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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었다”… 동대문구청 소화장치 사고는 ‘人災’

열ㆍ연기감지기 오작동으로 약제 방출, 구청 관계자 등 6명 부상
경보ㆍ안내멘트 송출됐는데도 대피 안 해… ‘무지’가 피해 키워
전문가들 “유사 피해 방지하려면 소화장치 위험성부터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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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5/17 [15:54]

“피할 수 있었다”… 동대문구청 소화장치 사고는 ‘人災’

열ㆍ연기감지기 오작동으로 약제 방출, 구청 관계자 등 6명 부상
경보ㆍ안내멘트 송출됐는데도 대피 안 해… ‘무지’가 피해 키워
전문가들 “유사 피해 방지하려면 소화장치 위험성부터 인식해야”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4/05/17 [15:54]

▲ 서울 동대문구청 전경  © FPN


[FPN 박준호 기자] = 동대문구청 가스소화약제 방출 사고 당시 피해를 키운 배경에는 무능한 관리자의 대응과 재실자의 안일한 대처 등 복합적 원인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유사 시설 파악과 함께 위험성 전파를 위한 계도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5시 44분께 동대문구청 1층 종합상황실 내에 구축된 캐비닛형 자동소화장치(이하 자동소화장치)가 작동해 구청 직원 등 6명이 다쳤다.

 

사고 당시 종합상황실엔 구청 관계자 3명과 CCTV 업체 직원 3명 등 총 6명이 있었다. 이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출된 소화가스를 들이마신 6명은 모두 어지럼증과 호흡곤란, 메스꺼움 등을 호소했다.

 

이 중 CCTV 업체 직원 2명은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른 1명도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사고 당일 퇴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동대문구청은 지하 2, 지상 10층, 연면적 3만4511㎡ 규모로 2000년 8월 14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사고가 발생한 종합상황실은 동대문구청 정문 진입 후 바로 왼쪽에 자리한다. 바닥면적 72㎡, 높이 5.4m 공간으로 평소 2~3명의 구청 직원이 상황관리를 하는 곳이다.

 

▲ 사고가 발생한 1층 종합상황실  © FPN

 

사고가 난 상황실에는 68ℓ(50㎏)짜리 소화약제 용기 2개가 한 세트로 구성된 자동소화장치 총 두 대가 설치돼 있었다. 용기엔 HCFC Blend A(상품명 NAFS-Ⅲ) 소화약제가 담겼던 거로 확인됐다.

 

준공 시점부터 있던 이 자동소화장치는 열ㆍ연기 등 두 개의 감지기가 모두 작동해야만 소화약제를 방출하는 교차회로 방식으로 구축돼 있었다.

 

동대문소방서 관계자는 “사고 당일과 다음날 현장조사를 통해 수신기 기록장치를 확인한 결과 열ㆍ연기감지기가 동작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감지기들이 작동하자 가스소화약제가 방출됐다.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감지기가 왜 작동했는지는 밝혀내지 못 했다”고 말했다.

 

오작동으로 인한 방출… 인명피해 막을 순 없었나

사고 발생 후 현장에서 만난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간혹 감지기 하나가 오작동한 적은 있었지만 두 개 모두 동작한 건 25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며 “지난 3월 작동기능점검 때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상황실에 설치된 자동소화장치는 물이 아닌 할로겐화합물계 가스소화약제인 HCFC Blend A로 화재를 진압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가스소화약제를 활용한 시설은 방사 시 물로 인한 2차 피해를 볼 수 있는 전산실이나 박물관 등에 주로 설치한다. 하지만 사고 당일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재 신호를 받은 자동소화장치는 맥없이 가스를 뿜어냈다.

 

▲ 동대문구청 1층 종합상황실에 구축된 캐비넷형 가스소화장치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전문가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소화장치에 대한 사전 지식과 대처 요령만 알았더라도 피해가 없었을 거라는 시각이다.

 

자동소화장치는 열ㆍ연기감지기가 작동하면 30초 후에 약제를 방사한다. 피난 시간이나 오작동 시 정지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사고 당일에도 이 자동소화장치에서는 경보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으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정상 송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구청 직원은 “갑자기 알람이 울리더니 곧 뿌연 연기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안 보여 겨우 탈출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사전 경보음을 듣고도 밖으로 대피하지 않아 봉변을 당한 것이다.

 

특히 이날 상황실 내에 있던 관계자들은 경보음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동소화장치에는 화재 상황이 아니라면 방출을 정지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었다. 하지만 이 기능을 사용해 작동을 멈춘 사람은 없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자동소화장치가 작동한 게 처음이다 보니 직원들이 당황해 대처를 잘 못 한 것 같다”고 했다. 청사 내 직원과 구청을 찾는 시민의 안전을 살펴야 할 관계자들이 정작 청사에 설치된 소방시설의 특성조차 숙지하지 못한 셈이다.

 

이택구 소방기술사(전 한국소방시설관리사협회장)는 “불이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 직접 멈추면 되는데 근무자들이 장비 조작법을 몰랐던 것 같다”며 “제품에 사용 매뉴얼을 표시해 놓거나 자동소화장치에 대한 사용법을 교육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통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94년부터 현재까지(5월 16일 기준) 국내에 보급된 캐비닛형 자동소화장치는 무려 6만9245개에 달한다. 자칫 인명사고를 불러일으킬 시한폭탄이 전국 곳곳에 깔렸음을 의미한다.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소방조직 차원의 대책과 함께 소화장치 보유 시설 관리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시국 호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0년 전 우정총국에서도 유사 사고가 발생해 시민 11명이 다치는 등 불을 끄기 위한 소화장치가 되레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살상 무기가 되고 있다”며 “관련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대처 요령을 습득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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