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내 삽관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기관 내 관을 꽂아 호흡을 보조할 때 수행하는 전문 술기다. 

 

‘2020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선 의료종사자가 백 마스크나 전문기도기(성문위 기도기, 기관 내 삽관)를 선택하도록 권고한다. 전문기도기와 백 마스크 환기가 환자 소생률에 미치는 명확한 차이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송까지 고려해야 하는 119구급대원 입장에서 백 마스크 환기는 이송 중 얼굴 밀착이 불안정하고 중단될 가능성까지 있어 전문기도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전문기도기에 대한 충분한 훈련과 경험이 있는 응급의료종사자의 경우 기관 삽관, 그렇지 않은 종사자는 성문위 기도기를 권장한다.

 

병원 전 환경에서 미숙한 구급대원이 기관 내 삽관에 집착한 나머지 환자의 환기를 방해하거나 잘못된 삽관 또는 가슴 압박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내 구급대원 대부분은 성문위 기도기 중 아이겔(i-gel) 후두 마스크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비는 단단히 고정하지 않으면 이송 과정에서 빠지거나 위로 올라오곤 한다. 게다가 기관 내 삽관 대비 에어로졸 오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90% 이상의 기관 내 삽관 성공률을 유지하려면 50회 이상 관련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하는 응급의료종사자들이 매번 기관 내 삽관을 시행할 만큼 위독한 환자를 만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관 내 삽관 성공률을 높이고 비숙련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비디오 후두경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더구나 코로나19 시기에는 비디오 후두경을 이용한 기관 내 삽관이 기관 삽관의 표준으로 권장되기도 했다. 시술자가 환자 입에 얼굴을 가까이 대야 하는 직접 후두경 대비 기도 시야 확보가 쉽고 감염 위험도 줄일 수 있어서다. 

 

다만 현재 비디오 후두경 제품 대부분이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의료기관 등에선 대당 1500만원이 넘는 수입품을 갖추고 있지만 소방에선 예산 한계로 이를 충분히 공급하기엔 부담이 크다.

 

그러던 중 국내 한 스타트업이 비디오 후두경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비디오 후두경을 제조하는 (주)에이아이엠디(공동대표 임태호, 서정치)가 그 주인공이다. 

 

 

<FPN/119플러스>가 에이아이엠디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임태호 한양대학교 응급의학과 교수ㆍ의사를 만나 응급구조용 의료기기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에이아이엠디는 어떤 기업인가.

에이아이엠디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적용해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게 최우선 목표다. AI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회사명도 AIMD(Artificial Intelligence Medical Devices)로 정했다. 현재 수술을 위한 전신 마취나 폐, 심장 질환, 뇌졸중, 중독 등 다양한 응급상황에서 사용되는 AI 기반 비디오 후두경을 만들고 있다. 

 

에이아이엠디가 개발한

AI 기반 비디오 후두경‘A-링고’는 어떤 장비인가.

 

채널 타입인 A-링고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손쉽게 기도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장비다. 디스플레이ㆍ카메라가 장착된 본체와 일회용 블레이드, 배터리, 충전기 등으로 구성된다. 

 

세계 최초로 기도를 자동 식별하는 AI 알고리즘이 탑재돼 기관 내 삽관 경험이 부족하거나 숙련도가 낮은 응급의료종사자가 손쉽게 기도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수많은 기도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카메라로 환자의 기도를 분석한다. 이후 화면에 십자가 모양을 통해 적정한 기도 방향을 표시한다. 응급의료종사자는 이 모양을 따라 기관 내 삽관을 시행하면 된다.

 

화면을 49개 영역으로 나눠 정밀한 기도 내 삽관 방향을 알려준다. 또 리눅스 운영체계로 5초 이내 켜져 신속히 기관 내 삽관을 수행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기존 비디오 후두경(2inch) 대비 2inch가 더 넓고 HD 해상도를 제공한다. 모니터는 앞뒤 45°로 조절할 수 있어 간편한 기관 내 삽관을 돕는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제작된 블레이드는 기존 일회용 블레이드보다 견고하다. 이를 통해 과도하게 힘을 주는 상황에서도 블레이드가 휘거나 깨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신체를 고려해 제품을 설계했다는 게 특징이다. 해외 비디오 후두경은 대부분 서양인의 신체를 고려해 제작됐다. 이 때문에 손이 작으면 사용하기 버거울 수 있다. A-링고는 손이 작더라도 쉽게 장비를 움켜쥘 수 있도록 개발했다. 무게도 500g이라 타제품 대비 가볍다.

 

와이파이 기능을 활용하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기기, PC를 통해 카메라가 촬영하는 기관 내 삽관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어 교육, 수술 상황 기록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감염병 위험이 있는 환자에게 사용할 때 유리하다.

 

A-링고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이어 올해 2월 우리나라 식약처 승인을 획득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제품으로 지정됐음은 물론 미국 CES에도 초대됐다.

