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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에는 ‘무방비’

정부, 충전시설 의무 비율 상향… 전국 14만기 육박
최근 6년간 전기차 화재 90건, 1년 새 약 2배 증가
국회에 제출된 충전시설 소방시설 의무화법은 ‘난항’
전문가들 “화재안전기준 필요하지만 효과도 검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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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3/02/10 [10:00]

[집중취재]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에는 ‘무방비’

정부, 충전시설 의무 비율 상향… 전국 14만기 육박
최근 6년간 전기차 화재 90건, 1년 새 약 2배 증가
국회에 제출된 충전시설 소방시설 의무화법은 ‘난항’
전문가들 “화재안전기준 필요하지만 효과도 검증해야”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3/02/10 [10:00]

▲ 전기차 충전시설 전용구역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 최누리 기자

 

[FPN 최누리 기자] =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가 늘면서 화재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재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시설 기준을 정립하고 관련 시설의 효과 검증을 위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 대상은 100세대 이상 아파트, 주차대수 50면 이상 공중이용시설ㆍ공영주차장으로 확대됐다. 신축시설은 총 주차대수의 5%, 기축시설의 경우 2%까지 전기차 충전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38만9855대에 달한다. 전기차 충전시설은 작년 8월 기준 13만5674기가 설치됐다.

 

의무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전기차 충전시설은 대부분 지하에 설치되는 추세다. 지상에 대규모 전기차 충전시설을 마련할 부지 선정이 어렵고 양호한 장소로 지하 주차장만 한 곳이 없어서다. 

 

의무 비율 확대로 화재 위험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전기차 화재는 총 90건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7년 1, 2018년 3, 2019년 7, 2020년 11, 2021년 24, 2022년 44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기계적ㆍ화학적ㆍ열적 충격이 가해지면 1천℃ 이상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진압조차 어렵다. 

 

지하 주차장의 경우 공간 특성상 밀폐돼 연기가 빠져나가기 힘들고 소방차 진입도 어렵다. 이 때문에 화재 진화에 많은 물이 필요할 뿐 아니라 진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지상보다 질식위험이 높고 주변 차량에 까지 불길이 번지면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시설 설치 의무 관련법 개정은 ‘제자리’ 

 

▲ 서울 성동구 테슬라 서비스센터에서 소방관들이 테슬라 X 차량에 난 불을 끄고 있다.  © 성동소방서 제공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되는 만큼 대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관련 부처들의 반대 의견이 제시돼 법 통과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경기 용인갑)은 지난해 9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엔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에 소방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직 소관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에 계류된 상태다.

 

정찬민 의원의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은 산자위 전문위원 검토 과정에서 여러 우려가 제기됐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자동차법’에는 공공건물과 공중이용시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의 소유자로부터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 진압용 소방시설을 설치토록 규정하지 않는다.

 

특히 전기차 화재 예방과 대응 등 충전시설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은 보급 확산을 위해 중요한 사항이기에 화재 진압용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해 전기차 화재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법체계를 두고 관계 부처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제시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친환경자동차법’의 경우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과 보급 촉진을 위한 지원법의 성격을 지녀 화재 대응과 안전 관련 요건ㆍ의무 등 규제는 분야별 개정 법령에서 규정하는 게 법체계에 부합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또 “화재 대응과 안전조치 강화에 필요한 세부 기술적인 사항을 신속히 반영하기 위해선 해당 분야별 개별 법령에서 정하는 게 효과적이므로 현행법에서 소방시설 설치 의무를 부여하는 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부는 “소방 차원에서 냉각소화 장비를 확충하고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 대응 관련 지침을 수립하는 등의 일이 우선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상 관련 부처들의 부정적 의견에 부딪힌 셈이다.

 

관련 기준 마련됐지만 강제성은 없어 

▲ 세종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 세종소방본부 제공

 

현재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 대비를 위한 규정은 딱히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소방조직이나 화재안전 관련 기관 등에서 권고 성격의 기준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소방청은 성능위주설계 평가 운영 표준 가이드라인을 통해 전기차 충전구역에 대한 화재 대비책을 권고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전기차 주차구역 지상 설치를 원칙으로 하되 지하 설치 시 지표면과 가까운 층에 설치 ▲CCTV 설치 등 일정 단위별 격리 방화벽 구획 ▲방출량 큰 헤드(K factor 115 이상) 또는 살수 밀도를 높여 계획 ▲관계인 초기 대응을 위한 주차구역 주변 질식소화덮개 비치 등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선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 소방안전가이드(이하 가이드)’를 운영 중이다. 가이드를 기획한 김성진 부산소방 소방제도계장은 “에너지저장장치 관련 국가화재안전기준이 마련된 상태지만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기준은 없는 실정”이라며 “가이드 특성상 내부 지침으로 강제성은 없고 부산지역에 한정되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 있어 앞으로 증가하는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을 고려할 때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해보험사가 모여 설립한 한국화재보험협회에선 ‘KFS 1120 전기차 충전설비 안전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과 협회 등의 기준은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 규정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선 관련 기준 마련과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충청북도는 최근 정부에 충전시설 옥외 설치 등 피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경북 포항 북구)은 “관련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그 피해와 불안감은 소비자가 짊어지고 있다. 하루빨리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화재 대비 시설 등 대책 서둘러야”

▲ 부산 동래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충전을 마치고 주차된 소형 밴 전기차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났다.  ©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환경부, 소방청 등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 대비를 위해 관계기관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논의에선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되는 지하 주차장의 경우 지상에 설치하되 지하에 설치할 경우에는 내화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재 대비를 위한 시설 설치를 강구하는 등 기준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 시설에 대한 효과성 검증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의무 비율이 높아지면서 지하층에도 설치되는데 너무 깊은 지하층에 설치되는 걸 방지할 필요가 있다”며 “연소 확대 방지를 위해 구획된 공간을 확보하고 담수 시설 설치 또는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방수량이 큰 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부에선 충전기 설치 지역의 방화벽ㆍCCTVㆍ소화기 설치와 조도 확보 등을 고민하고 있다”며 “제일 좋은 방법은 지상 설치지만 우리의 거주 특성상 지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현재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안전시설은 지상과 다르지 않기에 감지 시설 등 최소한의 안전시설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화구획 등의 대책도 그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충전시설 지하화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는 만큼 하루빨리 정부와 관계기관이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화재 안전시설을 무작정 강화하기보단 차량의 원천적인 화재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 주차장 어디든 전기차 주차가 가능하기에 무조건으로 화재 안전시설을 강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화재안전시설 등 다양한 대책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더욱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전기차와 일반 차량의 화재 크기는 비슷하기에 차량 화재 관점에서 접근하고 근본적으로는 지하 주차장에 대한 화재 안전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다만 2시간 이상 지속되는 화재에 대해선 어떻게 신속히 진압할지를 고민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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