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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그해의 캐나다는 뜨거웠단다- 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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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소방서 이형은 | 기사입력 2024/09/02 [11:00]

아들아! 그해의 캐나다는 뜨거웠단다- Ⅷ

서울 은평소방서 이형은 | 입력 : 2024/09/02 [11:00]

#7. 르벨-슈흐-께비용(Lebel-sur-Quévillon) 진화 활동의 핵심장비 ‘풀라스키(Pulaski)’

안녕 아들! 좋은 아침이야. 지난 호에서는 르벨-슈흐-께비용(LSQ)에 주둔지를 마련한 이후 시작된 본격적인 산불 진화 활동에 이어 미국 산림소방관들과의 적응 활동에 관해 설명했지. 오늘은 그렇게 진행된 적응 활동에서 언급된 몇 가지 장비를 알려주고자 한단다. 

 

▲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장비에 대한 애착이 컸다.

 

▲ 미스터리 랜치(Mystery Ranch)라는 오래된 산불 장비 회사의 제품들은 미국 산림소방관들에게 아주 유명하다.

 

우리 화재진압과 마찬가지로 산불 진화를 위한 모든 장비가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지휘관에게 보고와 동시에 즉시 조치하는 게 중요했단다. 장갑 같은 경우 권고사항이었지만 필수 착용을 권장했어. 

 

현장에서 땅속에 있는 화점 탐색을 위해서나 다른 장비의 활용, 지속적 보수를 위해 장갑을 벗는 일이 허다했단다. 그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어. 오히려 장갑보다 절단ㆍ파괴작업을 위해 보안경을 착용하는 때가 더 많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지.

 

▲ 무전기는 현지 제품을 사용했는데 개별 성능보다 넓은 작전지역을 커버하는 무전 중계기가 더 중요했다. 신호를 찾기 위해 지역을 옮기는 일도 허다했다.

 

▲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는 현장 활동의 모토가 됐다.


무전기의 경우 주파수가 광대역이 아니고 전파를 중계할 전파탑도 많지 않아 넓은 산불 진화 작전지역을 커버하기엔 무리가 있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전 중 무전을 위해 차를 타고 위치를 이동하는 일이 빈번했단다.

 

작전지역이 너무 넓다 보니 헬기이송이나 동원을 위한 헬리포트들도 불도저 등 중장비를 동원해 만들어졌어. 

 

▲ 많은 장비 중 풀라스키와 삽, 체인톱은 필수다.

 

▲ 화재 지역은 확실한 안내표지로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현장 활동을 위한 많은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건 원활한 현장 활동을 위한 ‘풀라스키(Pulaski)’였어. 풀라스키는 화재, 특히 산불에 맞서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공구(Hand Tool)로써 도끼와 곡괭이가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기능을 하나의 도구로 결합한 거라고 말할 수 있지.

 

풀라스키는 방화선을 현장에서 빠르고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개발됐어. 도끼와 곡괭이를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땅을 파고 나무를 자르는 데 언제든지 쉽게 이용할 수 있단다. 

 

▲ 미국 산림소방관의 장비들(출처 구글 이미지)

 

▲ 현장에서 수공구를 다듬는 일은 필수다.

 

풀라스키는 1911년 미국 산림청(USFS)의 레인저인 에드 풀라스키(Ed Pulaski)가 정식으로 개발ㆍ출시했어. 그의 이름을 따 지금까지 풀라스키로 불리고 있지.

 

그가 개발한 이 장비는 정식출시 이전인 1910년 8월 미국 아이다호 재난 상황에서 수많은 소방관을 위험에서 구하는 데 쓰였어. 출시 이후 유명세를 치르기 전에는 로키산맥 지역에서의 산악과 산림 정비 활동에 쓰이기도 했단다. 

 

1910년 아이다호에서 발생한 대화재는 미국 북서부 내륙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약 300만ac(에이커), 즉 코네티컷 주의 크기와 비슷한 면적을 태웠어. 이 화재로 87명이 사망했고 그중 대다수가 산림소방관이었단다. 

 

특히 팀원 28명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아이다호주 외곽에서 순직한 이 사고는 미국 소방 역사상 두 번째로 치명적인 사건(첫 번째는 911)으로 남아 있지. 

