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7명 목숨 앗아간 부천 호텔 화재… 문제는 뭐였나(종합)화재경보는 제때 울렸나… 구닥다리 화재감지시스템이 피해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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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박준호 기자] = 또 화재사고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숙박시설이었다.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라 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화재 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한 건물 구조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적기에 화재 사실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피난하거나 소화할 수 있는 각종 소방시설의 역할이 중요하다.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이번 부천 호텔 화재처럼 피해가 커졌다는 건 분명 어디선가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한 두가지 문제로 이렇게까지 큰 피해가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8월 22일 당일 밤부터 약 2주 동안 집중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피해를 키운 실질적인 문제들을 여럿 확인됐다. 이번 화재의 피해 확산 요인이 뭐였는지, 그 문제점들을 파헤쳤다.
알 수 없는 화재감지시스템… 적기에 울렸나
취침 시간이 아닌 초저녁에 불이 났는데도 7명이나 숨진 부천 호텔화재 당시 화재경보설비가 제대로 울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재경보가 울렸더라도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최초 보도한 사고 당시 8층 복도 CCTV 기록에 따르면 810호 입실자가 “방에 타는 냄새가 난다”며 퇴실한 시각은 오후 7시 34분 31초다. 이후 오후 7시 37분 7초에 810호 상층부에서 연기가 분출하는 모습이 호텔 복도 CCTV에 포착됐다. 즉 이 2분 36초 사이 내부에선 이미 연기와 함께 불길이 일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일부 언론 등에서 나온 투숙객들 증언에 따르면 이날 화재경보음은 어디선가 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과연 이 경보음이 적정한 대피 시간이 주어질 만큼 빠르게 울렸는지는 의문이다. 경보를 꺼놓았다 나중에 풀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 같은 화재감지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건 화재 수신기에 남은 기록이다. 문제는 해당 호텔의 화재 수신기에는 기록장치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제조되는 화재 수신기에는 기록장치 기능이 무조건 탑재된다. 이 기록장치에는 화재경보시설의 동작 상태와 소방시설 고장 등의 이력이 고스란히 남는다.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은 개념이다.
일부 건축물에서 관리 주체 등이 소방시설 임의조작 등 비정상적 관리를 하고도 화재 이후 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사례가 나타나자 정부는 2016년 1월 수신기의 기록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불이 난 호텔은 2003년 3월 건축허가, 2004년 10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만일 당시 구형 화재 수신기를 그대로 사용했다면 ‘기록장치’는 탑재되지 않았을 수밖에 없다. 경찰이나 소방 등의 조사 과정에서도 이를 밝혀내려면 CCTV 음향이나 목격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골든타임 날려버린 화재감지시스템
문제는 불이 난 호텔에 설치된 화재감지시스템이 적기 피난 시기를 알려주지 못하는 태생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이 호텔엔 ‘연기감지기’가 아닌 ‘차동식 열감지기’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차동식 열감지기는 주위온도가 온도상승률 이상이 됐을 때 경보를 울려주는 방식이다. 열은 어느 정도 화재가 성장해야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연기감지기보다 동작이 훨씬 느리다.
열감지기의 감지 지연 문제는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실증 실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이 주택화재 실물화재 실험에서 가정용 가스레인지 튀김기름 화재를 재현한 결과 열감지기는 연기감지기보다 무려 8분이나 감지가 느렸다.
에어컨에서 시작된 이번 화재 역시 연기가 나오면서 서서히 성장했을 특성을 고려한다면 피난을 위한 골든타임의 손실은 화재감지시스템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건축물에는 이러한 열감지기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연기감지기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연기식 감지기의 경우 열감지기보다 예민해 비화재보(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경보가 울리는 일)가 잦다는 것도 이유다.
정부는 이 같은 비용과 비화재보 우려에도 이미 숙박시설과 같은 곳에는 연기감지기를 오래전 의무화했다.
