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화재-단독/집중취재④] 화재 때 쏘아 올린 위험천만 ‘방수포’… 소방, 표준작전절차 어겼다호텔 내 소방활동 벌이고 구조대상자 있는 상황서 방수포 최소 두 번 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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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박준호 기자] = 7명이 숨진 부천 호텔화재 당시 소방의 현장대응 과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건물 내부에서 활동 중인 대원들과 구조대상자의 안전을 위해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수포’를 쐈기 때문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부천 호텔화재 사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오후 7시 39분 신고를 접수한 소방은 4분 만인 7시 43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화재진압과 구조 활동에 들어간 소방은 2시간 47분 만인 10시 26분께 완진을 선언했다. 이 사고로 8, 9층 객실에 있던 7명이 숨지고 12명은 다쳤다.
하지만 화재 당시 소방이 방수포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소방조직 내부에선 논란이 거세다. 구조대상자와 소방대원들이 건물 내부에 있을 땐 원칙적으로 방수포를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방수포(Fire truck Deck Gun)는 소방펌프차 상단에 고정해 대용량 방수를 할 수 있도록 고압으로 물을 뿌리는 장비다. 일종의 ‘물대포’처럼 강한 위력을 갖기 때문에 소방에선 최대의 무기이자 위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화재 당시 찍힌 영상에는 소방차 위에서 방수포를 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근 건물의 CCTV와 목격자 등으로부터 입수한 수십 개의 영상과 사진 등을 대조 분석한 결과 소방이 방수포를 쏜 시각은 8시 54분께로 확인된다. 문제는 방수포를 쏜 시점이 건물 내부에 네 명의 구조대상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소방대원들 역시 구조ㆍ진압 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소방청이 규정하는 표준작전절차(SOP)에선 화재실 내 진입 대원이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방수포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외부에서 뿌려지는 강한 물줄기로 인해 내부에서 급격한 산소 유입이 일어나 화염이 커지거나 역화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양의 물이 갑작스럽게 유입되면 고온의 수증기가 생겨 부상의 위험도 높인다.
따라서 화재 당일 방수포를 쐈다는 건 내부의 위험을 초래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방수포의 위험은 실제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지난 2017년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방수포를 사용했을 때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증연구한 바 있다. 이 실험에선 화재가 발생한 주택 현관 입구에 마네킹을 세워둔 후 반대편 창문에서 방수포를 방사한 뒤 피해 정도를 분석했다.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해 변화하는 화염의 형상과 온도를 측정했다.
방수가 시작되자마자 반대편은 강한 폭발이 발생하며 초토화됐다. 현관문 쪽에 서 있던 마네킹의 안면부 온도는 방사 2.2초 만에 52.3에서 203.3℃로 약 4배 가까이 급상승했다. 내부에 소방대원이나 구조대상자가 있을 경우 그들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소방조직 내부에서 이번 화재진압 활동을 보고 크게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안한 시선은 지위고하, 지역을 막론하고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 전 고위직 소방공무원(소방본부장)은 “호텔과 같이 밀집된 실이 많고 복도가 형성된 구조에서 방수포를 사용하는 건 내부에 있는 사람이 죽어도 된다고 판단할 때만 가능한 작전”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B 소방관은 “초급지휘관 교육 때 구획화재 시 화재진압 방법을 물었을 경우 방수포를 쏜다고 대답하면 탈락시킨다”며 “방수포는 공장처럼 대량의 물이 필요하고 내부에 사람이 없다고 확실히 판단되는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 소방관은 “부천 화재 당시 뉴스에서 나오는 방수포 방사 모습을 봤다. 모든 구조작전과 수색 등이 끝난 이후인 줄로만 알았다”며 “내부에 구조해야 할 대상자와 소방대원들이 있었는데도 방수포를 쏜 건 위험천만한 작전을 벌인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화재 발생 지역인 경기도 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지역의 D 소방관은 “뒤집힌 공기안전매트의 경우 여러 논란과 쟁점이 있을 수 있지만 구조대상자가 내부에 있는 상황에서 방수포를 방사한 건 문제가 맞다”고 했다.
이 같은 논란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불거졌다.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경기도 소방관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810호 문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방수포를 고압으로 쏘니 연기가 복도로 다 나갔겠지. 내부 상황 파악 안 하고 무지성으로 쏜 것”이라며 “구획실 화재 때 내부에서 진압하는데 밖에서 방수포 쏘면 x욕 나온다. 사우나에서 물 뿌리는 거랑 똑같아 화상 입을 뻔했다”고 쓴소리를 냈다.
