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 진동음과 함께 낯선 번호가 화면 위로 흘러간다. 컴퓨터와 연결된 이어폰을 목에 무심히 걸어두고 전화를 받아 든다.
“네, 이태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울산 MBC입니다. 이웃집 소방관 운영하는 이태영 소방관 맞으시죠?”
2015년 8월 파견근무를 시작으로 6년 넘는 시간을 광주소방안전본부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던 나는 유튜브 중심의 홍보, 다시 말해 영상 홍보에 집중하고 있었다. 방송국 전화가 매번 그렇듯 이번 전화도 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원본을 찾는 문의라 생각하며 통화를 이어 나갔다.
“저희가 소방의 날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소방관님을 직접 스튜디오로 모시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저를요? 제가요?” “네, 소방관 크리에이터잖아요”
제대로 된 카메라와 편집 장비도 없던 광야 같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두렵고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임자가 없어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아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시행착오가 계속됐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던 그야말로 광야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광야를 지나면 영상 홍보라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영상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 울산에서 모두 할게요”
광주에서 하루 두세 차례밖에 없는 울산행 버스에 올랐다.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메이크업을 한 뒤 수많은 제작진 앞에 앉아 녹화가 진행됐다.
“영상 촬영과 편집이 쉬운 일이 아닌데 혼자서 하시는 거 힘들지 않나요?” “힘듭니다”
녹화 중 돌발질문에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월화수목금금금’ 주말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촬영과 편집을 이어 나가는 게 일상이 돼버린 삶. ‘왜 시작을 했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오기 일쑤였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을 재운 뒤 늦은 밤 영상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친분이 있던 영상업체를 찾아 자문을 구하는 시간이 매번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신기했던 건 완성된 영상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후회’나 ‘고통’과 같은 단어는 일순간에 녹아내리는 기적(?)이 생겼다.
“방송을 통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촛불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우리 소방관들의 헌신을 기억해 주십시오”
방송을 마친 뒤 광주행 버스를 타기까지는 3시간 남짓 시간이 남았다.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본 제작진이 구세주처럼 저녁 식사를 권해 방송에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늘은 제가 주인공이었지만 사실 광주소방 유튜브 채널을 이끄는 직원들이 있어요” “그럼, 다른 분들도 함께 유튜브를 하시나요?” “네, 광주소방 영상제작단 F’REC(에프렉)팀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영상 제작이 힘에 부치자 내부 게시판을 통한 영상제작에 뜻이 있는 동료 소방관을 공개 모집에 나섰다. 이름하여 F’REC팀! FIRE와 카메라 REC(레코딩) 버튼을 합성해 만든 F’REC팀은 화재(FIRE), 구조(RESCUE)ㆍ구급(EMT)을 총칭하며 소방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영상제작단이다.
“아, 소방관들이 출연해서 노래도, 실험도 하던데 혹시 그분들이 F’REC팀인가요?” “맞아요. 제가 공개모집한다고 했을 때 한 두 명 모이면 많이 모이는 거라고 무시했던 분들이 많았는데 첫 회 모집에 17명이 모였고 지금은 20명이 넘습니다”
소방관 팩트체크, 화재예방과 청렴도 향상을 위한 캠페인 송, 라디오 공익안전 캠페인까지 분야별 모든 과정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 제작해 광주시 내부 게시판에 칭찬글까지 올라왔다. 또 타 시도 소방본부에서도 광주소방의 영상제작단 구성을 벤치마킹 하는 등 어느새 영상 홍보가 광주소방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보람 있으실 거 같아요. 힘들었지만 열심히 하신 덕분에 좋은 결과물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도움을 준 F’REC팀이 특히나 고맙죠. 제가 잊지 못하는 편지가 한통 있어요. 얼굴만 아는 동료 소방관인데 저한테 F’REC팀을 지원하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더라고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의심될 때 ‘너는 지금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어’라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편지었다. 그리고, 영상 홍보를 하는 내내 나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광주소방학교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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