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산불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압하자” 산불진화장비 기업 (주)시전상인재난 물품 전문 업체서 산불특화기업으로 발돋움… 산불 관련 제품만 100여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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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강원도 고성과 강릉, 동해, 인제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초속 15m의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진 불은 산림 1757㏊(축구장 2460배)를 태우고 이틀 만에 꺼졌다. 고성은 바로 다음 해에 또 화마와 마주했다.
2021년과 2022년엔 경북에서 대형산불이 났다. 2022년 3월 경북 울진 등에서 시작된 불은 완전히 꺼지는 데 역대 최장기간(213시간)이 걸렸다.
올해 4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에선 무려 53건의 산불이 산림을 태웠다. 이는 산불 통계 작성 이후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발생한 수치로 기록됐다. 대형산불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5월 캐나다 퀘벡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파견됐고 8월에는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이 100년 만에 최악의 산불을 겪었다.
이렇듯 지구촌 곳곳이 해마다 대형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50년엔 30, 2100년엔 50%까지 증가할 거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자연재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 산불 진화시스템과 개인보호장비 등 산불전문 제품을 생산ㆍ납품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주)시전상인(대표 이재순)이다.
시전상인은 2007년 이재순 대표가 직접 이름을 짓고 설립했다. 시전상인은 조선시대에 한양 등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말한다. 조선시대엔 상인이 장사하려면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시전상인들은 상업활동을 허락해 준 대가로 나라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공하고 세금을 바쳤다. 수백 년 전 조상들처럼 조금이나마 국가에 이바지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로 작명했다는 게 이재순 대표 설명이다.
시전상인은 창립 초기 재난 발생 지역의 출입을 제한하는 재난안전선이나 바리케이트, 안전유도로봇, 인명구조함 등 주로 재난 관련 제품을 제작ㆍ납품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산불진화장비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대형산불이 지금처럼 비일비재하진 않았다. 하지만 산불 관련 뉴스 빈도가 점차 높아지자 이 대표는 승산이 있다고 봤다.
산불진화헬기가 빠르게 담수할 수 있는 이동식 저수조로 주목받았고 최근엔 산불 현장에 맞게 헤드를 교체할 수 있는 다목적 불갈퀴, 일체형 고글마스크 등을 개발했다.
가벼우면서 다량의 물을 방사할 수 있도록 돕는 엔진펌프도 선보여 경북 119산불특수대응단을 비롯한 산불전문진화대원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담수지가 그대로!”… 이동식 저수조
시전상인의 대표 제품이다. 캐나다 업체 수입품으로 호박처럼 생겨 펌킨탱크로도 불린다.
이동식 저수조는 산불 현장 인근에 설치해 헬기가 바로 담수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진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다.
2016년 강원 삼척 화재부터 매년 현장에 투입된 이 제품은 현재 전국 산림청과 지자체에 70여 개 납품을 완료했다.
보통 진화 헬기는 저수지 등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그런데 산불 현장 근처에 담수지가 없으면 헬기가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봄, 가을철 가뭄으로 물이 없거나 겨울철 저수지가 얼면 담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헬기가 저수지 등에서 담수하다 추락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실제로 10월 3일 경기도 포천에서 담수 테스트를 하던 헬기가 추락해 기장이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동식 저수조는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지름 7m의 평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대형은 4만, 중형은 2만2700ℓ의 물이 담긴다. 무게는 대형 113, 중형 56㎏으로 차량에 쉽게 적재할 수 있다.
소화 용수는 소방차 또는 인근 소화전 등을 이용해 공급받는다. 산불 현장 바로 옆에 담수지가 있는 셈이다. 이로써 산불진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진화대원도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산 중턱까지 빠르게, 산불 진화 엔진펌프
산불전문진화대원이 직접 불길을 잡을 수 있도록 소화 용수를 공급해주는 장비다. 산불은 모두 진화한 것처럼 보여도 낙엽 밑에 불씨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재발화하기 쉽다.
따라서 큰 불길은 헬기가 잡더라도 작은 불 등은 전문진화대원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러나 산림은 지형 특성상 소화 용수 공급이 매우 어렵다. 진화대원이 많아도 실질적으로 불을 끄는 물이 없다면 진압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산불진화 엔진펌프는 소방차를 이용해 호스와 연결하면 산 중턱에서도 손쉽게 물을 방사할 수 있다.
소형(BH1)과 중형(BP4)으로 나뉘며 소형은 무게 9.5㎏, 마력 2.1HP, 압력 6.9㍴, 토출량 260ℓ/Min이다. 흡입-압축-폭발-배기 등 4 사이클의 시스템으로 구동된다.
중형은 무게가 22㎏, 마력 10HP, 압력 26.2㍴, 토출량 370ℓ/Min의 제원을 갖췄다. 피스톤이 크랭크축을 한 번 회전해 동력을 완성하는 2 사이클 엔진이 탑재됐다.
