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4. Day 2 이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나무르 성(Citadel of Namur) 야외광장까지 짧은 산책을 했다. 이후 우린 숙소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떨어진 스트레피 티유(Strépy Thieu) 보트 리프트1)로 이동했다. 오전 7시 30분까지 현장에 도착해 등록한 후 진행본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일정표상으로는 이곳에서 5개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미션이 주어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최 측에서 리더에게 대원 1명과 함께 팀별 국기와 100m 로프를 가져오라고 했다.
우린 건물의 지하로 계속 내려갔다. 가장 아래층 넓은 공간으로 이동했더니 24개의 라인이 설치돼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천장에 각 팀의 국기를 매달고 두 명의 등반자(리더, 대원)를 준비하라고 했다.
모든 팀이 국기를 설치하고 나니 천장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잉? 뭐지? 알고 보니 위로 올라간 천장은 배를 수로 하류에서 상류로 올려주는 케이슨(caissons, 상자)의 바닥이었다.
아무튼 이번 미션은 케이슨의 바닥이 최초위치(바닥)로 하강하기 전에 등반자가 열심히 등반해 각 팀의 국기까지 등반하면 종료되는 방식이었다.
케이슨 바닥까지 올라가면서 4개의 매듭을 통과해야 했고 다른 팀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올라가야 했기에 등반대원들은 죽을힘을 다했다. 바닥에 있던 대원들도 소리 높여 응원했다.
사력을 다하는 50여 명의 등반자와 소리 높여 응원하는 200여 명의 팀원 덕에 경기장은 흥분과 열기로 가득 찼다.
‘와! 내가 이런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진짜 행복하다!’
행복감에 젖어 큰 소리로 응원하다 보니 목이 다 쉬었다. 중간에 등반속도가 느린 몇몇 팀은 등반자가 바닥에 닿으면서 탈락했다. 우리 팀 등반자는 케이슨이 내려오기 전에 무사히 태극기를 터치할 수 있었다. ‘이런 규모의 대회를 준비할 수 있다니!’ 주최 측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두 번째 미션은 건물 외부의 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진행됐다. 다리 위 차량에 앵커를 잡고 테라 어댑터 트라이포드(Terra Adapter Tripod)를 이용해 높은 지점을 만들어 다리 밑에 있는 구조대상자를 인양ㆍ구조하는 방식이었다.
단 로프 구조 경험이 없는 파라메딕(Paramedic)과 함께 작업해야 했다. 또 들것에 물을 채운 양동이를 매달아 인양해야 했는데 이때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들것을 인양할 때 구조대상자의 상태가 악화돼 호흡이 멎었다는 상황도 부여됐다.
우린 들것을 다시 바닥으로 내리고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후 구조대상자의 호흡이 되돌아왔다는 상황을 부여받아 재차 들것을 인양했다. 오전 10시 10분에 미션을 시작해 오전 11시 13분에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하지만 구조작업 중 캔버스 로프 보호대와 로프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비금속 장비긴 하지만 꽤 큰 실수였다. 모두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두고두고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아픈 기억이었다. 일이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니 계속 꼬이네….
세 번째는 스트레피 티유 보트 리프트의 상류 쪽 물길(bank A)에서 다른 물길(bank B)로 구조대상자와 대원들이 이동하는 미션이었다.
미션 카드를 보면 bank A와 bank B 사이의 간격은 약 20m 떨어져 있었고 2개의 로프가 big loop로 설치돼 있어 최초 대원이 맞은편 bank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우리 팀은 첫 번째 대원이 반대편 물길로 넘어가는 시간이 30분이나 소요됐다. 하이라인 시스템을 만들어 구조대상자와 구조대원을 동시에 이동시키고 bank A에서 작업하던 대원 2명이 회수 로프를 설치한 후 bank B로 넘어가 로프를 회수하고 나니 1시간 38분이 지나버렸다(12시 20분 시작, 오후 1시 58분 종료). 시간을 초과했다.
평가관의 사후 강평에서 우리가 작업에 몰두한 나머지 들것에 실려있던 구조대상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도 초과됐고 팀원들의 사기도 저하됐다.
우린 어느 단계에서 시간이 지연됐는지, 좀 더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없었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장비를 정리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네 번째 미션은 스트레피 티유 보트 리프트 건물 상부의 기계실에서 실시했다. 바닥에 놓인 구조대상자가 실린 들것을 기계실 벽면을 따라 인양해 중간 다리(bridge)를 건너 기계실 바닥으로 내려놓아야 했다. 따라서 기계실 상부에 앵커를 설치해야 했다.
또 주최 측이 높은 곳에 설치해 놓은 자동확보장치(Auto belay device)를 이용해 대원 1명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앵커 점을 만들어야만 했다.