 

에드 풀라스키는 아이다호 화재 활동 중 불길에 휩쓸리기 전 44명의 대원을 광산으로 대피시켰어. 장비로 입구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불길의 진입을 계속 막았다고 해. 그중 일부 나가려는 대원들과 마찰이 있었는데 나가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풀라스키는 권총을 꺼내어 탈출을 막았다더라고.

 

결국 이 인원 중 5명을 제외한 모두가 살아남았고 이 터널은 풀라스키 터널로 명명돼 국가사적지에 등재됐지. 이때부터 그의 장비가 그와 함께 더욱 유명해졌단다. 

 

▲ 현재의 풀라스키 터널(출처 구글 이미지)

▲ 아이다호는 지리적 특성과 여러 차례에 걸친 산불, 역사를 바탕으로 산불의 중심지가 됐다(출처 구글 이미지).

▲ 1910년 화재 당시 풀라스키 터널(출처 구글 이미지)

▲ 1910년 아이다호 대화재 당시 화재 범위. 북부가 모두 화재에 뒤덮힌 걸 확인할 수 있다(출처 구글 이미지).

 

풀라스키는 도구를 더욱 개량ㆍ개발했고 1920년 미 산림청은 이 수공구를 상업적으로 제조ㆍ판매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단다. 그리고 1930년 마침내 국가 표준 장비로 채택됐지. 

 

현재 산림소방관들은 풀라스키로 개인 안전을 위한 참호를 팔 때나 통나무를 자를 때 활용한단다. 땅에 돌이 있을 때 돌을 캐는 곡괭이로도 사용하지. 또 손질이 잘 된 날카로운 풀라스키로 줄기나 덤불을 잘라내면서 안전하고 깨끗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있단다. 

 

이렇게 에드워드 풀라스키와 그의 장비 풀라스키, 1910년 아이다호의 대화재는 아직도 미국 산림화재의 역사로 남아 그들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어. 

 

▲ 지금까지도 미국 산불의 영웅으로 남아 있는 에드워드 풀라스키(출처 구글 이미지)

 

▲ 새롭게 입고된 풀라스키들 

 

▲ 사실 풀라스키만큼 중요한 건 식수다.

 

매일 진행되는 산불 진화 활동에 앞서 가장 많이 신경 쓴 게 바로 이 수공구와 식수가 아니었나 싶어. 한번 작전지역으로 나가면 그날은 돌아올 수 없고 전술적 활동에 따라 숙영을 해야 하기도 했어. 날씨와 온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보통 물통 10~15개를 챙겨야 했던 이유야. 

 

그도 그럴 것이 정오 기준 28℃ 이상의 더운 날씨 속에서 보호복을 입고 20㎏ 중반에 육박하는 산불 가방, 수공구를 들고 이동하며 숨은 화점을 찾아 산불을 진화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어. 

 

미국 산림소방관들과 함께한 약 3일의 시간은 마치 현지 적응 훈련과도 같았단다. 그들은 10대 후반부터 이 직업을 선택해 미국 산림청에서 인증한 기준인 산림소방관자격을 취득한 후 취득 레벨에 맞춰 임무를 지정받고 활동했어. 덕분에 체계화된 레벨링 시스템을 그들과 함께하며 경험할 수 있었단다. 

 

상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반드시 그에 따른 시간과 경험인 로그(Log)가 필요해. 그래서인지 이런 현장 활동들은 그들의 로그를 쌓고 좋은 동료들과의 유대감을 통한 팀워크를 향상시키기에도 충분한 기회가 됐단다. 그들은 미주 전역뿐만 아니라 가까운 나라 캐나다와 남미 쪽에서도 팀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어.

 

▲ 팀과 페어 단위로 움직이는 그들의 활동은 배울 점이 많았다.

 

▲ 저지선 주변 연기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남은 화점을 제거했다.

 

▲ 땅속에서 탄화된 뿌리들은 석탄화 되기에 충분한 상태로 연소되고 있었다. 

 

▲ 현장 활동 중 잠시 갖는 휴식과 간식의 여유는 충전이 되기에 충분했다.

