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효과도 없고 시장 혼란만 키우는 ‘소방장비인증’… 왜?KFAC 운영 지지부진… 70여 장비 중 10%만 검사기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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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신희섭 기자] = 소방장비인증 제도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기본규격 개발사업이 시작된 지 7년이 넘었지만 인증 절차 운영이 지지부진해 시장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수입 장비의 진입 장벽을 턱없이 높여놔 소방관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방장비 기본규격 개발은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주요 소방장비의 성능과 안전성 향상을 위해 지난 2017년부터 소방청이 추진해 온 사업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약 70종에 달하는 소방장비의 기본규격이 개발됐다.
사업 시작 초기만 해도 소방청은 기본규격 개발 완료 품목을 소방장비 인증제도인 ‘KFAC’ 대상 품목으로 전환해 성능과 품질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고품질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란 생각에 현장 대원들도 환호했다. 관련 업계 또한 제값을 받으며 장비를 공급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될수록 현장 대원들과 업계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하고 있다. 애초 계획과 달리 KFAC 운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본규격이 개발된 70여 종의 소방장비 중 KFAC가 제대로 운영되는 장비는 7종(펌프차, 고가차, 물탱크차, 화학차, 구조차, 방화복, 공기호흡기)에 불과하다.
더욱이 전국 지방 소방본부에서는 소방차량의 KFAC를 소방차량 도입을 위한 입찰 참여 자격 부여 용도로만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별도의 제작 규격을 만들어 제각각 준용하는 실정이다.
올해 2월 KFAC 대상 품목에 9종 장비를 새롭게 포함한다는 소방청 발표가 있었지만 이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FITI시험연구원(방화두건, 방화장갑) 말고는 선뜻 인증 업무를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전문 기관이 없어서다. 소방의 대표적인 기술 기관인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조차 차량과 공기호흡기 품목 외에는 전문 기관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소방청은 여전히 기본규격 품목을 늘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 올해에도 12종에 달하는 소방장비의 기본규격을 추가 개발 중이다. 이렇게 되면 품목은 80종 이상으로 늘어난다. 반면 KFAC 운용 품목의 비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 체계의 붕괴다. 소방장비가 공급되는 현실을 반영 못 한 소방청의 행정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소방장비의 보급은 국내 제조품과 해외 선진국의 장비 수입 등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소방청의 KFAC는 관련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자칫 현장 대원들이 원하는 장비조차 구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건지 <FPN/소방방재신문>이 집중조명했다.
소방장비 인증제도, 무엇이 달라졌나
기본규격이 개발되기 전 소방차량을 비롯한 주요 소방장비는 KFI 인증으로 검ㆍ인증 절차가 운영됐다.
KFI 인증과 KFAC의 가장 큰 차이는 품질관리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KFI 인증은 KFI에서 완제품의 견본 인증 이후에도 출고 전 이뤄지는 사전 제품검사를 통해 품질을 관리한다. 최초 인증부터 양산품의 검사까지 모든 절차가 완제품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반드시 생산시설을 갖춰야 하는 건 아니었다.
반면 KFAC는 완성된 제품을 중심으로 품질관리가 이뤄지는 개념이 아니다. 최초 인증을 위한 완제품 검사는 실시하지만 제품 출고 전 이뤄지는 검사기관의 사전 제품검사는 없다. 대신 KFI 인증과 달리 KFAC는 현장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제조설비와 인력보유 현황 등의 평가를 거쳐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춘 게 검증돼야만 제품 공급이 가능하다.
“품질과 성능 높이겠다” 취지는 어디로…
KFAC 운영 방식을 두고 현장 대원들 사이에선 선진 외국 장비의 사용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거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수입 장비를 공급하는 관련 기업들이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게 쉽지 않아서다.
지역 소방본부에서 장비구매 업무를 담당하는 A 씨는 “현장 대원들이 수입 장비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마쳤기 때문”이라며 “소방장비는 생명을 담보하는 필수 도구이기에 장비에 대한 신뢰성을 중요시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선진화된 장비 인증제도를 표방한 KFAC가 국내ㆍ외산 여부를 떠나 좋은 장비를 선택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장 대원 B 씨는 “과거 기본규격 개발사업에 현장 자문단으로 참석했을 때 단순히 색상만으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며 “장비 성능과 품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자는 규격 개발 목적을 달성하려면 장비를 공급하는 시장과의 융화가 더 중요한데 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입 장비를 국내에 보급하는 산업계의 우려도 크다. 수입 장비 업체 소속 C 씨는 “수천 가지에 달하는 소방장비 중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는 장비는 기동장비와 몇몇 개인보호장비 등이 전부”라며 “현장 대원들은 여전히 수입 장비를 신뢰하고 있는데도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결국 사용자인 소방관들에게는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진장비 도입 외치지만 산으로 가는 KFAC
과거부터 우리나라 소방장비 시장은 수입 장비 유통을 근간으로 발전해왔다. 선진 외국의 장비를 들여와 이를 소방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형성됐고 제품 생산 제조업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장 구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선 대원들이 선호하는 장비 중 절반 이상은 선진 외국품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KFAC 도입에 따라 현장심사 기준 등이 포함된 품질관리시스템 구축 의무화로 선진장비의 보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방장비 시장은 제조와 유통사가 확연히 구분된다. 소방뿐 아니라 타 분야의 장비를 함께 생산하거나 정부 정책에 따라 국내 생산이 강제로 지정된 품목을 취급하는 곳 외에는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고 수입 장비를 공급해왔다.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곳보다 외국이나 타사 제품을 유통하는 곳이 더 많은 셈이다.
하지만 KFAC의 품질관리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선 현장심사에 필요한 시험ㆍ제조설비를 비롯해 품질관리 인력 등을 반드시 갖춰야만 한다.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업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A 업체 관계자는 “외국 기업과 거래하는 유통 업체 대부분이 대리점 계약을 맺고 장비를 국내로 들여온다”며 “만약 현장심사에 필요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면 투자 금액을 회수할 때까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이는 사업을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B 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소방에서 사용되는 장비들은 거의 모두가 해외 유명 인증 등을 획득해 국내에 보급된다”며 “외국 인증 체계에 따라 품질관리가 이뤄진 동일한 제품인데 현장심사에 필요한 조건을 무조건 갖추라는 건 결국 유통사 보고 제조업의 외형만 갖춰 포장하라는 얘기와 같다”고 꼬집었다.
C 업체 관계자는 “장비의 일정한 품질관리를 위해 시험시설을 갖추고 성능을 유지하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직접 생산을 하지 않는 기업에 품질관리 인력까지 추가하라는 건 중개 업무를 담당하는 유통 업체에 너무 가혹한 규제”라고 호소했다.
이어 “기본규격과 KFAC 운영 목적은 국내산 장비와 수입 장비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현장 대원에게 성능과 품질이 우수한 장비를 공급하기 위한 것 아니었냐”며 “과도한 규제로 수입 장비의 공급을 어렵게 만들면 결국 현장 대원의 선택권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시행 시기가 불명확한 KFAC 제도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D 업체 관계자는 “전문검사기관이 별도로 지정돼야만 시행될 수 있는 KFAC를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선 혼돈이 클 수밖에 없다”며 “사업의 지속 여부라도 미리 판단할 수 있도록 명확한 시행 시기가 예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