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일지 2월 9일_ 생존자 5명 구조, 사망자 9명 수습 ④
가슴을 뜨겁게 한 그날의 환호와 박수 생존자 1명 구조
세 명의 사망자를 수습하고 이동한 곳은 첫 번째 현장과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현지 주민들이 몰려와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를 먼저 갈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2개 조로 나눠 도움을 요청한 곳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영어로 의사전달이 가능한 현지 주민이 생존자가 있다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한국의 다세대 주택(빌라)과 비슷한 건물이었다.
1층이 무너져 2층이 1층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에게 생존자 신호를 어디서 목격했는지 물었다.
“어젯밤 지하에서 사람 목소리를 들었어요”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높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저 구조견을 투입해 소리가 들린 주변을 수색하게 했다. 대원들도 건물 전체를 육안으로 수색하면서 생존자의 생체 징후를 찾는 데 집중했다.
때로는 통역사의 입을 빌려 주변에 모인 현지 주민들을 조용히 시켜야 했다. 생존자의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급할 때는 대원들이 검지를 세워 입에 대면서 “쉬~ 쉬~”라고 했다. 그럼 주변에 있던 현지 주민들도 자신의 검지를 세워 따라 하면서 마치 허수아비가 된 듯 미동도 없이 숨죽여 줬다.
수색 절차에 따라 생존자 확인을 반복하다 마침내 우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생존해 있는 게 확실했다. 그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통로를 개척했다. 모두가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듯 힘을 냈다.
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착암기를 넣어 콘크리트를 깨기 시작했다. 콘크리트가 단단하고 커서 다른 통로 개척을 시도해 봤지만 여기보다 좋은 여건의 통로는 없었다. 앞을 막고 있는 게 무엇이든 깨고 부수면서 극복해야 했다. 통로를 개척하는 작업은 힘들었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구조대원들은 자신의 체력이 다 소진되기 전에 다른 대원과 교대하며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만약 체력을 다 써버리면 다음 구조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강도 높은 구조 활동 시 교대와 휴식은 중요한 확인 사항이다.
이 모든 건 구조반장이 체크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구조반장은 국내외 다양한 구조 경험과 현장 대응능력은 물론 반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베테랑 구조대원이 임무를 수행한다. 그들이 육체ㆍ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구조작업과 동시에 생존자와 대화를 이어가는 건 필수조건이다. 생존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현재의 몸 상태를 확인해 구조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얻어야 한다. 또 부정적인 언행으로 생존자에게 쇼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통역사는 무너진 건물 내부에 있던 어린아이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며 심리적으로 안정시켰다. 대원들은 착암기로 콘크리트를 깨고 철근을 절단하면서 주변의 위험 요소를 살폈다. 신속하게 통로를 개척하면서 생존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건 풍부한 구조 경험과 훈련된 조직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통로 개척에만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콘크리트를 깨고 내부로 구조대원이 기어들어갔다. 조금 뒤 생존자를 찾았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다른 구조대원이 구조용 들것을 갖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들것이 들어간 후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진입한 구조대원의 헬멧이 먼저 외부로 보였다. 뒤이어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들것에 실린 어린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통역사는 어린아이와 말을 이어갔다. 건강 상태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현장을 지켜보던 현지 주민과 구조 인력, 타국 구조대 등 모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순간이었다. 그곳에 있던 백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환호 소리에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대한민국 소방관이자 국제구조대원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구조용 들것에 아이를 고정하고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 아래로 옮겼다. 도로에는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로 출동한 국군의무사령부 소속의 의료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의료팀은 전문성과 침착함을 유지하며 아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건강상 큰 문제는 없다는 소견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정밀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현지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 실었다.
구급차가 떠나고 최초 구조작업 지점으로 돌아왔다.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현지 사람들은 계속 박수를 보내줬다. 우리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던 단어가 들렸다.
“코렐리, 코리아”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그날의 환호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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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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