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어느 가을 이른 저녁이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금천구 독산동 000 화재 출동”
드론 박스를 들고 구조공작차를 향해 뛰어간다. 차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무전 소리,
“신고 계속 들어옵니다!”
직감적으로 큰 화재라는 걸 알아차렸고 차고에서 차를 운전석까지만 뺀 후 MDT1)를 확인한다. 현장까지는 대략 500m 안쪽일 거로 파악된다.
출동 경로와 협소한 도로 상황, 주차 여건 등을 고려하니 현장까지 이동해서 드론을 띄우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 그 즉시 차를 차고에 집어넣은 후 드론 가방을 들고 후정으로 뛰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늘에 검은 구름이 시야에 들어왔고 발 빠르게 드론을 띄웠다.
소방서 후정 외벽을 넘고 고도를 높이자 멀리서 불꽃이 보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기체를 조종하며 현장으로 빠르게 비행해 갔다. 이미 화재는 최성기에 도달한 상태. 화염은 건물 5층과 옥상을 감싼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건물과 옥상 탐색을 위해 하강 기동을 한다. 그 순간 조종기 모니터가 ‘지지직’하며 멈춰 서버렸다. 그렇게 영상신호가 끊겼다. 불과 300m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비상조치를 시도한다. 안테나를 세우고 팔을 머리 위 90°로 뻗는다.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영상신호 잡기를 시도한다. 그런데도 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조종기 신호는 연결돼 있을 거라 가정하고(통상 영상신호가 먼저 끊길 확률이 높다) 스로틀을 올려 기체를 상승시키는 동작을 취하면서 엘리베이터를 이륙지점으로 당겼다. 그마저 소용없었다.
이 상태로는 영상신호를 잡는다 한들 탐색도 힘들고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 같다. 차고 뒤쪽 계단을 통해 3층 옥외 주차장으로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르는 도중 계단참에서 신호가 끊겨도 페일 세이프(Fail-Safe)2) 기능인 RTH(Return To Home)3)가 작동돼 이륙지점으로 되돌아오고 있을 거로 판단했다.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올라 기체를 컨택했다. 영상신호가 들어 온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체는 RTH가 실행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랜딩 중이었다. 다시 말해 어딘지 모를 건물의 옥상으로 착륙하거나 건물 외벽 쪽으로 하강하면서 외벽에 부딪혀 건물 아래로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재빠르게 스로틀을 올려 기체를 상승시켜 위기를 모면했다.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순간이다. 그런 후 다시 화점 건물 옥상 탐색을 시작한다.
짙은 연기와 불꽃이 가득한 현장에서 작은 모니터로 사람을 식별하기란 쉽지 않다. 풀 스크린으로 열화상 카메라와 가시광 카메라를 번갈아 가면서 보거나 때론 열화상과 가시광을 동시에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쪽 카메라만 일방적으로 의지해선 안 된다. 상황에 맞게 동시 혹은 각각 사용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가정하고 계속 건물을 P.O.I(Point of Interest)4)하면서 탐색을 이어갔다. 모니터상에 미세한 떨림을 발견하고 열화상 카메라와 가시광 카메라를 번갈아 보며 예의주시한다. 그 순간 열화상 카메라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사람이다! 무전으로 최초 발견 보고를 한다.
“옥상 구조대상자 발견! 신속히 구조 바람!”
그렇게 화재 현장에서 위급한 구조대상자를 발견한 후 1차 비행을 종료한다. 배터리를 교환하고 2차 비행에 나섰다. 서치라이트를 켜고 옥상 구조작업을 지원하며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드론 조종자라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신호가 끊기고 나서 왜 RTH를 하지 않고 자동 랜딩 중이었을까? 물론 설정값은 당연히 RTH 값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륙지점인 금천소방서 후정을 홈 포인트(Home Point)로 잡지 못하고 300m를 날아간 후에야 홈 포인트를 잡았기 때문이다. 신호가 끊기고(No Control) 랜딩 중이던 바로 그 장소가 홈 포인트 좌푯값이었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드론 그거 그냥 띄우면 되는 거 아니냐? 조종하기 쉽던데?”
