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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세월호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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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19특수구조단 한정민 | 기사입력 2024/06/03 [10:00]

6개월간의 세월호 마지막 이야기

서울119특수구조단 한정민 | 입력 : 2024/06/03 [10:00]


세월호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의자에 앉아 한글 문서를 클릭하고 한동안 새하얀 바탕의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봤다. 이 글을 시작할 땐 세월호 사고로 인한 실종자 수색 과정을 해경도, 민간 쪽도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소방 잠수사들의 이야기도 알리고 싶었다. 무한한 소재 거리의 이 이야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부담으로 다가와 점점 할 이야기들이 사라졌다. 그 이야기들이 타인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내가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편향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글은 나의 이야기로 마치려고 한다.

 

반복되는 일상

구조 현장과 남양주 본대에서의 일주일 교대 근무는 망가져 버린 생활 리듬을 복구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기존 근무지가 아닌 항공대 근무도 낯설었지만 그놈의 불면증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본대 근무를 하면서도 진도로 내려가기 이틀 전부터는 정말 가기가 싫었다. 그건 교대하는 잠수 대원들도 같았다. 

 

구조대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의무감과 소방관이라는 한 직업인으로서 현장으로 향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바지선에서의 생활이 그간 꽤 익숙해져 편안했다.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실종자 수색은 진전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의 긴장감은 갈수록 떨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고 팽목항으로 나와 본대로 복귀했다. 이 구조 작업이 언제 끝날지 아무런 얘기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처음부터 계속 있었던 해경이나 민간 잠수사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 수중 구조 작업 후 출수하는 소방대원들

 

세월호 구조 활동 중 계속된 감찰 조사

2014년 3월, 구조 장비를 구매하면서 업체와 유착해 부당한 접대와 금품을 받았다는 투서가 접수돼 국무조정실 내사를 받았다. 모 팀장과 함께 이 사건의 주도자가 돼 있었다. 조사 정황상 같이 근무하는 동료 직원과 장비 업체가 동시에 투서를 넣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사를 받기 전에 본부장님은 조사관들이 어떠한 얘기를 하더라도 무조건 참고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국무조정실 내사는 사람의 자존심을 아주 바닥까지 내팽개쳐 버렸다. 국무조정실은 조사한 내용을 소방청 정책과로 통보했다. 

 

그즈음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 발생 초기에는 구조 활동을 하고 있어 국무조정실 내사와 소방청 감찰 조사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냥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14년 7월 14일부터 9월 19일까지 중앙119구조본부는 장비구매 과정에 대해 전반적인 감찰 조사를 받았다.1) 나는 조사 핵심 대상자였지만 조사 기간 단 한 번도 감찰 조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변론할 기회조차 없었다. 

 

▲ 중앙119구조본부 장비구매 관련 조사보고(출처 fpn119.co.kr/68238)

 

그런데 10월, 소방청 정책과는 본인들의 자체 감찰 조사결과를 근거 삼아 종로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제대로 된 조사도 받지 못하고 이런 일을 당하니 너무 억울했다. 

 

특히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직원들과 생사를 오가며 구조 활동을 하는 동안 조사하고 고발했다는 것에 대해 조직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서울소방으로의 전출 결심

세월호 구조 활동을 하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소방청 감찰 조사결과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망가졌다. 

 

중앙119구조본부는 당시 국가직이었기에 서울소방으로 전출을 가려면 서울에서 중앙으로 오려는 직원이 있어야 갈 수 있었다. 때마침 인사주임이 서울에서 중앙을 희망하는 직원이 있다고 얘기해줬고 결심을 해야 했다.

 

13년간 근무한 중앙119구조본부는 나의 청춘이 묻어있는 곳이다. 거길 등지고 새로운 곳에서 근무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두려움보다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구조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나는 서울로의 전출을 결심했다.

 

마지막 구조 임무

서울로 전출을 신청하고 세월호 사고 실종자 수색 현장으로 향했다. 이 임무가 현장 대원으로서 구조 활동을 한 마지막 임무가 됐다. 바지선에 도착해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근무한 해경분들에게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실종자 가족 몇 분에게도 “마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구조 현장을 떠나는 게 편치는 않았다. 구조대원으로서 자부심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그런 자부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구조대원으로서의 생활은 막을 내렸다.

 

2014년 11월 1일 서울 종로소방서에 화재 진압대원으로 발령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11일 세월호 수중 수색 작업이 종료됐다는 걸 방송을 통해서 알았다. 

 

▲ 종로소방서 진압대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모습

 

이후 장비구매와 관련한 업체 유착 건으로 감사원 특별조사국과 종로경찰서 지능범죄 수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찰청 조사를 끝으로 2016년 12월 16일 무혐의 처분을 받아 3년 만에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똑같은 세상이지만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세상이 가끔 놀랍다. 그걸 알면서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구조대원이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음을 갖고 모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며 지금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걸 아름답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끝으로 필력이 아직 많이 부족해 그날의 일들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구독자분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동시에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심에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드리고 싶다. 그리고 <119플러스> 매거진 관계자분들과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유은영 편집부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 출처 fpn119.co.kr/43573

 

독자들과 수난구조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건ㆍ사례 위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만일 수난구조 방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e-mail : sdvteam@naver.com facebook : facebook.com/chongmin.han로 연락하면 된다.

 

서울119특수구조단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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