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화재조사관 이야기] “부주의인가? 진정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인가?”

광고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3/04/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부주의인가? 진정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3/04/20 [10:00]

겨울이면 산업 현장이나 작업 현장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난방기구를 많이 사용한다. 난방기구는 전기를 사용하는 전열기기와 목탄을 사용하는 목탄 난로, 간이 난로를 만들어 사용하는 간이 난방기구 등 종류가 많다.

 

특히 불을 사용하는 난방기구는 늘 안전 감시를 소홀하게 해선 안 된다. 드럼통이나 깡통으로 소각로를 만들어 난방기구를 사용하는가 하면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형태로 사용하기도 한다.

 

종량제 봉투에 버리자니 쓰레기양이 적고 방치하자니 지저분해 건물 한쪽 공터에 모아 태우거나 빈 깡통 또는 드럼통을 이용해 간이 소각로를 만들어 소각하는 형태를 도농 복합도시에선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편의주의가 자칫하면 화마로 다가오기도 한다.

 

안전 수칙이나 기준은 최소한의 약속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한 규칙이나 기준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한다.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행동이더라도 기준은 준수돼야 하고 이를 지킬 때 비로소 행복도 우리 곁을 지킨다. 예를 들어 우측통행을 하라고 한 건 오가는 사람이 서로 방해되지 않고 원활하게 통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기 편의주의에서 왼쪽으로 통행하다 보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히거나 서로의 통행에 방해가 돼 시간이 지체된다. 작은 기준을 위반해 작은 불편을 초래하기도 하고 쓰레기 소각과 같은 편의주의 행동을 하다 화재와 같은 재난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또 전기를 사용할 때 사용하지 않는 전원은 차단기를 내려야 하지만 평소에 이상이 없으니 그냥 켜 놓은 상태로 두거나 방치한다.

 

화재 현장에서 전기에 대해 질문하면 점유자나 소유자 대부분은 전원을 모두 내렸다고 한다. 전원을 내렸다고 하는 건 그냥 단순하게 작동 스위치를 끄는 정도지 차단기를 내리진 않는다.

 

관계자 진술을 청취하라!

어느 해 겨울 오후 11시께 인적이 드문 지역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다. FRP1) 절연체를 제조하는 작업장으로 관계자 지 씨는 화재 전일 오후 6시까지 작업하고 당일은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화재 전일 작업을 끝내고 작업장 출입문을 모두 잠갔으며 화재 당일 작업장에 부속된 숙소에서 취침 중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깼다고 했다. 신고자 이 씨는 “인근 작업장에서 일을 끝내고 귀가하던 중 ○○물산 창문 너머로 불빛이 밝아져 확인하니 작업장 안쪽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다”고 했다.

 

소방대 도착 당시 작업장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건물에 부속된 숙소에서 관계자 지 씨가 나왔다. 구조대는 건물과 부속동 등 건물 내부 인명검색을 했다. 건물 내 인명과 주변 공장에서 취침 중이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구조 활동을 전개했다.

 

▲ [사진 1] 외부 연소


[사진 1]은 소방대가 도착하자마자 촬영한 사진으로 공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작업장은 블록조 목조 틀 소골 슬레이트 구조였다. 일부는 붕괴했고 일부는 잔류한 형태로 화염의 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내부 가연물은 대부분 FRP 재료고 작업대는 목재, 선반은 철재였다.

 

▲ [그림 1] 평면도


작업장 구조를 확인하라!

작업장 구조는 간단했다. ○○물산 사무실과 숙소는 구획돼 있어 관계자 지 씨가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부에서 출입구를 바라보고 촬영해 보니 목재와 FRP 재료들이 소훼된 채 잔류해 있었다.

▲ [사진 2] 출입구 내부


[사진 2]는 내부에서 출입구 방향으로 촬영한 형태다. 작업장 내부에 소훼물이 산만하게 흐트러져 있고 출입구를 중심으로 연소 형태가 심하게 식별됐다.

 

▲ [사진 3] 출입구 앞

 

연소 형태를 살펴라!

출입구 앞에도 상품 가치가 없는 제품들이 산적해 있었다.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셔터는 화열로 고정 부분이 연소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외부 모두 가연물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

 

▲ [사진 4] 내부


출입구에서 작업장으로 진입해 내부를 촬영한 형태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지붕틀이 연소하고 소골 슬레이트가 대부분 붕괴했다. 오른쪽에 FRP 자재와 완제품이 소훼된 채 있었고 왼쪽 부분에는 전기선이 늘어져 있었다. 작업대 상판의 목재는 모두 소실됐다.

 

증거를 찾아보라!