 

항공소방력에 의해 초진이 된 후 미국과 우리 소방대원들은 방화선이 구축된 저지선을 따라 이동하며 남은 화점을 정확하게 완전진압했단다. 한편에서는 현장지휘관(IC)에 의해 요청된 불도저 혹은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들이 동원돼 도저 라인(Dozer Line)이라고 하는 방화선을 구축했지. 

 

이렇게 구축된 방화선 주변에서도 숨은 불씨가 되살아 나는 경우 핫스팟(Hot Spot)으로 표현했어. 그 규모가 크다면 즉시 추가 항공소방력을 요청하고 남은 화점을 지상 소방력이 완전진압하게 된단다. 

 

필요한 경우 마킹을 위해 항공에서 휴지를 풀어 던지기도 했어. 지상에서는 팀 상호 간 작업소통을 위해 핑크리본에 글자를 적은 후 나무에 묶어 기록을 남기는 고전적이지만 확실한 방식들이 사용됐지.

 

미국 소방관들과 함께한 현지 적응 훈련 기간 원활한 현장 활동 협업을 위해 기본적인 산불화재진압 가방에 대한 상호 정보교환과 가방패킹방법, 산불 장비 사용 시 주의확보에 대한 통용되는 용어들(용어들은 상당히 중요하다), 수분섭취ㆍ유지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물의 양, 중요한 메디컬 키트 등 상호 구비 물품 등의 정보를 충분히 공유했단다.

 

▲ 풀라스키는 지중화재 진압을 위한 최고의 장비임에는 틀림 없다.

 

▲ 비가 오면 미리 설정된 안전지대로 이동해 대원의 안전을 살피고 작전지역의 동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예상할 수 없는 날씨로 인해 현장 활동 중 비가 내리기 일쑤였어. 비 오는 게 확실해 지면 사전에 날씨기상예보관으로부터 무전을 통해 날씨 변화 정보를 얻었지. 현장지휘관은 이 정보를 토대로 사전에 설정된 안전지대로 대원들을 이동시켜 현장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작전지역 동태를 파악했단다.

▲ 비가 내린 뒤 맑게 갠 숙영지의 저녁 하늘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위도가 다소 높은 캐나다는 한국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일몰이 시작됐다.

 

▲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 숙영지의 텐트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고국의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는 시간은 의미 깊었다.

생각보다 분장이 잘 된 미국 산불 소방팀의 역할이 매우 인상 깊었어. 현장 안전관계 등 프로세스 체계화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노하우를 느낄 수 있었지.

 

체인톱을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뿐 아니라 안전지역 설정, 숨은 화점들을 탐색할 때의 그리드(Grid) 혹은 개구리점프(Leap Frogging)와 같은 기법들은 우리 현장에 도입해 볼 만 하다고 느꼈단다.

 

우린 열화상카메라가 보편화돼 있어 배터리 지원이 가능하다면 고전적인 방법들과 현대적인 장비를 효율적으로 혼용해 더 쉽게 산불 진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냔 생각을 해봤어.

▲ 비가 내린 뒤의 도저 라인은 비의 양에 따라 물이 흐르는 물길이 되기 때문에 빠른 이동은 필수다.

 

▲ 땅속의 나무뿌리들과 기둥을 얼마나 뽑았는지 모른다.


다음 호에는 현장상황판단 고려사항인 ‘LCES’와 미국 산림소방관 혹은 산불소방관인 Wildland Firefighter 자격제도에 관해 알려줄게.

 

우리가 모든 훈련을 마치고 실시하는 디브리핑(Debriefing)처럼 그들의 현장 활동 검토회의인 AAR(After Action Review)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단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복기하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다음 행보를 더욱 자신 있게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아들아, 실수는 창피한 게 아니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그리고 같은 실수를 막지 못한 게 창피할 수 있는 거란다. 아들아. 과거를 보고 미래를 걷자.


본 이야기는 2023년 7월 대한민국긴급구호대(KDRT)의 일원으로 캐나다 산불화재 진압을 위해 국제출동을 다녀온 필자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캐나다 산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된 편지글입니다. 많은 대원분께 국제출동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119플러스> 매거진을 통해 공유합니다. 기고료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회에 기부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은평소방서_ 이형은 : parkercorea@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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