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내가 쓰는 장비 직접 고른다” 중앙소방장비 구매품평회 성황20개 업체서 53개 장비 출품, 나흘간 평가단 1200여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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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신희섭 기자] = 개인보호장비 구매에 앞서 현장 대원들이 성능과 디자인, 사용 편의성 등을 따져보기 위해 실물을 직접 착용해보고 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소방청(청장 허석곤)은 시도 소방본부의 효율적인 장비구매 지원을 위해 지난 14~15일(대구 엑스코), 20~21일(일산 킨텍스) 두 차례에 걸쳐 중앙소방장비 구매품평회(이하 품평회)를 개최했다.
올해 품평회 대상 품목은 공기호흡기 세트와 방화복, 방화헬멧, 안전헬멧, 방화장갑, 안전장갑, 방화신발 등 개인보호장비 8종이다. 업체 20곳에서 총 53개에 달하는 장비를 출품해 1200명이 넘는 대원들이 현장을 찾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성능과 품질이 확보되고 현장 의견이 반영된 개인보호장비 구매를 위해 지난 2020년부터 매년 품평회를 개최해 왔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공정성 논란과 전국 동시 관람에 따른 혼잡, 관람 시간 부족, 원거리 이동 등 문제가 지적됐다.
특히 특정규격에 대한 감사와 민원 등으로 중앙품평회의 결과 활용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본지 10월 8일 자 보도 - “현장평가 절대평가로 바뀐다”… 중앙소방장비품평회 개편>
이번 품평회는 지난 10월 소방청이 예고했던 바와 같이 그간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절대평가 방식의 구매연계형으로 진행됐다.
소방청은 먼저 품평회 이후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공정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 현장평가를 직접 주도했다. 또 시도 평가단 구성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평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전문 업체를 고용해 별도의 평가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감사와 민원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다. 시도 소방본부에서 품평회 결과와 다른 장비를 구매할 경우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고 부득이하게 타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비율을 산정해 품평회를 거친 장비를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방화복 공급업체 3배 늘었는데… 과연 성능은?
지난해까지 소방에 방화복을 공급하는 업체는 하나산업과 한컴라이프케어 등 단 두 곳뿐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5개 업체(케이엠, 무림어패럴, 지구, 동방어패럴, 씨피알코리아메디칼)가 신규로 방화복 인증을 획득하면서 공급업체는 7곳으로 늘어났다.
기존 업체들은 새로운 소재를 적용한 방화복을 선보이며 시장 방어에 나섰고 신규업체는 시장 진입을 위해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품평회에서 연출됐다.
7개 업체 모두 보급형부터 고급형까지 인증을 이미 획득했거나 진행 중인 방화복을 전시하고 시도 홍보에 열을 올렸다.
현재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하나산업의 경우 고어 사의 패럴런 시스템이 적용된 방화복을 선보이며 관심을 끌었다. 패럴런 시스템은 경량성과 투습성, 방수성을 동시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열 방호 성능까지 갖춘 고기능성 원단 소재다. 패럴런이 적용된 방화복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가 젖은 상태에서도 현장 대원들에게 독보적인 열 방호 성능과 쾌적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컴라이프케어는 안전성과 활동성, 편의성 등을 대폭 개선한 방화복을 선보였다. 이 제품의 특징은 상의 후면이 엉덩이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길다는 점이다. 격렬한 활동에도 상의 밑단 안쪽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올해 새롭게 시장에 진출한 케이엠은 듀폰 사가 PBO를 이용해 개발한 ‘Nomex® Xtreme’ 원단 방화복을 소개했다. 이 방화복에는 3D 입체 패턴이 적용돼 있어 현장 대원들에게 최상의 활동성을 제공한다.
지구는 과거에도 방화복을 공급했던 기업이다. 기술기준이 개정되면서 시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지만 최근 고성능 아라미드 소재인 PBO를 사용해 방화복을 새롭게 개발했다. 이 방화복에는 타사 제품과 달리 사용자의 선호도에 따라 개별안전용품을 탈부착할 수 있는 ‘MOLLE SYSTEM’이 적용돼 있다.
무림어패럴의 방화복 특징은 겨드랑이와 팔꿈치, 무릎 부위에 봉제선이 없다는 점이다. 팔을 올려도 상의가 딸려 올라가지 않고 팔과 무릎을 편하게 굽힐 수 있어 장시간 현장 활동에도 피로감을 최소화해준다.
