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흔하디흔한 인사가 매우 중요한 시즌이 됐다. 아라온호의 3항차 출항과 동시에 헬기와 파일럿마저 장보고 과학기지를 떠나고 순수 월동연구대 18명만의 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3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는 외부 지원을 받거나 외부로 나갈 방법이 없다. 따라서 기지 내 환자가 생기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매우 곤란해 질 수 있다.
3항차 아라온호가 떠나기 전에도 기지 대장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앞으로 외부로 나갈 수 없으니 기지 생활이 정말 힘들 것 같은 사람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회 때마다 인원을 체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됐다.
하루는 배가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면 어떡하지’라며 밤새 복통에 시달리면서도 염려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의료대원이 외과전문의긴 했지만 만약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매우 난처했을 거다. 다행히도 복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남극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통신대원의 빙부상 소식이 전해졌다. 남극이 아닌 타지라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귀국해 장례를 치를 수 있었겠지만 남극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린 귀국할 수 없는 통신대원을 위해 기지에도 빈소를 차리고 함께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전화로 한국에서 진행되는 장례 절차와 진행 상황 등을 처리하는 통신대원을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 모두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것이 현실이구나…’
다행히 그 사건 이후로는 출남극을 해야 할 만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외부의 지원을 받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남극 생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지 않았나 싶다.
월동준비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바람이 세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태양이 떠 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는 게 느껴졌다. 우린 어둠이 찾아오는 극야와 혹한에 대비해 생존을 위한 여러 준비를 해야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먹거리인 식자재를 잘 정리하고 혹한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옮겨야 했다. 우선 건식품류의 경우 겨울 동안 먹을 양과 종류를 구분해 기지의 빈 숙소로 옮겼다.
빈 컨테이너는 기지 출구 부근으로 옮겼다. 냉동실에 보관 중이던 냉동식품을 옮겨 블리자드가 부는 혹한에서도 쉽게 식자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이라면 아무리 겨울이라도 냉동식품을 외부에 보관할 수 없지만 여기는 남극이 아니던가. 평균기온이 영하 25℃를 넘으면서 아무런 전력이 없는 컨테이너도 자연 냉동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자연 냉동고다 보니 온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또 외부온도가 너무 내려가면 과냉동될 수 있었다. 냉장식품의 경우 원래 보관 중이던 기지에서 100m가량 떨어진 발전동 냉장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렇게 보관된 냉장식품들은 일주일에 두 번 주방이 있는 기지로 옮겨야 했다. 우린 그날을 “장 보는 날”이라고 부르고 모든 대원이 함께 냉장 식자재 옮기기에 동참했다. 이렇게 동계 극야기간 먹을 식자재들을 최대한 우리가 주로 생활하는 본관동 가까이로 옮기는 작업을 완료했다.
식자재를 옮기는 것 이외에도 동계기간 사용할 LPG 가스통을 미리 옮겨뒀다. 강풍에 날릴 수 있는 장비, 물건들은 고정시키거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옮기며 차근차근 처음 맞이하는 남극의 겨울을 대비해 나갔다.
원장님은 탁구왕 날씨가 추워지고 해가 점점 짧아지면서 외부활동을 하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극야가 시작되면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고서는 야외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 역시 점점 늘어났다.
그중 동계기간 체력관리를 위한 체육시설 점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단순히 개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극한의 환경, 한정된 장소에서 18명만 지내다 보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관리와 개인 여가를 위해서도 꼭 필요했다.
기지 내 헬스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러닝머신을 점검하고 스크린 골프장과 당구장의 환경을 정리했다. 정원이 80명인 기지 식당에는 이제 18명만 식사한다. 따라서 기존 식탁과 의자들을 다 치우고 남은 자리에는 실내운동을 할 수 있는 장비들을 설치했다.
우선 배드민턴 경기를 위한 라인을 식당 바닥에 그렸다. 다목적실 한구석을 차지하던 탁구대도 꺼내와 놓아뒀다.
