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시원했던 봄바람이 부는 계절이 지나고 이제 무더위와 함께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되는 여름이 왔다. 누군가에게는 따분한 일상 속에서 벗어나 탁 트인 바닷가를 찾아 떠나는 계절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그늘과 차가운 계곡물이 흐르는 산을 찾아 떠나는 계절일 수 있다. 아니면 제자리에서 묵묵히 더위와 싸우며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분들의 사투가 계속되는 여전히 ‘뜨거운’ 계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요즘 같은 시즌이 오면 곧 있을 여름 휴가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 같다. 겨울 휴가철은 없는데 여름 휴가철이란 말은 있을 정도니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는 여름이란 계절이 뜨거운 햇살처럼 마냥 내일의 기대에 가득 찬 시기는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에 앞서 우리는 장마라는 녀석을 무사히 보내야 하고 장마가 끝나도 틈틈이 찾아오는 태풍을 다시 맞이할 수도 있다.
장마와 태풍은 단순히 비가 많이 와서 소위 말하는 ‘물난리가 날 수도’ 있는 시기라고 보아선 안 된다. 예전과 달리 지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도심지역에서 홍수가 나 마을 전체가 침수되고 떠내려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착각한다.
그러나 최근 5년간의 자료를 살펴보면 여름철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사고는 약 5만 5천건이며 이 수치는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위 자료 중에서 침수ㆍ급류로 인한 사고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도심 외곽에서가 아닌 상하수도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지역에서의 사고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갑작스럽게 내리는 집중호우와 연관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시간당 약 30㎜ 이상, 하루 80㎜ 이상의 비가 한 지역 내에 집중적으로 내릴 때 집중호우로 본다.
지난해 7월 여러 침수ㆍ급류사고가 발생했던 지역의 수치를 보면 시간당 약 100㎜ 이상의 집중호우로 일명 ‘물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비가 쏟아내렸고 이로 인해 많은 사건ㆍ사고가 잇따랐다. 올해 장마철에는 더 많은 비가 더 오랫동안 내릴 것이라고 기상청은 내다보고 있다.
해마다 많은 비로 사고가 증가하고 있고 이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고 대응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시기만큼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는 기간인 것 같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재해에 있어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한계가 오기 전 예방할 수 있다면 인명피해는 분명히 줄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있는 도심 속에서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외곽에서든 똑같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침수ㆍ급류사고에 대한 피해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장마철에는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한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특성상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오전 출근 전, 아니면 전날 저녁에 잠깐 확인하고 대비하는 일은 집중호우 대비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짧게는 시간 단위로 변하는 것이 국지성 집중호우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지역의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해 대비한다면 피해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비로 인한 주변 수위가 높아졌을 때는 재산 보호보다는 사전 자력 대피가 우선이다.
집중 호우로 일어나는 수위나 물살은 우리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불어난다. 따라서 미리 대피하지 않고 ‘이제 위험하겠는데?’라는 생각을 갖고 그제서야 행동하는 시점에는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
만약 비 피해가 많아지는 지역에 있다면 주변 하천이나 지하차도 등으로는 접근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물의 흐름 특성상 지형의 높낮이와 통로의 크기 차이로 유속이 급격히 빨라지는 형태를 보여서다. 만일 이 주변에 차량을 주차했다면 미리 대피하고 물의 수위가 차량의 타이어가 잠길 만큼 높아졌다면 절대 차량 가까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 정도의 수위라면 차량은 불어나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오히려 차량 근처로 접근하면 ‘사이펀’ 현상으로 인해 차량 밑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셋째는, 지하공간에서는 비상구의 위치와 대피경로를 미리 파악한다.
반지하 주택의 경우 물이 실내로 들이차는 것을 막기보다 미리 열어두거나 대피하는 게 우선이다. 물의 유입을 막으려고 현관문을 닫는 시점에 이미 문 바깥쪽에 많은 물이 들어찼다면 물의 압력으로 출입문을 개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외부 방범창을 통해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미 들어찬 물이 외부 방범창까지 수위가 높아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대피 시에는 가급적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 물에 젖지 않으려 장화를 신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수위가 장화의 높이보다 높아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찬다면 탈출이 힘들어져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넷째, 강이나 계곡 근처에서 많은 양의 비가 예보되면 가급적 위치를 옮기고 구명조끼 등의 안전장비를 꼭 지참한다.
강이나 계곡은 도심지역과는 달리 상하수도 처리 시설과 같은 물 빠짐 구간이 없어 내리는 비의 양만큼 물의 수위와 유속도 그대로 빠르게 불어난다. 이러한 환경에 아무 대비책 없이 놓여 있다가는 큰 인명사고에 직면할 수 있다.
강이나 계곡은 수중 음영과 시야 때문에 그 수심을 유추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때 안전장비 없이 사고를 당한 사람을 발견하면 직접적으로 구조하려 하지 말고 즉시 119 등 전문 구조기관에 신고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재난이든 일단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각 분야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번 일어난 재난에 대해 아무런 상처 없이 지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한 피해 대책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조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심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인명ㆍ재산피해를 줄일 수 있으리란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는 있지만 잘 행하지는 않는 것, 바로 사고에 대한 안전의식을 갖고 예방조치를 미리 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안전하고 신나는 여름을 맞이하는 기본이지 않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 신나는 여름을 맞이하려면 반드시 긴 장마를 거쳐야 한다. 습하고 어두운 하늘 아래 장맛비를 이겨내야 비로소 맑은 하늘과 밝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듯, 우리도 이제부터 시작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진짜 여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보자!
부천소방서 119구조대 소방장 지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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