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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19] “일본에서의 특별한 ‘인연’ 덕에 천직을 찾은 것 같아요”

[인터뷰] 허번영 충남 공주소방서 웅진119안전센터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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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기자 | 기사입력 2024/04/01 [10:00]

[Hot!119] “일본에서의 특별한 ‘인연’ 덕에 천직을 찾은 것 같아요”

[인터뷰] 허번영 충남 공주소방서 웅진119안전센터 소방교

김태윤 기자 | 입력 : 2024/04/01 [10:00]


“제19회 한일교류 말하기 대회 영예의 한일우정상은…. 일본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소방관이 되기까지의 소중한 경험담을 능숙한 일어로 발표해 주신 허번영 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대회가 열린 서울일본인학교 강당을 가득 메웠다. 허번영 소방교는 멋쩍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주황색 기동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사람들의 손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허 소방교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형님 잘 계시죠?” 일어로 안부를 묻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허번영 소방교는 고향인 충남 공주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소방관이다. 웅진119안전센터 소속 화재진압대원으로 밤낮없이 활약하고 있다.

 

 

그는 소방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다. 한국도 아닌 바다 건너 일본에서 시작된 그 인연은 그를 소방관이라는 운명으로 이끌었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우연히 영화 ‘러브레터’를 접하게 됐죠. 영화 속 훗카이도의 설경을 보며 ‘저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언젠간 꼭 일본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가 처음 일본 땅을 밟은 건 대학교 3학년을 마친 후였다.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휴학계를 내고 도쿄 생활을 시작했다. 낮엔 일본어학교를 다니고 밤엔 신주쿠 가부키초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며 돈을 벌었다. 고된 생활이었지만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체득할 소중한 기회였다.

 

귀국 후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리웠던 고국이었는데도 평생의 직업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회사와 관공서를 돌며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유난히도 쌀쌀하던 어느 가을날, 다니던 직장의 인사 담당 부서로부터 더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취업난 등을 두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기였죠. 정말 암담했습니다”

 

허 소방교는 일본 취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취업처를 고민하던 중 문득 귀국 직전 로망으로 간직하던 훗카이도 오타루(영화 ‘러브레터’ 촬영지) 여행을 다녀온 게 기억났다. 그곳 오르골 판매점에서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회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간절함을 담아 오르골 회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뜻밖에도 한국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죠. 면접 후에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다시 일본에 갈 수 있게 된 거죠”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은 당초 각오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일본인들과 같이 일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음식점에 한정된 경험뿐이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힘들게 직장 생활에 적응해 나가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인연을 만난다.

 

 

“인구 조사를 나온 일본 소방관분께 여러 도움을 받다가 결국 친구가 됐어요. 나중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죠. 형님께 소방관 생활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으며 서서히 소방관을 꿈꾸게 됐던 것 같아요”

 

허 소방교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소방관이 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 거다. 오타루 소방서 앞에서 찍은 사진을 품에 넣은 채 과감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소방관 형님에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소방관이 돼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매일 사진을 보며 각오를 다졌어요. 언젠간 대한민국 소방 제복을 입고 소방관 대 소방관으로서 형님과 다시 오타루 소방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이 컸죠. 동네 도서관 직원들과 출ㆍ퇴근을 함께 하며 치열하게 공부한 덕에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소방관이 된 게 꿈만 같습니다”

 

 

소방관으로 자리를 잡고 나선 일본의 소방관 형님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오타루에서 많은 신세를 졌기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근무하는 소방서를 안내해 주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에서 한국의 가정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바로 답방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해 국가 간의 이동이 사실상 차단된 것. 또 이 시기엔 코로나19 확진 환자 이송 업무에 투입돼 도저히 몸을 뺄 여력이 없었다.

 

“오타루 소방서에 가겠다는 버킷리스트를 하루빨리 지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죠. 코로나19 상황이 풀리면 꼭 가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마음이 조급했다. 조기 퇴직을 결정한 소방관 형님의 퇴직일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허 소방교는 기동복과 카메라를 배낭에 밀어 넣은 채 훗카이도로 향했다.

 

 

“오타루에 도착해 태극기가 박힌 기동복을 입고 소방서로 향하는데 가슴이 정말 두근거렸어요. 생소한 제복을 보자 동네 사람들이 힐끔거렸죠. 형님의 배려로 견학을 허가받았고 마침내 소방서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다른 소방관과도 교류할 수 있었죠. 꿈을 이룰 수 있어 행복했고 형님껜 좋은 퇴직 선물이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허 소방교. 그는 다양한 소방 업무 중 특히 소방안전교육에 관심이 많다. 장차 ‘일타’ 소방안전교육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 제 무기인 일본어를 소방조직과 국민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 볼 생각입니다. 소방에서 ‘일본어’하면 ‘허번영’이 바로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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