이렇게 운동 시설을 본관동에 설치하고 정비하면서 앞으로 보낼 극야기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다들 새로 설치된 운동기구에 큰 관심을 보였다. 대장님은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덕분에 4개 조로 팀을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팀전으로 체육활동을 할 수 있었다.
체육활동 때 그동안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엄청난 운동신경을 보이는 대원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에게 ‘원장님’으로 불리는 의료대원이다.
의료원 원장님 출신이신데 환갑이 넘으신 데다가 평소 걷기 운동만 하셨지 운동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린 운동을 잘하실 거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의료대원이 탁구대가 설치된 후 엄청난 탁구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젊은 대원들의 스승이 돼 서너 명의 수제자까지 두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원장님은 연륜에서 묻어나는 운동감각과 정통탁구의 이론적 배경을 잘 활용하시며 기지 최강자로 떠올랐다.
평소의 생활이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인데 극야를 준비하면서 시작된 체육행사가 우리들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평소 별로 말이 없고 조용하던 한 대원은 체육행사를 통해 엄청난 승부욕을 보였다.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이도 있었다.
체육활동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대장님은 출남극 후 귀국할 때 뉴질랜드에서 우승팀별로 식사할 수 있는 상금을 걸었다. 그래서 동계기간 체육활동은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 덕분에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활력을 잃지 않으면서 동계기간을 무사히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바다가 얼다 하계기간 약 3개월가량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여준 기지 앞 테라노바만은 다시 하얗게 얼어붙었다. 극야시즌 돌입 전 해빙 상태를 파악하고 두께를 측정해 해빙 활동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것 역시 안전대원의 몫이다.
첫 해빙 조사를 위해 해빙 위에 올라설 때의 기분은 남극에 처음 도착해서 해빙 위에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구명복을 입고 로프를 장착한 후 한 발, 한 발 해빙 위를 걸었다. 안전 확보를 위해 전기대원과 해양대원이 내가 지나온 발자국을 따라 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뢰가 묻힌 위험지역을 조심스럽게 탈출하는 군인이 떠올랐다. 그렇게 기지 주변 우리의 활동 반경에 대한 해빙의 두께를 측정하고 크랙의 위치 등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는 해빙 안전교육에 활용됐다. 이때 시행된 해빙 안전교육에서는 기지 앞 해빙 상태에 대한 교육과 해빙 코어 채취를 위한 장비 사용, 해빙 활동에 대한 안전교육 등이 병행됐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곤란하고 힘든 교육이었다. 사실 안전대원인 나조차 남극에 처음 와서 처음 보는 장비들을 인수인계 당시 처음 사용해 봤다. 매뉴얼을 통해 글로 배운 내용으로 안전교육하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나를 더 곤욕스럽게 만든 건 바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지 내 안전교육을 하면 18명의 월동대원 전원이 항상 참석한다. 당연히 대장님도 참석한다. 10차대 대장님은 2008년 국내 최초 빙하시추 프로젝트를 통해 고산 빙하시추를 성공한 인물이다.
이후 남극에서 가장 춥다는 남극 보스토크 기지의 심부 빙하시추 등 10여 년간 해빙 활동과 해빙 코어 등 각종 시추 작업 현장을 누벼온 화려한 경력의 대한민국 최고 빙하 박사님이다.
그런 대장님 앞에서 남극에 온 지 6개월도 안 된 내가 해빙 활동과 해빙 코어 작업에 대한 안전교육을 해야 했다. 또 해빙에 직접 나가 실습교육까지 해야 해서 부담이 엄청 났다. 대학교 시절 교직 이수 수업 때 처음으로 교수님과 동기들 앞에서 강의를 진행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아야 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남극을 여러 번 와 본 연구자와 월동대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번데기 앞에서 점점 뻔뻔하게 나만의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해빙 안전교육을 통해 완전한 극야가 찾아오기까지 여러 차례 해빙에서의 활동이 가능했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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