지난 2015년 1월 23일 소방청(당시 국민안전처)은 공동주택과 숙박시설, 오피스텔, 노유자시설, 수련시설, 교육연구시설 중 합숙소, 근린생활시설 중 입원실이 있는 의원ㆍ조산원, 근린생활시설 중 고시원 등에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사람이 취침하거나 장시간 체류하는 장소 특성을 고려해 인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2003년 3월 28일 건축허가를 받은 부천 호텔에는 개정 법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역시 스프링클러처럼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드러난 유사 화재 사례로는 2022년 4월 11일 2명이 숨진 굿모닝고시원 화재가 있다. 1977년 지어진 이 건물 역시 차동식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뒤늦게 화재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대피를 시도했지만 복도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화재 때도 오래된 수신기 탓에 경보설비의 작동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 [집중취재-종합] 4년 만에 또다시 반복된 고시원 화재 참사… 문제는?>
구닥다리 화재감지기… 말로만 외치는 소방기술 선진화
화재 발생 호텔은 물론 현행 화재감지시스템에 대한 법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호텔처럼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숙박시설에 구닥다리 화재감지시스템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호텔에 적용된 화재감지시스템은 불이 나면 몇 호실에서 발생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저급 시설로 구비돼 있었다. 흔히 먹는 커피 한 잔보다 싼 가격의 감지기다.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기능적 문제는 더 치명적인 취약성이 있다. 화재가 감지될 때에만 수신기에 화재 발생 신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지기들은 평상시 문제가 있거나 고장이 나더라도 알 수 없다. 이상 상태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어서다. 게다가 일정 공간 내 많게는 수십 개를 모두 묶어 한 회로로 구성된다. 이로 인해 화재 감지 시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다.
부천 호텔을 예로 들면 810호에서 최초 시작된 불로 화재 감지가 이뤄졌더라도 8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호만 보일 뿐 어느 방 감지기가 작동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셈이다. 이곳 역시 한 층의 감지기를 모두 한 회로로 묶어 설치했다. 화재감지시스템의 전반적인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관련 기사 - [기자수첩] 커피 값 화재감지기에 거는 허황된 기대>
소방청은 이 같은 화재감지시스템의 후진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층 건물과 아파트 등에는 아날로그식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아날로그식 감지기는 개별 주소값을 가져 정확한 화재 위치 확인이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감시할 수 있다. 화재 대처는 물론 비화재보가 일어나더라도 문제의 감지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어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
불이 난 부천 호텔처럼 타인이 일정 시간 소유하는 구획된 숙박시설 같은 경우 비화재보 시 대처도 힘들다. 비화재보 원인을 찾기 위해선 투숙객이 있는 방에 들어가 이상이 생긴 감지기를 일일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경보 자체를 아예 꺼놓는 상황까지 불러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사고의 문제를 스프링클러설비 부재만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오랜 기간 미비한 법규를 개선해온 정부의 노력조차 무색할 만큼 방치되고 있는 구식 소방시설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화재에서 연기감지기가 설치됐다면 화재를 초기에 감지해 연기가 복도로 확산되기 이전에 경보가 울렸을 것”이라며 “숙박시설 같은 특성을 가진 대상물은 많은 구획이 이뤄지고 취침도 하기 때문에 화재감지시스템의 성능을 대폭 선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시원은 고치고 숙박시설은 두고… 안 들리는 경보음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불이 난 호텔에는 화재 시 경보를 울려주는 경종은 엘리베이터 앞 옥내소화전 쪽 한 곳이 다였다. 만약 경종이 울렸더라도 각 실의 투숙객들이 화재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해당 호텔 도면에 따르면 화재 당시 에어매트로 뛰어내린 희생자가 있던 방과 이 경종까지의 거리는 17.3m에 달한다. 방마다 현관문과 중문까지 있음을 고려할 때 경보음이 제대로 들렸을 리 없다. 소방법상 경종의 음량은 1m 떨어진 곳에서 약 90㏈ 정도다.