우리 팀의 대원 1명이 자동확보장치로 확보 후 등반했고 확보장치가 설치된 높이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했다. 자동확보장치보다 더 높은 곳에 추가 확보지점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원이 일어서려는데 평가관이 “Time stop”을 외쳤다. 해당 대원은 추락 시 추락계수가 1보다 커지는 위치라서 ‘사망(Dead)’ 처리하고 남은 대원으로 미션을 시행하라고 했다.
“뭐라고?! 아니 그럼 자동확보장치보다 놓은 위치에 어떻게 앵커를 설치하라고?”
우린 당연히 놀랬고 반발했다. 하지만 대회규정에 분명히 ‘추락계수는 0으로 맞추고 적어도 1은 넘지 말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재빨리 다른 팀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살펴봤다.
다른 팀의 대원은 자동확보장치 높이까지 등반한 후 확보장치와 같은 높이의 구조물에 움직일 수 있는 앵커를 설치해 이동하고 있었다.
아차!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남은 4명의 대원으로 미션을 해결했으나 60분이라는 제한시간을 넘겨버렸다(오후 3시 24분 시작, 종료 시각 확인 못 함). 오늘은 일이 계속 꼬이기만 하는군….
다섯 번째이자 Day 2의 마지막 미션은 스트레피 티유 보트 리프트 건물 하부의 무게추실에서 진행했다. 권상기형 엘리베이터처럼 케이슨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 장력 기계의 하중을 반감시켜주는 무게추(Counter balance weight) 아래 밀폐공간 속에 쓰러진 구조대상자를 구조해야 했다.
Demo day에서 숙달한 RIT pack을 사용하는 미션이었다(미션 카드를 찍지 못했다). 가장 먼저 진입하는 대원이 RIT pack을 챙기고 양압호흡기를 착용한 후 하강해 밀폐공간 내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확인했다. 그가 조건이 양호하다고 판단하자 두 번째 대원이 들것을 가지고 내려가 구조대상자를 끌어올렸다.
어두운 곳이어서 진입하는 대원들은 랜턴을 켜야 했다. 게다가 들것을 인양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 조심스럽게 들것을 끌어올려야 했다.
미션은 오후 5시 34분에 시작해 오후 6시 26분에 마쳤다.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하지만 오늘은 미션을 해결하면서 장비추락과 시간 초과, 추락계수 2로 대원이 사망한 최악의 하루였다.
그렇게 우린 Day 2를 우울하게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오후 9시 팀 리더 브리핑 일정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더 잘해야지!
2024.06.15. Day 3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밤새 비가 내렸다. Day 3은 오전 8시까지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르 성의 야외광장으로 이동해 등록하는 일정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팀원 몇 명과 이슬비를 맞으며 숙소 근처의 샘브레(Sambre) 강가를 걸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더 즐겨보자!”
우린 야외광장에서 현장 등록을 했다. 진행본부 지시에 따라 오전 9시에 나무르 성에 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산기슭으로 이동했다.
Day 3의 첫 번째 미션은 구조대상자를 들것에 싣고 등산로가 아닌 경사면으로 종료 지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미션 카드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동 중 들것의 모양을 수직 형태로 유지하라는 지시사항이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산기슭의 경사면이 매우 미끄러웠다. 우린 종료 지점까지 3개의 pitch를 끊어 각 pitch 종료 지점에 확보점을 설치하고 확보점에 MA 시스템을 만들었다. 2명의 대원은 들것을 당기고 3명의 대원은 들것과 함께 이동했다.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들것과 함께 쓰러진 나무와 풀숲 사이로 이동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오전 9시 50분에 시작해 오전 10시 34분에 종료했다. 우리 팀 옆에서 루마니아 팀이 들것을 끌고 올라오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우린 또 한 번 생각했다.
‘무조건 구조대상자는 가벼워야 한다!’
두 번째 미션은 나무르 성의 북쪽 성벽과 이어지는 축대에서 진행됐다. 진행본부로부터 이동 지시를 받고 미션 장소로 이동하는데 파란 하늘, 고풍스러운 건물, 강이 보이는 돌담과 돌길 등 주위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번 미션에서는 Demo day 때 만져 본 100㎏ 이상의 구조대상자를 실을 수 있는 대형 들것에 60㎏ 중량 원판 2개를 올려놓아 들것 자체 무게만 120㎏에 육박했다(미션 카드를 찍지 못했다).
미션은 축대 상부 차량에 앵커를 설치하고 대원과 들것을 하부로 내려 축대 아래의 구조대상자를 싣고 인양하는 방식이었다. 들것에 구조대상자까지 실리면 무게가 약 200㎏이었다.
우린 앵커에서 6줄을 내렸다. 2개는 들것, 4개는 두 명의 구조대원에게 각 2개씩 할당됐다. 들것은 상부에서 MA 시스템으로 인양했고 두 명의 구조대원은 스스로 등반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문제는 역시 인양의 마지막 단계인 높은 방향 지점2)이 없는 절벽 끝의 모서리였다. 우린 절벽과 들것 사이에 구조대원의 로프를 위치하게 했다. 두 명의 구조대원은 발로 벽을 밀어 들것을 벽에서 이격시켰다. 모서리 상부에서는 들것에 2:1 움직도르래를 설치해 위로 당겼다. 힘들게 들것을 끌어올렸다.
