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7월 초순이지만 햇살이 뜨거워 철판이던 바지선은 잘 달궈진 프라이팬 같았다. 세월호 구조 총책임자인 해경 경비국장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웬만해선 잘 찾지 않는데 무엇 때문일까? 경비국장에게 가면서도 머릿속이 심란했다.
“한 팀장1), 내일 미국 재호흡기팀 투입과 관련해 장관 주재 회의를 합니다. 해경에서는 한 팀장만큼 재호흡기를 다뤄본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으니 회의에 참석해서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주세요”
거절할 수도, 바로 승낙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재호흡기 미국 팀 건에 대해선 민, 관, 군 재호흡기 투입에 대한 회의 때 투입하지 않는 거로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번 회의 참석은 내 임무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 하겠다고 하면 자신의 영역도 아닌 소방이 이 맹골수도에 와서 활동하는 데 부정적인 해경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됐다. 말이 바지선 소방 안전 담당관 겸 연락관, 감독관이지 신경을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차라리 구조 잠수 작업을 하는 게 낫다.
“네, 알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바지선에 혼자 있지만 상부에 보고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 조치, 후 보고를 택했고 소방 CP에도 알렸다.
왜 나를 선택했을까? 재호흡기를 잘 알아서였을까? 분명 해경에서 재호흡기를 사용해 본 사람도, 군 특수부대 출신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전문가로 인정해준 셈이고 안 좋게 생각하면 해경에서 받을 비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참석하기로 했으니 회의에서 소신껏 발언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고 바지선에서 해경 경비정을 타고 해경 경비국장, 모 경정과 팽목항으로 향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팽목항 육상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아직도 배에 있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회의는 진도군청에서 열렸다. 자리는 꽉 차 있었고 이제 몇 남지 않은 실종자 가족분도 와 계셨다. 미국 재호흡기 팀 투입 건과 관련해 미국 팀에서 의견을 내놨다.
“우린 재호흡기 전문가다. 재호흡기를 사용해 두세 시간 수색할 수 있으며 맹골수도 조류는 극복할 수 있다”
“조류를 극복 할 수 있다”는 대목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미국 팀이 제시한 방법을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발상의 전환이다. 이제까지 구조작업은 조류가 너무 강해 정조 타임에 맞춰 입수했고 정조가 끝나기 전 퇴수했다. 그래야 조류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구조작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압은 챔버에서 표면 감압으로 진행했다. 미국 팀은 그 반대 방법을 제시했다. 정조 전에 입수해 세월호 내부로 들어가면 조류가 강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퇴수는 정조 때에 맞춰서 하면서 수중 감압을 하면 된다는 거다.
이제 내 차례다. 현재 구조작업의 방법에 대해 먼저 얘기했다.
“민간 잠수사나 해난구조 대원들이 표면 공급식 잠수장비를 이용해 수색하면서 실종자를 발견하면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해경, 소방 또는 해군 대원들이 25m에서 표면 공급 잠수사들에게 실종자를 인도받아 상승하는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방법의 효율성이 가장 높다.
표면 공급 잠수사들이 발견해서 실종자들과 상승하면 효율성도 떨어질뿐더러 잠수사들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해서 잠수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또 우리 소방에서도 재호흡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건 재호흡기 특성상 고무 재질로 된 호흡 루프 손상이 잠수사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월호 내부는 위험요인도 많다. 또 표면 공급식 잠수장비는 통신이 가능해 잠수사가 위험에 노출되거나 수색 방향을 알려주는 데도 좋은데 재호흡기는 통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이런 환경에서는 재호흡기를 사용하는 게 좋지 않다”
이때 ‘상식적인’이란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실종자 가족 중 한 분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쳤다.
“상식적인… 상식적인이라고 했습니까? 아니 당신은 이 사고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요? 지금 일어나는 일 중 상식적인 게 어디 있어? 아니 소방에도 재호흡기가 있다면 상식적이든 아니든 사용을 해봐야 할 거 아냐. 어디서 상식을 얘기해”
이 실종자 가족분의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 모든 게 상식적이지 않지. 실종자 가족분 얘기가 맞다. 도대체 상식적인 게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회의는 그렇게 끝나고 미국 재호흡기 팀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날 실종자 가족 대표가 찾아왔다.
“한 팀장님,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우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에요. 뭐든 할 수 있으면 상식이든, 비상식이든 다 하고 싶은 게 지금 우리 마음입니다”
“괜찮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 갑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이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모든 사고는 상식적이지 않다. 상식적으로 일어나는 사고가 어디 있겠는가. 세월호 사고뿐 아니라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도 모두 비상식적이다.
이야기의 시작 팽목항에서 다시 해경 경비정으로 바지선에 돌아오는 동안 구조대원으로서의 회의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바지선에 3개월간 있으면서 물 위로 인양되는 수백 명의 어린아이를 보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3개월간 뭘 했는가’, ‘이 상식적이지 않은 사고에 도대체 한 게 무엇인가’, ‘이 바지선에 더 머물러야 하는가’…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구조작업이 마무리되기 일주일 전까지 바지선에 머물렀다. 내년이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된다.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한다.
1) 세월호 당시 계급은 소방위였지만 바지선에서는 소방 잠수팀 책임자를 맡아 팀장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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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19특수구조단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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