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담아 황금빛으로 물든 해질녘 광주천은 늘 잔잔하고 고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광주천 돌담길을 밟으며 이곳을 지날 때면 쉬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2023년 9월 15일 새벽 구조버스에 몸을 싣고 출동 중인 박성관 소방관은 횡설수설하는 신고자와의 통화에 진땀을 뺀다.
“주변에 큰 건물이나 간판이 보이면 불러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모든 이들이 그렇듯 신고자는 사고 위치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결국 신고자의 휴대전화 GPS와 주변 상가건물을 토대로 지도를 검색한 뒤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저기에서 친구가 돌을 붙잡고 있어요”
새벽녘 세차게 쏟아지는 비로 광주천은 범람한 상태였는데 인근에서 술을 마시고 삼삼오오 놀던 이들이 위험천만한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어떤 게임? 거센 물살을 뚫고 징검다리 돌길을 밟아 반대편까지 건너는 게임을… 그렇게 사고가 발생했다.
강한 물살은 구조대상자의 얼굴을 할퀴었고 구조대상자는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양손을 뻗어 돌을 움켜잡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강한 물살과 끊이지 않고 내리는 세찬 비, 그리고 가로등 하나 없는 짙은 어둠. 사고 현장의 분위기는 구조대원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주저할 시간은 없었다.
잠수복을 입은 박성관 소방관은 로프를 이용해 안전을 확보한 뒤 진입을 시도했다.
“물살이 세니까 수평으로 접근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상류 쪽에서 내가 구조대상자가 있는 곳으로 조금씩 이동할 테니까 밖에서는 안전 로프를 당겨줘”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하류에는 저희가 백업 장비 휴대하고 준비하겠습니다”
숙련된 구조대원조차 진입하기에 강력한 물살. 박성관 소방관은 실수 없이 한 번에 접근하기 위해 보 안쪽 상류에서부터 물살을 타고 접근하면 물 밖에서는 안전 로프를 당기고 늦추면서 구조대상자에게 접근을 유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작 안전 로프를 잡은 대원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물속에 얼굴이 잠기길 여러 번. 한 움큼 물을 먹어가며 그렇게 구조대상자에게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편 강한 물살은 박성관 소방관의 두 다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붙들었고 움직일 때마다 물속에 얼굴이 잠길 때면 어떤 묘한 기시감에 온몸이 떨려 왔다.
‘물을 먹더라도 내가 빨리 접근해야 살릴 수 있어’
다시 집중에 집중을 더하다 보니 어느 순간 구조대상자를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저희가 빨리 구해드릴게요. 혹시 조금만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아직은 버틸 만한데 너무 추워요”
안전장비를 휴대하고 접근했지만 강한 물살 때문에 구조대상자에게 안전장비를 착용시킬 수 없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성관 소방관의 두 다리도 힘이 점점 빠져 물살을 버틸 여유가 없었다.
“제 두 손을 잡으세요!”
구조대상자에게 두 손을 뻗어 잡게 한 뒤 물살을 뚫고 몸을 굴려 가면서 가까스로 구조에 성공했다. 물 밖으로 나온 구조대상자는 속옷 차림에 저체온증 증상을 보여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 됐다. 마치 목숨을 담보로 거액의 상금을 좇는 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겹치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광주소방학교 박성관 소방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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