미션은 12시 27분에 시작해 오후 1시 36분 종료했다. 나는 멀리서 우리 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우리 팀 옆에서 프랑스 팀으로 추정되는 대원들을 봤다. 들것을 모서리까지 인양한 후 모서리에 있는 두 명의 구조대원이 힘으로 들것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들은 우리 팀이랑 힘이 다르다!’
그날 저녁 디너 파티(Dinner party)에서 4일간의 일정을 요약한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SMALL TRAIN에서 들것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인양 중 모서리에서 들것이 뒤집히는 팀도 있었다. 역시 체력은 가장 좋은 기술이다!
Day 3의 세 번째이자 대회 마지막 미션은 LA DASE라는 뫼즈강의 특이한 장소에서 실시했다. 미션 카드와 구조장면을 보면 왼쪽(위험지역) 콘크리트 구조물 하단의 구조대상자를 직상부로 인양한 후 오른쪽(안전지역)으로 구조해야 했다.
미션 카드를 자세히 보면 들것 이동 시 구조대원은 반드시 들것과 함께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왼쪽 구조물의 상부 모서리는 곡면형태(녹색 표시)로 장력이 걸린 로프가 닿으면 추가 보호대가 필요 없으나 하부 모서리는 장력이 걸린 로프가 닿을 때 반드시 설치돼야 했다.
위험지역으로 접근하는 대원은 반드시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PFD(Personal Flotation Device)를 착용해야 한다. 대원들은 적색 고무보트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지만 고무보트는 미션 수행 중 단 한 번만 왕복할 수 있다는 제한사항이 있었다.
우린 대원 2명을 태운 고무보트를 위험지역으로 보내고 안전지역에서 던짐 줄을 던져 로프를 연결해 투 로프(또는 Cross hauling) 전술로 미션을 해결했다. 오후 4시에 시작해 오후 5시 28분에 미션을 종료했다.
다른 팀들과는 미션 수행 시간이 달라 루마니아 팀만 어떤 전술을 사용하는지 볼 수 있었다. 그들은 3m 길이의 와이어 슬링 2개를 연결해 위험지역 상부 콘크리트 구조물을 감싸서 앵커를 만들었다. 이후 하이라인 전술로 미션을 해결했다. 하지만 우리 팀은 그렇게 긴 와이어 슬링이 없었다.
“처음에 너희 팀이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들것이 위험지역에서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정말 스마트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에 감탄했다”
평가관이 사후 강평에서 좋은 평가를 해줘 기분 좋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준비한 2024 GRIMPDAY의 경기 일정은 모두 끝났다.
우린 숙소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한 후 대회 본부가 있는 ibis 호텔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와 라이브 밴드(Live band)의 공연, 순위 발표식, 디너 파티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실망스럽게도 우리팀은 20위에 그쳤지만 잊을 수 없는 4일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괜찮았다.
그 후 귀국하는 비행기 출발 시각이 다음 날 오후 3시 20분이라 우린 벨기에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다들 너무 늦게 일어나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까지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반납한 후 수하물을 부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피곤했는지 바로 잠들었다. 역시 두바이에 도착해 4시간 대기 후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타자마자 또 곧바로 잠들었다. 17일 오후 5시 20분(UTC +9)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벨기에로 향할 때처럼 장장 20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우린 귀국 후 대원별로 임무를 나눠 장비와 사용예산, 대회 때 사용한 구조시스템 설계도를 정리해 대회 참가 보고서를 준비하는 중이다. 또 2024 Chiao 대회 참가를 위해 다시 팀을 꾸려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도 지역별로 로프구조팀이 많다. 이 글이 GRIMPDAY 등 국제 로프구조대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소방관들이 로프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
1) 벨기에 에노(Hainaut)의 상트르 운하(Canal du Centre) 지점에 있다. 2002년 초기개통 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트 리프트(높이차 73.15m)였다. 300t의 선박을 수용할 수 있으며 뫼즈강과 셀트강을 잇는 수로 상트르 운하의 상류와 하류 사이를 이어주는 보트 리프트다. 2) 수직 방향에서 들것 또는 하중이 가장자리 모서리를 벗어나기 위해 높은 위치에서 로프의 방향을 바꾸는 지점
참고 자료 1. www.grimpday.com 2. Golden-Ray-investigation-Report, Capsizing of Roll-on/Roll-off Vehicle Carrier Golden Ray St. Simons Sound, Brunkwick River, near Brunswick, Georgia September 8, 2019 3. Suspension Intolerance_IRATA code_Part-3-Annex-G-2014-July-10_1 4. en.wikipedia.org/wiki/Str%C3%A9py-Thieu_boat_lift
경기 군포소방서_ 최기덕 : smile9096@icloud.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