정부는 지난 2013년 화재사고를 많이 겪은 고시원의 경우 경종과 같은 ‘지구음향장치’를 구획된 실마다 설치하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하지만 숙박시설에는 이 기준을 반영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경보시설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화재사고를 계기로 화재 감지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성한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부회장(소방기술사)은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경보시스템)가 중요한 이유는 화재 시 조기 피난을 위해 경보를 울려주는 가장 기초적인 소방시설이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구식 자동화재탐지설비로는 다양한 대상물의 화재안전성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완강기 법규 고쳐놓고도… “썼어도 소용 없었다”
이날 화재 당시 투숙객 두 명은 소방이 지상에 설치한 에어매트로 피난했지만 모두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를 두고 희생자들이 완강기를 사용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사고 이후 언론과 소방 등에서는 완강기 사용법을 앞다퉈 알리는 등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해당 호텔의 완강기는 사용조차 어려울 정도로 곳곳에 심각한 부실이 있는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사용요령보다 이미 설치된 완강기의 건전성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호텔 객실에는 ‘간이완강기’가 설치돼 있었다. 화재 시 피난을 위해 쓰이는 이 완강기는 비상 상황에서 창문을 통해 건물 아래로 피난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소방관련법에 따라 성능 검증을 받아 숙박시설 등에 의무 설치되는 완강기는 일반 ‘완강기’와 ‘간이완강기’로 나뉜다. 두 제품의 차이는 연속적 사용 가능 여부다. 일반 완강기는 사용자가 한번 타고 내려가더라도 또 다른 사용자가 연속해서 쓸 수 있다. 하지만 간이완강기는 한 사람이 내려오면 즉각적인 재사용이 불가한 ‘일회용’이다.
보편적으로 한 객실에 두 명이 입실하는 숙박시설 특성상 이 같은 간이완강기를 하나만 설치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한 명이 피난할 경우 다른 사람은 내려올 수가 없어서다.
과거 이런 문제를 <FPN/소방방재신문>이 집중보도하면서 <관련기사 - [긴급진단] 화재시 피난 생명줄 ‘완강기’, 문제는 없나> 소방청은 지난 2015년 관련 규정을 고쳤다. 연속 사용이 가능한 완강기를 객실마다 한 대를 두거나 간이완강기를 설치할 경우 두 개 이상을 두도록 했다.
이 법규 강화 이전까지만 해도 간이완강기는 객실마다 하나씩만 갖춰도 됐다. 2003년 3월 건축허가를 받은 부천 호텔에는 과거 법령에 따라 간이완강기를 객실마다 한 대씩만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 개의 간이완강기만 있었더라도 위법은 아니다. 하지만 안전성 논란은 불가피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화재에서 투숙객들이 간이완강기를 사용했더라도 두 명 중 한 명은 완강기 사용이 불가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스프링클러설비나 화재감지시스템처럼 소급적용되지 못한 법규 개선책이 완강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김치통인가?… 사용법도 표시 안 된 황당한 완강기
더 황당한 건 실제 객실에 설치돼 있던 간이완강기의 모습이다. 부천 호텔의 일부 간이완강기는 케이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김치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담아져 있었다. 이 같은 형상은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화재 현장 사진은 물론 객실 이용객들이 과거 인터넷 블로그에 남긴 게시물들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형식승인을 받아 유통되는 완강기에는 규정에 따라 반드시 사용안내문을 표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제품에는 완강기 몸체가 아닌 전용 케이스에 이를 기재하고 있다. 누구나 사용법을 익혀 올바른 피난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담긴 간이완강기는 사용안내문도 없이 보관돼 있었다. 대다수 국민이 완강기 사용법을 모르는 현실에서 사용안내문조차 없다면 과연 누가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게다가 마치 김치통처럼 보이는 케이스 탓에 완강기라는 사실조차 쉽게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20년 넘은 완강기… “믿을 수 있을까”
부천 호텔에 설치된 간이완강기 대다수는 20년이 넘은 노후 제품들로 확인된다. 유사시 창문으로 뛰어내려 로프와 기계장치에만 의존해야 하는 특성상 과연 신뢰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실제 소방시설의 점검이나 소방관서의 화재조사 과정에선 완강기를 사용하는 등 실질적인 성능 테스트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소방시설관리업계의 관계자는 “완강기는 제대로 비치된 상황만 확인하지 기구를 실제 타볼 수는 없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이런 노후 소방시설을 교체하지 않았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완강기의 내용연수를 정한 별도 법규가 없어서다. 소방청(과거 소방방재청)은 지난 2010년 화재 시에만 사용되는 소방용품 전체에 대해 내용연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제도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소방방재청의 의지 부족으로 도입이 무산됐다.
