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좋은 아침이야. 캐나다 산불진화 국제출동에 관한 이야기도 벌써 일곱 번째구나. 한 달여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는 걸 느낀단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불진화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해. 우리나라 산불과는 양상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 잘 들어보렴~
마니와키(Maniwaki)에서 약 2일간의 짧은 현지 적응훈련을 마치고 113번 국도를 따라 4시간 정도 걸려 근처 퀘벡주 북부 화재 저지선과 우리가 주둔할 베이스캠프가 있는 르벨-슈흐-께비용(Lebel-sur-Quévillon, 이하 LSQ)으로 이동했단다.
인구 약 2천명 정도의 소도시인데 도시 바로 옆에 께비용 호수(Quévillon Lake)와 항공기, 헬기를 이ㆍ착륙시킬 수 있는 공항이 있어 항공소방력을 유지하며 작전을 수행하기 좋은 곳이야.
사실상 이 도시 말고는 북쪽에 큰 도시가 없어서 최종 저지선으로 삼았지. 북부 산림을 바탕으로 제지업이 발달하기도 했단다.
현지시각 오후 6시께 LSQ 남쪽 입구 인근 호수 바로 옆 ‘모텔 두 락(Motel Du Lac)’이라는 곳에 도착했어. 넓은 주차장과 호수로 이어지는 모텔 뒤편 약 200평 규모의 큰 잔디밭에는 본격적인 작전 수행을 위한 숙영지가 마련됐단다.
개인별 2인용 텐트를 지급 받아서 그다지 좁진 않았어. 강원과 경북, 운영반으로 구성된 우린 섹터를 나눠 신속하게 텐트 설치를 시작했단다. 우리가 오기 전에 캐나다 지원을 왔던 다른 국가의 소방대원들도 이곳에서 숙영했다고 들었어.
텐트 설치와 개인물품 배부 등 숙영지 편성작업을 마치고 오후 7시에 저녁 식사를 시작했어. 사전에 마련된 컨테이너 모빌 룸에서 배식을 받았지. 다른 모빌에는 샤워와 화장실 사용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어.
야외에서 숙영하기 때문에 모기 기피제 등 위생 물품과 전기용품 등 개인물품이 필요했단다. 외교부와 코이카(KOICA)의 지원으로 미리 준비된 물품들은 신속하게 배부됐어. 이외에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들은 추가 조달해주기로 했지.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기관별 샤워ㆍ식사시간이 지정됐단다. 나중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줬지.
사실 숙영이 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모두가 태극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타국민과 타국의 재난 상황을 도우려고 출동했기에 굳은 결의로 한마음이 돼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운영반은 다른 대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동 준비를 하는 동안 매일 오전 7시 숙영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의 Camp Arena, 즉 지휘소(Incident Command Post)인 LSQ 주 경기장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동했어. 브리핑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지.
숙영지에는 120여 명의 미국 소방관이 머무르고 있었단다. LSQ 인근 모든 산림화재는 미국 소방에서 작전권을 위임받아 진화 중이었어.
캐나다 퀘벡주 북부 화재를 미국에서 위임받아 전체 작전권과 진화 전반 사항을 지휘하고 실행한다니….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지.
캐나다와 미국 간의 우호 관계 또한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어. 오전 7시 회의에는 소방청과 산림청의 지휘관들이 반드시 참여해 그날의 임무와 날씨, 더욱 중요한 현재 상황 등을 모두 공유했어. 하루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단다.
브리핑을 마치고 각 기관 모두 지역을 할당받았어. 신속하게 숙영지에서 장비를 정비한 후 차량에 탑승해 작전지역으로 이동했단다. 본격적인 현장 활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
무엇보다 현장 활동에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했어. 평시 전술 활동 공유를 위한 무전 채널이 공유됐지. 보고를 위한 지휘망 채널과 비상상황, 예상치 못한 산불 규모 확산의 경우 항공소방력이 필수로 동원됐기에 이를 위한 별도 채널이 사용됐단다.