소방은 왜 위험한 방수포를 쐈을까
전국 소방관들은 이번 사고에서 논란이 된 방수포의 사용 실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E 소방관은 “무분별한 방수포 사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투입 직전 쏘지 말라고 동료들에게 신신당부하고 들어가도 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화전이 확보됐다 싶으면 그냥 무작정 방수포부터 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 대원들과 화재 교관 등 복수의 소방관들 증언에 따르면 화재진압 과정에서 방수포를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먼저 소방대원들의 ‘무지’가 꼽힌다. 지휘관이나 현장 대원 모두 방수포의 위험을 아직 체감하지 못했거나 아예 모르는 구성원이 있을 정도다. 각개전투식 전술을 벌이며 방수포를 무작정 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민의 시선이다. 화재 발생 대상물 외부에서 진압 작전을 펼쳐야 하는 소방관들 입장에서 시민의 시선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모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한번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록물로 남기 마련이다.
방수포는 소방의 진압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잣대가 돼 버리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소방장비나 전술 방식의 이해가 부족한 시민 시각에선 그저 “물을 왜 안 뿌려?”라는 의문을 생기게 한다.
즉 소극적 대응으로 인한 비판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소방관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수포를 쏘게 된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F 소방관은 “화재 발생 현장에선 오히려 대상물 내부에서 활동할 때 마음이 편하다”며 “더 힘이 들고 위험할 순 있겠지만 시민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G 소방관은 “소방이 방수포를 잘못 쏜다는 건 분명 많은 이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맞다”며 “이런 문제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소방관들의 지식 함양과 자성도 필요하지만 무조건 많은 양의 물을 뿌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께서 인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화재 당시 방수포 사용은 도박과 같아… “명백한 과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이번 화재 사고에서 방수포가 희생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영상과 사진을 분석한 결과 소방이 방수포를 쏜 건 이날 오후 8시 54분께다. 이 시점은 803호와 805호에 2명씩 모두 4명의 투숙객이 아직 구조되지 않은 시간이다.
소방의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805호 재실자는 오후 9시 2분과 28분께 생존한 상태로 소방에 의해 구조됐다. 방수포를 쏜 지 8분이 지난 뒤였다. 803호 투숙객의 경우 9시 52분과 59분께 숨진 상태로 구조됐다.
하지만 사고 이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명의 희생자는 1시간 전쯤인 7시 57분을 기점으로 가족과의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이 희생자들이 이미 피해를 입은 뒤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해도 방수포를 사용한 건 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소방조직이 자체 규정한 표준작전절차의 명백한 위반인 데다 심지어 건물 내에는 구조할 대상자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소방의 표준작전절차(SOP 207)에선 ‘화재실 내 진입 대원이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방수포 사용금지, 방수포 사용 시 건물 내 진입 대원과 사전 정보공유(열기 역류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라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외부에서 방수포를 금지하는 건 안전사고 때문이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등 각종 안전장비를 착용한 소방대원마저 위험할 수 있다는 건 구조대상자인 일반인에게는 더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하나는 화재실에 대한 개념 문제다. 일반적으로 공장과 같은 대규모 화재실은 커다란 공간으로 구성되기에 화재실의 개념을 쉽게 대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숙박ㆍ주거 시설 같은 곳은 각 실을 독립된 개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낮은 층고와 밀집한 실, 하나의 복도로 다수의 실이 연결되는 구조 특성상 내부에서 발생하는 역화와 높은 온도의 수증기 형성 문제는 자칫 한 층 전체를 위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소방관들이 구획화재에서 방수포 사용을 걱정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알 수 없는 내부 상황과 구조활동, 화재의 양상을 모른 채 무작정 소위 ‘물대포’를 쏜다면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 당시 현장 대원들이 내부에 진입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고 투숙객도 모두 구조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수포를 사용했다는 건 당시 현장 밖 또는 내부 대원은 물론 지휘관, 시민 등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방의 방수포 사용이 명백한 과실인 이유다.
이 같은 이유로 경기소방이 방수포 사용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소방조직 내부의 목소리다.
여차하면 독 될 방수포… “위험성 연구와 시민 의식 전환 나서야”
방수포 문제를 고민하는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H 소방관은 “외국에선 방수포 관련 실험 영상이 많지만 우리나라엔 거의 없다”며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방수포를 쏴야 직원들도 안전하고 화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지 소방청 차원의 심층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수포 사용 논란을 함께 분석한 용혜인 의원은 “소방의 재난 현장 표준작전절차 위반은 현장 대원과 구조대상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잘못된 대응이 반복된다면 소방조직은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방수포 사용이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만큼 소방청 차원에서 현장 대원들의 의견 수렴과 세밀한 연구를 거쳐 명확한 지침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현장 소방관이 보여주기식 대응보다 정말 필요한 작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방청은 시민의 인식 전환을 위한 홍보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 박준호 기자 fpn0@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