참으로 난감했다. 천장과 지붕이 붕괴한 상태에서 내부를 발굴해 원인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인력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지붕틀과 지붕을 덮고 있던 소골 슬레이트를 걷어 내고 내부를 발굴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건물 잔해를 모두 걷어 내고 확인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 것 같고… ‘그냥 미상’ 하는 생각도 뇌리를 잠시 스친다. 어렵다기보다 못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잔해물이 많았기에 낙심이 앞섰나 보다.

 

‘그래도 확인하는 데까진 한번 해 보자, 무언가 있겠지’ 하며 작업장 내 붕괴한 잔해물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작업장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눠 감식하기로 했다. 먼저 왼쪽부터 차근차근 작업대를 살피기 시작했다. 원인을 밝히기에 그나마 다행인 건 작업대 골조가 철재였고 상판은 목재였다.

 

목재는 소실되고 철골조만 남았으나 화염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수열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확인하니 작업장 왼쪽 중앙에 있던 고속절단기 전원선에서 단락 흔적이 관찰됐다.

 

화재 현장 대부분에서 전선 단락 정도는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단락 흔적이 형성되려면 최소 온도가 1083℃ 이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 주변 가연물에 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반대로 전기 외 다른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전선 피복이 손상되면서 단락 흔적이 생겼다면 화재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단락이 선행됐는지, 화염이 선행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장의 연소 방향성이나 연소 잔류물, 화염이 분열된 흔적을 종합했을 때 증거로써 활용 가치 등을 고려해야 한다.

 

▲ [사진 5] 고속절단기 전원선 단락


잔류한 증거를 검증하라!
전선뿐 아니라 내부에서 발열할 수 있는 물건이나 제품들은 모두 확인하고 기록해 보자. 현장을 하나하나 확인하니 드럼통으로 만든 화목난로가 눈에 들어온다.

 

▲ [사진 6] 화목난로

 

[사진 6]은 작업장 내부에서 출입구 방향으로 촬영한 형태다. 목탄 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화재 당일 작업이 없었고 작업장에 출입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있었다. 하지만 화재조사관은 화재 원인에서 소거하기 위해서라도 확인해야만 한다.

 

목탄 난로가 출입구 주변에 있었고 내부를 보면 불을 피운 지 얼마나 됐는지 가늠할 수 있어 살펴봤다. 우선 외부는 군청색이 더 많아 보였다. 군청색이 더 많은 형태는 발열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사진 7] 목탄 난로 확인


난로 내부를 확인하니 재가 회백색이었다. 형태로 볼 때 화재 당일 발열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적산화된 목탄 난로에서 내부로 쇳가루가 떨어져 재를 일부 덮은 형태는 발열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사진 8] 단락 흔적


중간지점의 고속절단기 주변에 있던 차단기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관찰됐다. 어디로 어떻게 연결됐는진 알 수 없으나 현장에서 살펴보고 단락 흔적으로 판단했다. 차단기는 트립(Trip) 돼 있었고 전선은 일부가 끊어진 상태였다. 또 단락 형태가 다수 보였다. 차단기를 중심으로 1, 2차 측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됐다.

▲ [사진 9] 차단기 트립


차단기는 트립된 상태였다. 1차 측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관찰되고 2차 측은 떨어져 탈락해 있었다. 차단기 적색 사각 부분의 걸림쇠가 반달의 중심에 걸려 있었다. 

▲ [사진 10] 메인 배전반


메인 차단기는 ON 위치에 있고 적색 사각 표시한 부분의 차단기는 5개가 트립된 형태로 잔류했다. 물론 연결된 전선에서 다수의 단락 흔적이 관찰됐다.

 

이렇듯 현장에서 하나둘 찾다 보면 원인이 발굴된다. 전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 사건 현장에 잔류한 증거물 중 확인된 건 난로와 전기뿐이었고 다른 기기들에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 [사진 11] 플러그 단락 흔적


작업대 하단에 떨어져 있던 단락 흔적은 어디에 사용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관계자도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질문하니 모르겠다고 했다. 부하 측이 확인되지 않으니 어디에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 [사진 12] 작업장 출입문


셔터로 된 문 측면에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철문은 개방된 형태였다. 관계자 지 씨가 출입문을 모두 잠갔다고 한 진술은 신뢰감이 떨어졌다. 작업하지 않았다는 진술도 믿을 수 없었다. 고속절단기를 출입문 안쪽 콘센트에 꽂아 사용했다고 하는데 플러그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사진 11]처럼 플러그 한쪽이 바닥에서 발굴되고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된다.

 

조사한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하라!

정리해 보면 목격자인 이 씨는 공장 출입구 안쪽에서 불길을 보고 신고했다. 관계자 지 씨는 소방차 도착 시까지 화재 사실을 알지 못하고 취침 중이었다고 했다.

 

화재 패턴은 ○○물산 내측에서 외부로 진행한 형태였는데 ○○물산 내부에서 다수의 단락 흔적과 차단기 트립이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발화지점은 ○○물산 내부가 맞다.