다목적 불갈퀴ㆍ일체형 고글마스크
다목적 불갈퀴는 산불전문진화대원이 낙엽을 파헤쳐 잔불을 제거하는 장비로 시전상인이 직접 개발했다. 산림청 공중진화대와 함께 기획하고 설계 검증까지 마쳤다. 강화 알루미늄 재질에 아노다이징 처리를 해 내구성이 매우 강하다.
헤드(갈퀴)를 낫이나 삽, 톱날, 낫갈퀴 등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산불 현장에 따라 진화대원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멀티 도구인 셈이다.
본체를 분리할 수 있어 편의성이 좋고 보관이 용이하다. 무게는 1.6㎏으로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 길이는 105, 굵기 지름은 3㎝다.
고글 마스크는 버프형으로 산불 진화 중 발생하는 불꽃이나 먼지 등 이물질로부터 대원을 보호하는 제품이다. 아라미드를 사용해 불에 강하고 렌징 레이온 혼방으로 제작돼 신축성이 뛰어나다. 부착된 벨크로를 이용하면 길이 조절을 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마스크만으로도 착용이 가능하고 주ㆍ야간 등 상황에 따라 고글을 알맞게 교체할 수 있다. 고글은 압출 성형 방식으로 제작돼 왜곡 없이 시야를 확보해 준다. 렌즈는 방탄 폴리카보네이터 소재를 사용했다.
“시전상인처럼 국가 안위에 미력하게나마 이바지 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파”
인터뷰 이재순 (주)시전상인 대표
“창립 초기 10개에 불과했던 제품이 어느덧 수백 개가 됐습니다. 국민 안전을 위한 제품 개발에 주력하면서 회사 이름처럼 나라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국가 안위에 미력하게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이재순 대표는 제약회사 영업사원 출신이다. IMF 시절 입사해 5년 정도 근무했다. 일하면서 제약과 관련한 여러 지식을 쌓았지만 약사 출신이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그때 그가 뼈저리게 느낀 게 바로 ‘전문성’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약학을 전공한 분들과는 차이가 있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더라고요. 그러던 중 TV에서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산불이나 재난과 연이 전혀 없는데도 문득 저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죠”
그는 곧바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서울에 시전상인을 세웠다. 과거 시전상인들처럼 나라가 필요한 물품 등을 공공기관에 납품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까. 언젠가부터 해마다 4월이 되면 산불 관련 뉴스가 매스컴을 도배했다. 갈수록 산림 손실 면적은 커지고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지금이야말로 잠시 접어뒀던 산불 관련 제품을 생산할 때란 결심이 섰다.
“당시 산불진화장비는 대원들이 착용하는 등짐펌프와 소방헬기 정도였어요. 신속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불을 끌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이동식 저수조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꼭 필요한 제품이란 확신이 들었죠”
이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헬기로 산불을 진압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양간지풍이 불어 헬기 운용에 위험이 따르고 사계절이 뚜렷해 여름철 가물거나 겨울철 물이 얼면 소화 용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수지가 부족해 산불 현장 근처에 담수할 곳이 없으면 이동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2017년 즈음 주말에 쉬고 있는데 산림청에서 전화 한 통이 왔어요. 강원도 삼척에서 큰 산불이 났는데 이동식 저수조를 빨리 설치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삼척엔 저수지가 없어 헬기가 담수하려면 30분이나 이동해야 한다더라고요”
이 대표는 곧장 직원 한 명과 이동식 저수조를 차에 싣고 곧장 삼척으로 향했다. 산불 현장과 가까운 분교 운동장에 이동식 저수조를 설치했다. 소화 용수는 소방에 협조를 구해 공급받았다. 수십 시간 동안 활활 타오르던 산불은 이동식 저수조 투입 2시간 만에 모두 꺼졌다. 헬기 이동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덕분이다.
“이동식 저수조가 산림청과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날이었죠. 산불진압에 반드시 활용도가 높을 거란 예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정말 기뻤어요. 이후 많은 곳에서 찾아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수입품 유통뿐 아니라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엔 현장 대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다목적 불갈퀴’를 직접 제작해 납품 중이다.
“산불 현장에 가보면 대원들로부터 갈퀴가 자주 부러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산불 특성상 잔불은 사람이 직접 제거해야 하는데 진압 장비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해 직접 개발하기로 했죠”
영업을 주로 하던 그가 제품을 개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장 대원들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일단 잘 부러지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강한 스틸이나 주물을 선택했다.
하지만 산불 진화처럼 장시간 사용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이렇듯 튼튼하면서도 피로도가 적은 소재를 찾는 데부터 애를 먹었다.
“알루미늄이 가장 적합한 재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두께 1㎜ 차이, 탄성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이 됐습니다. 수십 번 샘플링을 만들고 연구한 끝에야 비로소 다목적 불갈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재난 물품 전문기업으로 출발해 산불특화기업이 된 시전상인. 이 대표는 진화 장비뿐 아니라 대원 개인보호장비에 관심이 많다.
“불을 빠르게 진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대원의 안전입니다. 현장을 가보면 다치는 분이 많아요.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장비뿐 아니라 이들의 안전을 위한 제품 개발에도 힘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난 안전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박준호 기자 pakr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