우리 소방은 잔화 정리와 저지선 구축 임무를 할당받아 퀘벡 북부의 브라보, 찰리(B, C) 구역으로 이동했어.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였단다. 나중에 배치받은 지역은 1시간 40분 이상 걸린 곳도 있어. 전반적으로 작전지역이 굉장히 광범위했지.
산림청은 남부 위스키(W) 지역에서 소방호스를 이용해 저지선을 구축하는 임무를 배정받았어. 브라보, 찰리 구역은 약 2만6천acre(에이커, 1에이커: 1200평)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단다.
현장에는 이미 미국 소방관(1개 크루: 약 20명)이 활동 중이었어. 작전지역 투입 첫날이니만큼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장 활동을 했단다.
대한민국긴급구호대(KDRT)는 국외에서 캐나다의 자연재난을 돕기 위해 파견된 인력이니 캐나다에서는 당연히 대원의 부상을 원치 않았지. 작전지역을 위임받은 미국 소방은 늘 우리 대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염려하는 게 느껴졌단다. 우린 그에 부응하기 위해 현장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활동했지.
첫날 날씨는 약 32℃로 약간 바람이 있는 선선한 날씨였어. 현장에 도착하니 미국의 센트럴 오레곤(Central Oregon) 산불진화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단다.
출발 전 장비창고에서 준비한 산불진화 장비들을 챙겨 센트럴 오레곤 크루와 작전 투입 전 사전 체크 리스트를 점검했어. 우리가 지참한 수공구, 즉 핸드툴은 문제가 없는지, 물은 충분히 챙겼는지, 나무를 절단하기 위한 체인톱 정비는 잘 됐는지 등을 말이야.
특히 물이 아주 중요했어. 알다시피 작전지역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추가 물품을 지원받으려면 시간이 걸렸지. 이 때문에 사전 준비는 필수였단다. 만일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헬기 동원이 기본 절차였어.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만일을 위해 지도상의 헬리포트 위치도 숙지해야 했단다.
현지 활동 중 불에 탄 지역만 남았고 연소 중인 지역은 아니라는 걸 가장 크게 느꼈단다. 도착했을 때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최성기의 산림화재를 볼 줄 알았어. 그런데 대부분 화재는 항공소방력에 의해 이른 아침과 저녁에 초기 진화된 상태였지. 우린 남은 불을 완전히 제거하는 ‘완진’ 절차에 투입된 셈이었어. 이 부분에 대해선 미국 소방 측도 크게 공감했단다.
사실 처음엔 이런 활동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건 아빠의 완전한 오판이자 오산이었지. 항공소방력으로 물을 뿌려 빠르게 불을 끄고 연소확대를 저지할 순 있어.
하지만 그 불의 근원인 화점은 결국 사람이 직접 찾아 꺼야 하지. 눈에 보이는 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 즉 땅속 혹은 나무 속의 불을 찾는 게 아주 중요한 절차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깨닫게 됐어.
캐나다 퀘벡주 산불과 같이 주변 국가들이 지원 나올 정도의 대규모 산불화재의 경우 다양한 국가와 국적의 소방관들이 하나의 현장에서 협업하는 경우가 많단다. 따라서 상호 교류를 위한 확인절차와 소통은 꼭 필요하지. 미국 소방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했어.
우린 기본적인 산불진화 가방에 대한 정보와 가방 패킹 방법, 산불 장비 사용 시 주의확보에 대한 필요성ㆍ용어들, 수분섭취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물의 적정량(1인당), 메디컬 키트 등 원활한 현장 활동 협업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나눴단다.
본 이야기는 2023년 7월 대한민국긴급구호대(KDRT)의 일원으로 캐나다 산불화재 진압을 위해 국제출동을 다녀온 필자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캐나다 산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된 편지글입니다. 많은 대원분께 국제출동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119플러스> 매거진을 통해 공유합니다. 기고료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회에 기부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은평소방서_ 이형은 : parkercorea@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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