 

다만 출입문이 개방돼 있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출입문을 잠갔다고 했는데 개방된 상태는 불특정 다수가 출입할 수 있으므로 인위적인 착화를 배제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내부는 가연물이 산적해 있었고 모두가 불에 잘 타는 재질이었다. 인위적인 착화가 있었더라도 전기적 흔적이 잔류할 거고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더라도 단락 흔적이 잔류할 거다. 

 

화재조사관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만약 방화였다면 왜? 누가? 어떻게 불을 냈을까? 인적이 드문 여기까지 와서 불을 지른다면 감정이 있었거나 건물주 또는 점유자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조사해 봐야 한다.

 

따라서 인근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해 봤다. 워낙 외진 곳이라 왕래하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었다. 화재 신고 시간이 오후 11시께로 최소 1시간 이전부터 도로에 접근하는 차량이나 인명이 없는지 확인했다.

 

출입하는 길이 한정돼 있어 다행이었다. 화재지점과 떨어진 곳에 CCTV가 있어 확인했으나 출입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산 내부에서 발화됐고 정면 출입문은 잠겨 있었으며 측면 출입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로 인해 점유자나 소유자에게 실익이 없다. 내부인에 의한 방화 가능성은 작고 외부인의 출입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화재 원인은 작업장 내부에 있다.

 

▲ [사진 13] 형광등 단락 흔적

 

작업장 내부 형광등은 중간 부분이 많이 수열 받은 형태로 식별됐다. 전원을 연결했던 전선에서는 용융 흔적이 발견됐다. 변색 흔적이 짧고 경화 형태가 작은 것으로 볼 때 전기적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용융 흔적으로 판단했다.

 

단락 흔적이 많다는 건 전기가 통전됐다는 방증이기에 관계자 지 씨가 차단기를 내렸다는 진술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작업장의 소훼 상태가 심해 부주의와 연관한 형상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난로 내 검은 숯이 잔류해 있었다는 건 평소 목탄 난로를 사용한 증거다. 또 주변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부주의 가능성은 있다.

 

사실 화재 당일 작업이 없었다고 진술한 내용은 신뢰할 수 없다. 전기 차단기는 내렸다고 했는데 트립과 단락 흔적이 발굴됐다. 문은 모두 잠갔다고 했는데 개방된 출입문이 있었다.

 

작업장 내부에 있던 기계는 퇴근 시 모두 전원을 차단한다고 했는데 이 또한 믿을 수 없었다. 다만 기계 주변에서 출화 흔적이나 발화 열원이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기계적 요인에 의한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 [사진 14] 목재 탄화도

 

내부에 가연물 적치 상태가 비슷해 내부의 탄화심도를 확인했으나 대동소이했다. 다만 작업장 중간지점에 붕괴한 목조 지붕틀의 탄화심도가 다른 부분에 비해 깊었다. 탄화 정도가 깊다고 발화지점으로 추론할 수 없지만 가장 오래 탄화한 지점은 맞다.

 

결론

블록조 슬레이트지붕 FRP 제조 작업장에서 발화된 화재로 관계자 지 씨와 최초목격자 이 씨의 진술을 참고하고 잔류된 연소 패턴과 현장의 전기적 특이점, 주염흔, 목재의 탄화심도 등을 종합해 발화지점을 추정했다.

 

출입문은 잠긴 상태로 외부 침입 흔적이 관찰되지 않았다. 관계자 지 씨는 화재 당일 작업장에 출입하지 않았고 화재 당시 내부에 다른 관계자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목탄 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목탄 난로 내부에 잔류된 재에서 검은 숯이 관찰되는 것으로 볼 때 미연소 상태의 불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자가 사용 후 완전연소를 확인하고 불티가 없었다면 내부에 검은 숯이 잔류하기보다 회백색에 가까운 재가 잔류하거나 미연소 상태로 잔류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작업장 내부 차단기가 트립돼 있고 여러 개의 단락 흔적이 발굴된 점 등으로 볼 때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로 추정된다. 다만 어느 단락 흔적이 부하의 말단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필자가 현장을 조사하고 전선을 따라 배선을 확인한 결과 작업장 내 형광등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된 점과 미확인 플러그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된 점, 연결된 차단기가 트립된 상태로 잔류한 점 등으로 볼 때 전기적 요인으로 판단했다.

 

 


1) 섬유강화 플라스틱. 복합재료의 하나로 말 그대로 섬유로 강화한 플라스틱이다. 보통은 Fiber-reinforced plastic 의 머리글자를 딴 FRP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강화용으로 쓰이는 섬유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유리섬유로 강화한 파이버글래스(GFRP)나 탄소섬유를 이용한 CFRP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아라미드나 목질섬유가 강화용 섬유로 쓰이기도 한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재조사관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포토뉴스
[이수열의 소방 만평] 완벽한 소방시설을 무너뜨리는 ‘이것’
1/7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