이후 소화기 폭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소방관련법에 내용연수 규정이 신설됐다. 그러나 소화기에 대한 규정만 만들면서 다른 소방용품에 대한 사용연한은 아직도 부재한 실정이다.
이 같은 소방용품 내용연수 부재 문제는 소방시설 점검 또는 관리 과정에서 노후 제품의 교체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장이 나지 않는 이상 오래됐다는 이유로 건축주에게 뚜렷한 교체 근거 기준을 제시할 수가 없어서다. 노후 소방용품 사용으로 인한 피해 방지와 소방시설의 온전한 성능유지를 위해 적정 연수를 시급히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한 번 설치되면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게 소방용품인데 적정한 수명 주기와 관리는 필수”라며 “정부차원에서 국민에게 소방시설의 기능 유지를 위한 적정 주기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노후 소방시설의 방치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내용연수에 따른 무조건 교체가 부담이 된다면 교체 주기가 도래한 제품의 성능 재확인을 통해 사용기한을 연장해주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8층에 9m 완강기라니… 소방조사도, 민간 점검도 ‘엉망’
취재 과정에선 해당 호텔에 설치된 대다수 간이완강기가 건물 층수와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제품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확인됐다. 소방예방 행정은 물론 민간 점검에서조차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사진을 보면 해당 호텔의 8층 객실에는 9m용 간이완강기가, 9층에는 10m, 21m짜리 제품이 설치돼 있는 등 층수와 어긋나게 구비돼 있었다.
완강기의 로프 길이는 1층당 3m로 산정된다. 해당 호텔에 4층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8층에는 최소 21m(3m×7층), 9층에는 24m(3m×8층) 제품이 설치됐어야 한다. 만약 로프가 짧으면 외벽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려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관련 법규인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준’에선 ‘로프의 길이는 부착 위치에서 지면 또는 기타 피난상 유효한 착지 면까지의 길이로 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부연하면 완강기는 반드시 타고 내려가야 하는 지면 길이에 맞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완강기의 길이 문제는 소방예방행정과 민간 점검 체계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소방청이 행정안전위원회 윤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구로을)에 제출한 해당 호텔에 대한 화재안전조사 내역에 따르면 경기소방은 지난 2022년과 2023년 화재안전컨설팅을 각 1회씩, 올해 2월 16일에도 화재안전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최근 3년 동안 이뤄진 이 같은 조사와 컨설팅에서 해당 호텔은 모두 ’양호‘ 판정을 받았다. 간이완강기의 로프 길이 문제와 사용법 표기가 없는 속칭 ’김치통 간이완강기‘를 지적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겉핥기식 조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민간 전문업체가 실시한 법정 점검도 엉터리이긴 매한가지였다.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민간업체가 실시한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아홉 번에 달한다. 소방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종합점검’과 ‘작동점검’으로 나뉘어 일 년에 두 번씩 실시된다.
지난 5년 동안 실시된 모든 점검에서 간이완강기는 문제로 보고되지 않았다. 날림점검이었음을 방증한다. 해당 간이완강기가 건물 사용승인 시점에 설치됐음을 감안하면 무려 20년 동안 엉터리로 방치돼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건영 의원은 “소방관서의 예방행정과 민간 자체점검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며 “완강기 사용방법을 대대적으로 알릴 게 아니라 이미 설치된 완강기의 실태를 면밀하게 조사해 문제성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준작전절차 어기고 위험천만 방수포 쏜 경기소방
화재 당시 소방의 현장대응 과정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건물 내부에서 활동 중인 대원들과 구조대상자의 안전을 위해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수포’를 쐈기 때문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부천 호텔화재 사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오후 7시 39분 신고를 접수한 소방은 4분 만인 7시 43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화재진압과 구조 활동에 들어간 소방은 2시간 47분 만인 10시 26분께 완진을 선언했다.
