정하게 관찰됐다.

 

▲ [사진 5] 탄화 방향성 확인


구조물에 크로커다일 패턴이 화염의 방향성을 확인해 주듯 잔류했고 건물 외부 바닥은 탄화해 백색으로 식별된다. 내부 구조물 바닥의 플라스틱이 용융된 형태 또한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이런 구조물에 잔류한 흔적이나 주변 저융점 구조물을 확인하다 보면 수열 방향이 관찰되기에 현장에서는 세심하게 확인하고 촬영하는 것도 하나의 현장 조사 방법이다. 즉 화재조사관이 놓치는 증거물이 있을 수 있으나 카메라는 빠뜨리지 않고 하나하나를 기록한다. 현장에서 되도록 많은 사진을 촬영하길 권한다.

 

폐쇄회로를 확인하라!

현장에 폐쇄회로가 설치돼 있다면 확인해야 한다. 주변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나 주변 폐쇄회로가 있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연소 흔적으로도 화염의 진행 방향을 추적하고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증거도 없다. 즉 연소하는 형태나 시작점을 확인하고 조사한다면 훨씬 수월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 [사진 6] 폐쇄회로 확인


내부에 불빛이나 연기는 확인되지 않고 화살표 부분에 미세하게 빛이 식별됐다.

 

▲ [사진 7] 불빛 확인


폐쇄회로에 촬영된 형태는 건물 외부에서 빛이 확인되고 내부에는 화염이나 연기 형태가 관찰되지 않는다. 백색 원 부분에 불빛이 한들한들 움직이는 게 확인됐다.

 

▲ [사진 8] 불빛 반사


불빛이 바닥과 측면에서 보였지만 직접 화염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불빛이 반사되는 형상이었다. 

 

▲ [사진 9] 불빛 근원


불빛이 확인되고 점포 내부에는 이때까지도 화염이 관찰되지 않는다. 출입문과 창문에서 강한 빛이 관찰되는 것으로 볼 때 발화지점이 점포 외부라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현장을 조사하고 폐쇄회로 녹화 영상을 저장하려고 할 때 저장매체가 없다면 위와 같이 폐쇄회로 영상을 작동시키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촬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때 폐쇄회로에 촬영 날짜와 시간이 나오게끔 촬영하도록 한다.

 

▲ [사진 10] 건물 외부 탄화형태


연소 패턴과 수열 흔적을 확인하라!

건물 외부는 측면 주택과 맞닿아 있고 철망으로 구획된 상태였다. 이런 경우 주택에서 흡연 후 투척한 담배꽁초가 점포 내 적치물에 착화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은 철망으로 구획된 부분에서 내부가 식별되지 않도록 천막으로 덧대어 설치돼 있었다. 따라서 담배꽁초를 투척해도 점포 내부로 유입이 어려운 상태였다.

 

만약 철망 밖에서 연소해 내부로 연소 확대했다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철망 밖 개나리가 원형으로 탄화하지 않고 오히려 철망 방향에서 개나리 방향으로 탄화 방향성이 확인돼 점포 내부에서 발화한 것으로 판단했다.

 

발화지점은 특정되지만 발화 원인이 미궁인 현장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은 것에서 의외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목재나 철망에 수열 흔적이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에서 연소 흔적의 차이점을 찾아야 하고 변색 흔적으로 수열 방향과 탄화한 방향을 확인해 발화지점을 축소할 수 있다. 현장에는 소소한 증거에 의해 발화지점이 특정되는 때도 있다.

 

또 간단하지만 발화지점을 특정하지 못할 때가 있다. 건물이 붕괴하거나 건물 내 적치물, 구조물이 많아 발화지점을 발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점포 화재는 간단하다면 간단했고 복잡하다면 복잡했다. 외부에 쌓인 적치물 중 두루마리 화장지와 사용하지 않는 목재, 가연성 구조물, 철재 앵글로 된 선반들이 있다. 대부분의 가연물은 소실돼 없어진 상태고 철재와 목재, 샌드위치 패널에 연소 방향성이 잔류했다.

 

이럴 땐 잔류한 패턴을 모두 종합해 발화지점을 특정하고 폐쇄회로가 있다면 폐쇄회로와 대조한 후 화재조사관이 특정한 발화지점과 폐쇄회로에 촬영된 영상을 비교해 역량을 스스로 체크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판단이었는지 학습하는 것도 발화지점을 찾는 또 하나의 학습 방법이다.

 

▲ [사진 11] 재떨이 주변


주변 구조물의 변색 흔적을 확인하라!

