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놀아라~”
코미디언 ‘배추 머리 김병조’를 알고 있다면 나와 비슷한 세대이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온 가족이 뜨뜻한 아랫목에서 무거운 솜이불을 덮고 김병조 씨의 감칠맛 나는 개그에 “ㅋㅋㅋ” 하고 웃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껄껄껄” 하고 웃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그러고 보니 웃음의 표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 걸까?).
코미디언으로만 알고 있던 김병조 씨가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교양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지도가 높은 것도 있었지만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보니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광클을 통해 겨우 수강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김병조 씨가 했던 강의는 명심보감이었다. 인문학적 성찰을 할 좋은 기회였지만 한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수업의 내용보다 중간중간 김병조 씨가 인생을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가 더 좋았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친구들 취업 빨리했다고, 장학금 받았다고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의아했다. 빨리 취직하고 장학금을 받는 게 대학 시절의 첫 번째 목표인데 말이다.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집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향기롭습니다”
강의실 창문 사이로 흐트러지게 벚꽃이 날리고 있었다. 한 주 뒤 다시 찾은 강의실 창문에는 벚꽃이 없었다. 언제 핀 지 모르게 왔다가 언제 피었냐며 사라진 벚꽃.
‘빨리 갔다고 꼭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가?’ ‘빨리 갔다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
몇 달 전 승진심사를 마치고 빨리 승진한 동기들을 부러워하는 후배들에게 김병조 씨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지금의 나처럼….
나는 짧은 시험 준비에도 2008년 광주광역시 소방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너무나 쉽게 풀려가는 과정에 ‘소방공무원 별거 아니네’ 하며 겸손을 잃고 소방간부후보생이나 7급을 운운하면서 입방정을 떨었다. 하지만 그해부터 새롭게 바뀐 체력시험에 적응하지 못하고 체력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며칠간 방황하던 나를 어머니께서 불러 앉히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차라리 떨어진 게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쉽게 얻은 열매에 네가 소중함을 잊고 주변의 작은 자극에도 쉽게 무너지는 공직생활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준비해보자”
1년 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필기는 고득점으로, 체력은 만점으로 채용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쉬운 문턱이라 생각했던 소방이 1년간 간절함으로 바뀌었고 합격 소식에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승진이 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또는 언젠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꼭 전해주고 싶다.
아직 결승선까지 많게는 30여 년 남은 후배들이 5㎞ 달리기에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시작이 빠르다고 결승선에 일찍 도착하는 건 아닐 테니까. 어쩌면 소방관 생활의 희로애락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봄에 피는 꽃만 있는 게 아니야. 꽃들도 피는 시기가 다 다르잖아. 아직 네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야.
<광주 남부소방서 이태영 소방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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