물론 드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5분 정도만 교육받으면 쉽게 날릴 수 있다. 안전이 확보된 공간(센서 드론 한정)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드론 조종이 단순히 전진, 후진, 좌우 이동, 상승ㆍ하강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소방드론 조종자는 외부 민간 드론 조종자처럼 비행계획을 세우고 장애 요소를 파악한 후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비행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곳이 어떤 환경이든, 장애물이 있든 재난이 터지면 그 즉시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갑작스러운 도심 야간비행 시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 나 홀로 떠 있는 듯한 공포감마저 밀려든다.
위에 언급된 사례도 민간 드론 조종자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이다. 필자는 서울시 인재개발원에서 드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드론 비행 중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고 주지시킨다. 이륙 전 GPS 개수를 최소 8개 이상 확인하고 홈 포인트 업데이트 음성메시지를 확인한 후 서서히 비행하라고 교육한다.
그러나 정작 소방드론 파일럿인 나는 그 규칙을 지키기 어렵다. 아니 지킬 수 없다. 이처럼 긴박할 수밖에 없는 소방드론의 도심 비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특히나 서울 도심은 드론 비행 시 전국 최고의 극악 난이도를 자랑한다. 온갖 장애 요소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제법 규모가 있는 드론회사 팀장은 “우리 회사는 도심에서 비행하지 않습니다. 도심지 비행으로 얻는 이익보다 혹시나 추락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도심지에서의 비행이 얼마나 위험한지, 소방드론 조종자들이 가질 심적 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과밀한 인구 집중으로 추락했을 경우 인사 사고에 대한 불안감.
조종기와 드론 간의 안정적인 전파 송수신을 위한 일정한 공간의 확보, 즉 프레넬 영역5)이 존재해야 함에도 수많은 초고층 건축물로 인한 전송로 장애와 난반사로 인한 다중경로, 그로 인한 통신 품질의 저하.
전신주와 전선, 통신 기지국, 거기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와이파이 개수, 그 수많은 와이파이가 쏟아내는 강력한 전파가 조종기의 전파를 수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감도억압.
특히나 와이파이는 2.4㎓ 대의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이는 ISM(Industry-Science-Medical) 대역으로 정부로부터 별도의 사용허가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다.
이 모든 요소는 전파의 혼잡과 처리량 감소를 일으켜 드론의 통신 거리를 짧게 하고 영상이 끊기거나 멈추게 하는 등 통신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소방드론 조종자는 이 장애 요소를 안고 위험천만한 비행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필자 또한 현장 운용 시 조종 불능 상태의 기체 흐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마다 추락의 위험을 급하게 에티(ATTI: 자세제어) 모드로 바꿔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드론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소방드론 또한 기술 발전과 함께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갖춘 드론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소방드론은 아직 사람의 손이, 사람의 능동적 제어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냥 띄우면 되는 드론. 그런 드론이 세상에 나와 재난 현장에서의 대응 능력을 크게 높이고 인명과 재산 피해 최소화는 물론 소방드론 조종자의 심리적 부담까지 감소시켜주는 날이 오길 학수고대해 본다.
1) MDT(Mobile Data Terminal): 차량 동태 관리시스템. 소방차량의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는 단말기 2) 페일 세이프(Fail-Safe): 비정상적 상황에서 자동으로 안전하게 제어해주는 시스템 3) RTH(Return To Home): 이륙지점 혹은 조종기 위치로 드론을 자동 귀환시키는 페일 세이프 기능 4) POI(Point of Interest): 관심 점 비행. 피사체를 중심에 두고 회전하면서 촬영하는 기법 5) 프레넬 영역(Fresnel Zone): 전파가 송신기에서 수신기로 이동할 때 경로 주변의 여러 반사나 회절 때문에 영향을 받는 영역
서울 금천소방서_ 김준상 : jirisanman@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