 

2024 국제소방안전박람회 참관을 위해 방한한 루이 수랄타 푸라칸 필리핀 소방청장은 가장 인상적인 제품으로 A-링고를 뽑기도 했다. 

 

A-링고에 온디바이스 AI가 적용됐을 뿐 아니라

구급대원 84명의 피드백을 통해 개선됐다던데. 

A-링고에는 온디바이스 AI가 적용됐다. 온디바이스 AI란 서버나 클라우드에 연결할 필요 없이 해당 기기가 자체적으로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지 않아 해킹 우려가 적고 소프트웨어 운영 시 지연되는 문제를 최소화해준다. 무엇보다 사용 환경에 맞춰 알고리즘이 발전되기 때문에 이용 현장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 

 

 

또 국립소방연구원 리빙랩을 통해 구급대원 84명의 피드백을 확보했다. 비디오 후두경이 야외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를 반영해 야외에서도 화면이 보이도록 개발했다. 

 

응급의학과 교수이자 의사로서 창업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2000년 초반 응급기도관리 연구회를 만들어 기도관리 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 6월 해외 학회에서 비디오 후두경을 접했는데 획기적인 장비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바로 비디오 후두경을 도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방에서 구급지도의사로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구급대원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소방에 자문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어려워하는 일이 뭔지를 알게 됐다.

 

일본은 응급구조사가 현장에서 기관 내 삽관을 하려면 마취과 의사 감독하에 수술방에서 20~30명의 기관 내 삽관을 성공했다는 사인을 받아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가 없어 응급구조사가 기관 내 삽관 경험을 쌓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구급대원이 비디오 후두경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이에 기존 제품 대비 가격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품질과 성능은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서 구조ㆍ구급대원에게 필요한 제품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당시 공기호흡기와 장갑, 장화, 앰브백, 비디오 후두경이 개발 제품으로 선정됐는데 그중 비디오 후두경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 회사와 함께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 속도가 더뎠고 원하는 성능과 품질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회사를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 스탠퍼드 등에 가면 병원이나 의과대학에 몇십 개의 창업 회사가 있다. 교수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창업하는 생태계가 병원을 중심으로 자리 잡혀 있다. 무엇보다 제 기술이나 지식이 환자와 사용자에게 직접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랐다. 

 

AI 기반 비디오 후두경을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조에 대한 경험이 없어 제작 단계부터 실패가 많았다. 처음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문제는 켜지기까지 20~30초가 걸렸다. 10초 이내 기관 내 삽관을 수행해야 하는 환경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리눅스 운영체계로 바꾸면서 그간 개발한 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개발에 집중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제품에 맞는 소재나 부품을 찾기 힘들고 대량으로 물건을 발주하지 않아 가격 협상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비디오 후두경에 적용할 카메라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뒤졌고 천신만고 끝에 한 카메라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인허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관련 비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도와주는 게 아니다 보니 모든 비용을 회사 비용으로 지불해야 해서 부담이 컸다. 

 

에이아이엠디의 역량은 무엇인가.

회사에서 정식 직함을 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의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많은 의료진이 도와주고 있다. 한양대학교의 인프라, 글로벌 수준의 전문 인력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도 아주 큰 경쟁력이다. A-링고의 AI 알고리즘을 개발한 사람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다. 

 

아무래도 응급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기에 의료 데이터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관련 데이터를 구하기 위해선 의사들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현업에서 함께 활동하는 의사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도 데이터를 쌓고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에이아이엠디는 없었을 거다. 

 

에이아이엠디의 향후 계획과 대표님의 목표는?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또 해외 논문 등을 통해 기술 우수성을 알리고 향후에는 새로운 AI를 적용한 제품을 개발해 환자 소생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에이아이엠디를 통해 의학 기술이 현실에 접목되면서 응급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낸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면 환자 소생을 돕는 기술과 제품 개발이 더욱 활발해지고 관련 기업도 많아질 거로 생각한다.

 

더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기도 관리는 병원보다 119구급 현장이 더 어렵다. 보통 수술방은 테이블에 환자가 누워 있어 의사가 수술하기 쉽도록 자세를 잡을 수 있지만 구급대원은 상황이 다르다. 또 기관 내 삽관을 하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상 한계가 있다. 

 

AI 기반 비디오 후두경을 만든 이유도 구급대원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번에 개발한 A-링고가 널리 보급돼 구급대원이 좀 더 손쉽게 기도 관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웹진

소방전문 매거진 119플러스 웹진 과월호 보기

www.fpn119.co.kr/pdf/pdf-fpn119.html

네이버 스토어 구독 신청하기

국내 유일 소방전문 매거진 119플러스를 가장 빨리 만나는 방법!

smartstore.naver.com/fpn119

소방용품 정보를 한 눈에! '소방 디렉토리'

소방용품 품목별 제조, 공급 업체 정보를 알 수 있는 FPN의 온라인 디렉토리

www.fpn119.co.kr/town.html?html=town_lis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