철재 변색 흔적으로 수열 방향성을 한번 생각해 보고 하나하나 짚어봤다. 철 파이프에 잔류한 흔적과 철재 구조물에 잔류한 수열 흔적, 철재의 적 산화 현상, 철망의 수열 흔적ㆍ산화 현상 등을 종합해 발화지점을 특정했다.

 

발화지점을 특정하고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계자는 “거긴 아닙니다. 여기 냉장고가 낮에 말썽을 부렸고 열도 많이 발생했어요. 보세요. 여기가 더 많이 탔잖아요. 폐쇄회로 카메라가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라고 했다.

 

물론 조사 초기에 카메라가 설치된 걸 알았지만 화재로 인해 전기가 단전돼 버려 폐쇄회로를 먼저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장을 먼저 조사하고 화재조사차에 있는 인버터(Inverter)를 작동해 폐쇄회로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사하고 있는 현장에 관계자가 다가와 마치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듯 발화지점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본인의 귀책 사유를 합리화하려는 것 같았다.

 

▲ [사진 12] 발화지점


발화지점은 사각 깡통이 있는 지점이다. 주변의 변색 흔적이 분열 흔적으로 식별됐다. 깡통은 직원들이 재떨이로 사용했다.

 

▲ [사진 13] 재떨이


내부엔 담배꽁초와 종이컵 탄화잔류물이 잔뜩 있었고 재떨이 전체에서 적 산화 현상이 관찰됐다. 일반적으로 철재 내부에서 발열하고 있을 때 주수하면 산화 현상이 촉진돼 적 산화 현상으로 잔류하는 때도 있다.

 

이와 반대로 발열하지 않는 상태에서 외부 수열로 인한 변색은 군청색으로 변화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겨울철 난로 화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 [사진 14] 폐쇄회로 발화지점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영상을 확인한바 왼쪽 아래 적색 사각 부분이 [사진 13]의 재떨이다.

 

재떨이에서 발화해 주변으로 연소 확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관계자에게 영상을 보며 설명하니 고개만 갸우뚱한다. 필자는 ‘폐쇄회로와 비교해 자칫 발화지점 추론이 틀렸으면 무슨 망신인가?’라며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발화지점을 판단하라!

영업이 종료된 중형 마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폐쇄회로 영상을 확인하니 오후 10시 32분께 매장 내 전등이 모두 꺼졌다. 무인경비 시스템 경계 설정은 오후 10시 34분으로 확인됐다.

 

폐쇄회로 영상을 확인한 결과 내부에서의 화염은 관찰되지 않고 외부에서 선행된 화염이 관찰됐다.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전선이 배선돼 있었으나 전기적 특이점은 식별되지 않았다.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평소 점포 직원들이 흡연한다는 진술이 있었고 재떨이 용도로 사용된 깡통 내부 탄화잔류물이 깊게 탄화된 점과 분열 흔적이 관찰된 점 등으로 발화지점을 판단했다. 인버터를 이용해 점포에 설치된 폐쇄회로 녹화 영상을 확인하고 발화지점을 재떨이로 결론지었다.

 

결론을 내려라!

점포에는 무인경비 시스템과 폐쇄회로가 설치돼 있어 녹화된 영상과 점포 내 전등이 모두 소등되는 시간, 해산물 수족관 측면의 출입문 아래를 통해 외부에서 내부로 불빛이 확인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건물 외부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플라스틱 구조물이 용융된 방향도 외부에서 내부로 방향성이 있었다. 출입문 밖에 재떨이로 사용하던 깡통에서 분열 흔적이 보이고 폐쇄회로에서 화염이 분출하는 모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재떨이에서 발화한 화재로 판단했다.

 

섣불리 화재지점을 논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 현장이었다. 화재조사관 성향에 따라 조사 방법과 조사의 선ㆍ후를 달리해 조사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한 결과는 객관성이 확보돼야 하고 방법을 달리한다고 해도 발화지점이나 발화 원인이 다르게 조사돼선 안 된다.

 

폐쇄회로를 먼저 확인하고 현장을 발굴ㆍ조사하든 현장을 발굴하고 조사해 폐쇄회로를 확인하든 발화지점이나 발화 원인은 바뀌지 않는다.

 

만약 폐쇄회로 작동이 가능한 현장이라면 먼저 폐쇄회로를 확인하고 현장을 확인하라는 충언을 하고 싶다. 현장에서 연소하는 과정을 보고 조사하는 것과 현장을 발굴하고 발화지점을 추론하는 건 조사에 있어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을 조사하면서 버려야 할 덕목은 선입견이다.

 

초기 진술에 의존해 연소 패턴을 맹신한 후 현장을 발굴하고 조사한다면 발화지점이나 발화 원인이 자칫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 진실은 영원히 잿더미 속에 묻혀 버릴 수도 있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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