동방어패럴도 새롭게 인증을 획득한 방화복을 선보였다. 겨드랑이와 팔꿈치, 등 부위에 입체 패턴을 적용해 착용감을 극대화하고 어깨와 무릎 보호대는 마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5겹 구조로 설계했다.
씨피알코리아메디칼은 기본에 충실한 보급형 방화복을 선보였다. 겉감과 안감 소재로 아라미드계 섬유 100%를 적용했고 손목 안쪽 내ㆍ외피 결합 부위는 액체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심실링으로 마감했다.
평가단 소속 현장 대원 A 씨는 “방화복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아졌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업체 간 품질 경쟁을 통해 보다 좋은 제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기다렸던 장빈데…”. 가죽제 방화신발 등장에 ‘기대반 우려반’
방화신발은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발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착용하는 개인보호장비다. 소재에 따라 고무제와 가죽제로 구분된다.
고무제와 가죽제 방화신발은 장단점이 극명하다. 고무제의 경우 방수와 전기저항성은 우수하지만 착용감이 떨어진다. 반면 가죽제의 경우 착용감과 투습기능이 고무제보다 월등하다.
이번 품평회에는 업체 3곳이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평가단의 관심이 집중됐던 업체는 유일하게 가죽제 방화신발을 출품한 한스산업이었다.
가죽제 방화신발은 고무제와 달리 소방청 요구 수준의 성능 구현이 어렵다. 소재 특성상 굴곡과 방수, 전기저항에 대한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죽제 신발이 구조화로만 사용돼 온 이유기도 하다.
한스산업이 이번에 출품한 가죽제 방화신발은 인증이 진행 중인 제품이다. 만약 인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번 품평회 참여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품평회장에서 가죽제 방화신발을 직접 착용해보고 평가한 현장 대원들도 인증 문제를 가장 크게 우려했다.
현장 대원 B 씨는 “고무제 방화신발의 착용감이 떨어지는 건 화재 현장에 출동해본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착용감이 좋은 가죽제 방화신발이 품평회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지만 아직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좀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 평가단으로 참여한 현장 대원 C 씨는 “가죽제 방화신발을 곧 착용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평가 점수를 높게 기재했는데 사실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물을 방수해야 하는 화재 현장은 전기로 인한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저항성만큼은 확실해야 한다”고 했다.
한스산업 관계자는 “현장 대원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이미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며 “소방청이 요구하는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기술개발이 완료된 상태로 조만간 인증 절차도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기술ㆍ신소재 적용으로 착용감 개선한 제품들 ‘인기 만점’
한컴라이프케어와 한국하니웰, 케이디펜스는 신기술이 적용된 최신 공기호흡기를 선보이며 평가단의 눈길을 끌었다.
한컴라이프케어 공기호흡기는 통합형 안면부를 도입해 통신 기능을 강화하고 호스 매립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한국하니웰이 선보인 공기호흡기는 HUD 기능이 새롭게 추가된 제품이다. 인체공학적 디자인 설계로 착용감이 좋고 현장에서 230° 이상의 넓은 시야각을 제공하는 면체가 달린다.
케이디펜스는 IT 융복합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공기호흡기를 선보였다. 플라스틱 라이너가 적용된 복합용기를 사용해 무게가 가볍고 인명구조경보(PASS) 기능을 가진 전자식 압력지시계가 탑재된 게 특징이다.
외국산 제품 등장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에 돌입한 방화헬멧과 안전헬멧도 큰 관심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헬멧 시장은 독점 구조로 운영됐다. 인증 획득 업체가 없어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산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인증을 획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 품평회에서도 인증을 획득하거나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인 제품이 다수 출품됐다.
그간 써미트코아퍼레이션과 시즈글로벌이 방화장갑 시장을 양분화하면서 지켜왔지만 내년부터는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새롭게 인증을 획득한 업체가 이번 품평회에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조달청에서도 방화장갑의 MAS 등록을 예고한 상태다.
내년부터 검인증 절차가 KFAC 인증으로 전환되는 방화두건 시장도 분주한 모습이다. 인증 절차가 변경되면 시장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제조사들은 저마다 신소재와 신기술을 적용해 착용감을 개선한 제품을 선보이면서 제품 홍보에 열을 올렸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 대원과 업체 모두 개선된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품평회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며 “평가 점수는 집계가 끝나는 대로 업체들에 개별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도 두 번에 걸쳐 지역별로 품평회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평가시스템 운영 등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현장 대원은 물론 업체들에 더욱 신뢰받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