하지만 화재 당시 소방이 방수포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소방조직 내부에선 논란이 거세다. 구조대상자와 소방대원들이 건물 내부에 있을 땐 원칙적으로 방수포를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방수포(turret nozzle)는 소방펌프차 상단에 고정해 대용량 방수를 할 수 있도록 고압으로 물을 뿌리는 장비다. 일종의 ‘물대포’처럼 강한 위력을 갖기 때문에 소방에선 최대의 무기이자 위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화재 당시 찍힌 영상에는 소방차 위에서 방수포를 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근 건물의 CCTV와 목격자 등으로부터 입수한 수십 개의 영상과 사진 등을 대조 분석한 결과 소방이 방수포를 쏜 시각은 8시 54분께로 확인된다. 문제는 방수포를 쏜 시점이 건물 내부에 네 명의 구조대상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소방대원들 역시 구조ㆍ진압 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소방청이 규정하는 표준작전절차(SOP)에선 화재실 내 진입 대원이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방수포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외부에서 뿌려지는 강한 물줄기로 인해 내부에서 급격한 산소 유입이 일어나 화염이 커지거나 역화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양의 물이 갑작스럽게 유입되면 고온의 수증기가 생겨 부상의 위험도 높인다.
따라서 화재 당일 방수포를 쐈다는 건 내부의 위험을 초래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방수포의 위험은 실제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지난 2017년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방수포를 사용했을 때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증연구한 바 있다. 이 실험에선 화재가 발생한 주택 현관 입구에 마네킹을 세워둔 후 반대편 창문에서 방수포를 방사한 뒤 피해 정도를 분석했다.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해 변화하는 화염의 형상과 온도를 측정했다.
방수가 시작되자마자 반대편은 강한 폭발이 발생하며 초토화됐다. 현관문 쪽에 서 있던 마네킹의 안면부 온도는 방사 2.2초 만에 52.3에서 203.3℃로 약 4배 가까이 급상승했다. 내부에 소방대원이나 구조대상자가 있을 경우 그들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소방조직 내부에서 이번 화재진압 활동을 보고 크게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안한 시선은 지위고하, 지역을 막론하고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 전 고위직 소방공무원(소방본부장)은 “호텔과 같이 밀집된 실이 많고 복도가 형성된 구조에서 방수포를 사용하는 건 내부에 있는 사람이 죽어도 된다고 판단할 때만 가능한 작전”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B 소방관은 “초급지휘관 교육 때 구획화재 시 화재진압 방법을 물었을 경우 방수포를 쏜다고 대답하면 탈락시킨다”며 “방수포는 공장처럼 대량의 물이 필요하고 내부에 사람이 없다고 확실히 판단되는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 소방관은 “부천 화재 당시 뉴스에서 나오는 방수포 방사 모습을 봤다. 모든 구조작전과 수색 등이 끝난 이후인 줄로만 알았다”며 “내부에 구조해야 할 대상자와 소방대원들이 있었는데도 방수포를 쏜 건 위험천만한 작전을 벌인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화재 발생 지역인 경기도 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지역의 D 소방관은 “뒤집힌 공기안전매트의 경우 여러 논란과 쟁점이 있을 수 있지만 구조대상자가 내부에 있는 상황에서 방수포를 방사한 건 문제가 맞다”고 했다.
이 같은 논란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불거졌다.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경기도 소방관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810호 문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방수포를 고압으로 쏘니 연기가 복도로 다 나갔겠지. 내부 상황 파악 안 하고 무지성으로 쏜 것”이라며 “구획실 화재 때 내부에서 진압하는데 밖에서 방수포 쏘면 x욕 나온다. 사우나에서 물 뿌리는 거랑 똑같아 화상 입을 뻔했다”고 쓴소리를 냈다.
소방은 왜 위험한 방수포를 쐈을까
전국 소방관들은 이번 사고에서 논란이 된 방수포의 사용 실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E 소방관은 “무분별한 방수포 사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투입 직전 쏘지 말라고 동료들에게 신신당부하고 들어가도 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화전이 확보됐다 싶으면 그냥 무작정 방수포부터 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 대원들과 화재 교관 등 복수의 소방관들 증언에 따르면 화재진압 과정에서 방수포를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먼저 소방대원들의 ‘무지’가 꼽힌다. 지휘관이나 현장 대원 모두 방수포의 위험을 아직 체감하지 못했거나 아예 모르는 구성원이 있을 정도다. 각개전투식 전술을 벌이며 방수포를 무작정 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민의 시선이다. 화재 발생 대상물 외부에서 진압 작전을 펼쳐야 하는 소방관들 입장에서 시민의 시선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모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한번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록물로 남기 마련이다.
