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통과 경청을 잘하고 싶어 한다. 또 좋은 선배이자 윗사람으로 존경받고 싶어 한다. 욕먹는 걸 즐기는 사람은 정말 몇 없을 거다. 아예 없다고 할 순 없는 게 ‘본인도 알면서 저럴까?’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욕먹는 걸 본인 스스로 즐긴다는 생각밖에 안 들기 때문이다.
가정으로 돌아가서 30년가량 차이 나는 자녀와의 대화를 생각해 보자. 과연 자녀와 대화가 잘 통하는가? 물론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거다.
어느 날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듣는 음악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 에어팟을 24시간 한 몸처럼 착용하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방을 정리했다.
무슨 노래인가 유심히 들어봤다. 랩인 것 같은데 리듬도 왔다 갔다 하고 도저히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음은 왜 이리 낮고, 일률적이고, 뭘 말하고 싶은지 도저히 그 음악이 공감되지 않았다.
순간 십 대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들으시던 트로트가 왜 그리도 듣기 싫었던지…. 그리고 부모님은 내가 듣는 노래를 “그것도 노래냐”며 핀잔을 주셨던 그 시절이 말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틀어놓고 공부도 하고, 잠도 자던 내게 부모님은 “라디오를 끌어안고 무슨 공부냐?’며 면박을 하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 나를 이해 못 하실까?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되는데…’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음악을 틀고 고개를 까닥까닥 이며 리듬을 맞추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집중해야지. 무슨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고…’
과거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의 나는 그런 십 대 아이가 이해되지 않고 못마땅하기만 하다.
내가 이십 대 초반이던 시절, 사람들은 우릴 ‘X세대’라 칭했다. ‘요즘 X세대들은 너무 특이하고 이상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 X세대라 불리던, 그래서 선배들에게 ‘이상하다’는 평을 받았던 나는 이제 또 다른 꼰대가 돼 있다.
우린 세대 간 소통을 잘하고 싶어 한다. 관서장이 되고 지휘관이 되면 아래 직원들 마음을 잘 헤아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소통이란 이름으로 세대 간 거리를 좁혀보고자 노력한다.
‘50대 지휘관부터 이제 막 소방에 입문한 소방사들까지 서로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고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직장생활에 만족할 방법은 없을까?’
과거 소담센터에서 근무하며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소방에 먼저 들어온 선배들은 ‘이 정도면 내가 잘해주고 있잖아. 옛날엔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세상이 바뀌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소방사는 ‘내가 원한 적 없잖아. 남들 피해 안 주고 나도 안 받고 서로 각자 편하면 되는 일 아니야?’라고 여긴다.
선배들은 가끔 점심시간에 커피도 사주고 좋은 얘기도 해주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후배들은 ‘점심시간만큼은 개인적으로 쉬고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싶은데 그 시간까지 내가 맞춰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선배는 ‘더 잘하라고, 그리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 돼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정작 후배로선 원치 않는 조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배들 입장에서 그렇게라도 노력하는 건 관계를 위한 배려다. 상대가 원하는 걸 꼭 맞춰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원하는 걸 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오해가 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차라리 귀가 얇은 게 낫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이를 먹고 직급은 높은데 고집이 너무 세고 본인 주장이 옳다고 우기면 정말 모두가 다 힘들어진다.
애초에 본인 고집보다는 기안자나 담당자의 의견을 잘 듣는 윗사람은 욕먹을 일이 드물다. 본인이 생각하는 부분,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말은 할 수 있으나 그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알아야 소통이 잘 되는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안 되는 일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이길 방도가 없다. 또 그 순간 이겼다고 완벽한 승리가 아니다. 윗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꼭 책임을 지게 하기 때문이다.
‘설마 그렇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직장 내에서, 상하가 있는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아무리 틀린 점이 없어 정당하게 발언했더라도 책임져야 할 일들이 생겨난다. 어느 조직이나, 어느 사회나 있을 수밖에 없는 힘의 논리다.
그래서 과거 선배가 “윗사람하고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어”라고 했던 말을 몸소 느껴본바 싸우는 게 이득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직장생활의 필수 덕목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절대 하극상은 용납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하극상인지, 진정 아니라고 해야 하는 말을 한 건지는 앞뒤 상황을 잘 판단해 봐야 한다.
‘아무리 쉽다고 해도 싸워선 안 될 상대가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는 ‘적이라고 다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눈앞의 이익만 앞세워 상대를 공격한다면 역으로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때로는 여유와 아량으로 유연하게 싸움을 피하고 과감히 돌아서는 게 조직을 살리는 길일 때도 있다’는 의미다.
최근 갑질로 신고된 일부 사례를 살펴보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고, 그런데도 사과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들이다.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들은 그들이 과거 근무 시절엔 비일비재했던 일이기도, 본인이 당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도, 소방조직도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땐 괜찮았어도 지금은 안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란 말만 봐도 예전 생각대로 행동하면 지금 세상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해야 진정한 강자가 아닐까 싶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젊게 산다는 것, 대화가 통한다는 것 모두가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신부가 되길 바란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펠릭스 신부님이 서품을 막 받은 후배 신부에게 전한 말씀이다.
자칫 본인이 해석한 대로 본인의 생각을 신도들에게 전하게 되는 실수를 조심하라는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직원 간 문제가 생기면 서로 생각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제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그중 최악은 계급을 이용해 불합리한 부분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당할 때예요. 이때 가장 힘들고 소통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소담센터에서 동료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진정한 소통은 내가 듣기 싫은 말도 흔쾌히 들어주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조율해서 서로 생각의 거리를 좁혀가는 일인 것 같다.
가장 좋은 대인관계는 내 이야기를 공감하며 잘 들어주고 본인의 생각을 너무 강요하지 않는 관계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고 공감까지 해줄 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의 일 순위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은 후 들어주려는 마음인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에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생각이 들거나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사심 없이 들어줄 준비를 해보자. 그리고 답을 정하지 않은 채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의 상황이나 생각을 들어보면 어떨까?
우린 오랜 시간 현장지휘 리더십만 강조해 그것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리더가 되면 재난 현장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이 아닌 일상 업무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은 낯설어 의사소통을 지시적으로만 한다.
그러나 우린 재난 현장 외 환경에서는 상호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양손잡이와 역설적 리더십을 의미한다.
다음 호에서는 우리가 가장 성공하고 싶은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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