방수포는 소방의 진압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잣대가 돼 버리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소방장비나 전술 방식의 이해가 부족한 시민 시각에선 그저 “물을 왜 안 뿌려?”라는 의문을 생기게 한다.
즉 소극적 대응으로 인한 비판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소방관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수포를 쏘게 된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F 소방관은 “화재 발생 현장에선 오히려 대상물 내부에서 활동할 때 마음이 편하다”며 “더 힘이 들고 위험할 순 있겠지만 시민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G 소방관은 “소방이 방수포를 잘못 쏜다는 건 분명 많은 이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맞다”며 “이런 문제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소방관들의 지식 함양과 자성도 필요하지만 무조건 많은 양의 물을 뿌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께서 인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화재 당시 방수포 사용은 도박과 같아… “명백한 과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이번 화재 사고에서 방수포가 희생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영상과 사진을 분석한 결과 소방이 방수포를 쏜 건 이날 오후 8시 54분께다. 이 시점은 803호와 805호에 2명씩 모두 4명의 투숙객이 아직 구조되지 않은 시간이다.
소방의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805호 재실자는 오후 9시 2분과 21분께 생존한 상태로 소방에 의해 구조됐다. 방수포를 쏜 지 8분이 지난 뒤였다. 803호 투숙객의 경우 9시 52분과 59분께 숨진 상태로 구조됐다.
하지만 사고 이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명의 희생자는 1시간 전쯤인 7시 57분을 기점으로 가족과의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이 희생자들이 이미 피해를 입은 뒤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해도 방수포를 사용한 건 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소방조직이 자체 규정한 표준작전절차의 명백한 위반인 데다 심지어 건물 내에는 구조할 대상자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소방의 표준작전절차(SOP 207)에선 ‘화재실 내 진입 대원이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방수포 사용금지, 방수포 사용 시 건물 내 진입 대원과 사전 정보공유(열기 역류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라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외부에서 방수포를 금지하는 건 안전사고 때문이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등 각종 안전장비를 착용한 소방대원마저 위험할 수 있다는 건 구조대상자인 일반인에게는 더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하나는 화재실에 대한 개념 문제다. 일반적으로 공장과 같은 대규모 화재실은 커다란 공간으로 구성되기에 화재실의 개념을 쉽게 대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숙박ㆍ주거 시설 같은 곳은 각 실을 독립된 개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낮은 층고와 밀집한 실, 하나의 복도로 다수의 실이 연결되는 구조 특성상 내부에서 발생하는 역화와 높은 온도의 수증기 형성 문제는 자칫 한 층 전체를 위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소방관들이 구획화재에서 방수포 사용을 걱정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알 수 없는 내부 상황과 구조활동, 화재의 양상을 모른 채 무작정 소위 ‘물대포’를 쏜다면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 당시 현장 대원들이 내부에 진입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고 투숙객도 모두 구조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수포를 사용했다는 건 당시 현장 밖 또는 내부 대원은 물론 지휘관, 시민 등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방의 방수포 사용이 명백한 과실인 이유다.
이 같은 이유로 경기소방이 방수포 사용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소방조직 내부의 목소리다.
여차하면 독 될 방수포… “위험성 연구와 시민 의식 전환 나서야”
방수포 문제를 고민하는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H 소방관은 “외국에선 방수포 관련 실험 영상이 많지만 우리나라엔 거의 없다”며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방수포를 쏴야 직원들도 안전하고 화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지 소방청 차원의 심층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수포 사용 논란을 함께 분석한 용혜인 의원은 “소방의 재난 현장 표준작전절차 위반은 현장 대원과 구조대상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잘못된 대응이 반복된다면 소방조직은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방수포 사용이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만큼 소방청 차원에서 현장 대원들의 의견 수렴과 세밀한 연구를 거쳐 명확한 지침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현장 소방관이 보여주기식 대응보다 정말 필요한 작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방청은 시민의 인식 전환을 위한 홍보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 박준호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