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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일선 눈높이 못 맞춰 현장서 외면하는 소방장비

매해 반복되는 입찰 폐해, 입 못 여는 소방
조달청 거래 제도에 판매ㆍ수요처만 속 앓이
기형적 조직 구조가 불러 온 부실 소방장비
시행 10개월 앞둔 소방장비관리법이 해답인가

신희섭 기자 | 입력 : 2018/03/09 [11:08]

 

[FPN 신희섭 기자 ] = 소방장비 구매를 위해 해마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작 일선 소방공무원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지급받은 장비의 사양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장비를 구매하지 못하게 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는 소방차량을 비롯해 인명구조장비, 개인안전장비 등 대략 930여 종에 달한다. 이 중에는 소방차량과 같이 규격이 마련돼 공통 운용되는 장비도 있지만 규격조차 없는 장비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지역 소방관서별로 필요에 따라 제각각의 형태로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일부 소방장비의 구매는 수의계약을 통해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조달청 종합쇼핑몰을 통해 이뤄진다. 조달청은 다수인공급자계약(MAS) 또는 일반경쟁 입찰, 제3자 단가 계약 등으로 낙찰업체를 선정하고 수요처인 소방관서에 낙찰 업체로 하여금 직접 장비를 납품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낙찰자를 선정하는 과정이다. 그나마 MAS로 구매되는 장비의 경우 제조사 정보가 사전 공개돼 수요처에서 직접 업체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품질 좋은 장비를 보유한 업체가 낙찰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일반경쟁 입찰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일반경쟁 입찰은 일정 자격을 가진 입찰자를 대상으로 경쟁 입찰에 참여토록 한 후 그 중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업자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가장 유리한 조건이라는 건 결국 싼 가격이다. 낙찰자 선정을 위한 평가에는 항목별로 점수가 매겨지는데 가격 평가 점수가 타 항목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에 아무리 수요처에서 품평회 등을 열고 품질 좋은 장비에 좋은 점수를 주더라도 가격이 높다면 점수 차 극복은 힘들어지게 된다. 품질이나 선호도는 온데간데 없이 가격만으로 구매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반복되는 입찰 폐해에도 입 못 여는 소방

 

지난해 일부 지역 소방관서에서는 웃지 못 할 입찰 일이 벌어졌다. 낙찰자로 선정된 업체가 장비를 납품하지 못하면서 결국 수요처인 소방관서는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지방에 한 소방관서에서는 겨울철 현장 활동이 잦은 소방공무원을 위해 2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배정해 겨울철 피복 구매를 진행했다.


당시 일반경쟁 입찰로 낙찰된 한 업체는 장비를 납품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납품 지체를 이어가다 결국 업체는 장비 납품을 포기해 버렸다. 다행히 재입찰을 거쳐 타 업체와 계약이 이뤄져 장비 구매는 완료됐지만 겨울 피복은 봄날에 가까워져서야 공급될 수 있었다.


또 한 소방본부가 입은 피해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 소방본부 역시 지난해 현장 대원을 위해 4억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하고 소방장비 구매를 일반경쟁 입찰로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납품을 미뤄오던 낙찰자가 결국 장비 납품을 포기했다. 문제는 납품하겠다는 업체 말만 믿고 해가 넘어가도록 예산을 이월시켜 놓지 않으면서 결국 내년도 예산은 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일선 소방관서에서 물품 구매업무를 담당하는 한 소방공무원은 “소방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조달청과 단가 계약이 체결된 MAS 품목 장비의 경우 수요처인 우리가 사전에 업체 정보를 파악하고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일반경쟁 입찰로 구매해야 하는 장비는 낙찰자로 선정된 업체의 정보 파악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억울해도 어디에다 말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 했다.


그는 또 “조달계약 방법에는 입찰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하는 제한경쟁 입찰 방식도 있지만 규제를 완화하려는 정부 정책을 따르다 보니 이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방장비를 전문으로 납품하는 업체들도 볼멘소리가 높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일반경쟁 입찰의 경우 자격 조건이 낮다 보니 생소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며 “소방장비 입찰 건에 문구류나 정육점, 미용용품점이 참여하는가 하면 몇몇 업체들끼리는 연합을 통해 조직적으로 입찰에 참여하면서 시장을 흐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조달 제도에 의존하는 소방장비 ‘폐단 지속’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는 최근 섬유류 소방장비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소방용 특수방화복의 경우 제 때 납품이 이뤄지지 않고 심지어 품질 문제까지 터졌다. 화재진압용 소방장갑은 조달청 종합쇼핑몰에 등록된 제품이 없어 구매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 조달청은 소방공무원이 착용하는 소방용 특수방화복에 대한 구매 방식을 MAS에서 3자 단가 계약으로 변경했다. 말이 좋아 수요기관에서 직접 계약자에게 납품을 요구하는 방식이지, 엄밀히 따지면 일반경쟁 입찰과 같은 방식으로 낙찰자가 선정되고 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으로부터 소방용 특수방화복 형식을 받은 업체는 현재 4곳, 이 중 지난해 조달청 입찰에서 3자 단가 계약 낙찰자로 선정된 업체는 단 2곳뿐이다.


지난해의 경우 소방용 특수방화복 3자 단가 계약은 제조사 생산 능력을 고려해 3천 벌씩 총 3회에 걸쳐 진행됐다. 낙찰자로 선정된 두 업체 중 한 업체가 각각 두 번과 한 번 낙찰자로 선정되면서 6천 벌과 3천 벌의 방화복을 소방관서에 납품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납품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약속 날짜에 납품하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신임 소방공무원에게 지급하려 했던 일부 소방관서에는 여분(예비용)으로 비축해 놓은 방화복을 선지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납품 지체는 품질 문제로까지 번졌다. 지역의 한 소방공무원은 “납품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업체가 또 입찰에 참여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늦게나마 방화복을 받았지만 엉성한 박음질 등 급하게 납품했다는 걸 눈으로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선 소방관서에서 장비 구매를 담당하는 한 소방공무원은 “소방용 특수방화복의 경우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지지만 제조사마다 봉제선 패턴이 다르고 디자인 등도 조금씩 다르다”며 “MAS 구매가 가능할 때에는 직원 선호도 조사를 통해 직원들이 원하는 방화복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선호도가 낮은 제품이라도 그 업체가 낙찰자로 선정되면 어쩔 수 없이 구매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 불만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용 특수방화복은 3자 단가 계약을 통해 구매라도 할 수 있지만 화재진압용 소방장갑은  구매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가 계약 문제로 조달청과 제조사 간 대립이 이어지면서 종합쇼핑몰 등록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장갑 제조업계는 단가 계약 과정에서 조달청이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종합쇼핑몰 등록을 위한 계약 체결 과정에서 낮은 단가 계약을 제조사에 강요한다는 주장이다. 한 제조사 대표는 “이전 계약에서 체결됐던 소방장갑의 단가는 80,000원대였다”며 “다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조달청에 몇 차례 요청했지만 40,000원대로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계약을 체결해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해서 듣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2년 전 제조사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터무니없는 가격대로 장갑이 납품된 적이 있다”며 “이 역시 구매제도 때문에 벌어진 일로 장갑의 경우 원단을 대량으로 구매해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가 항상 쌓이기 마련이다. 특히 장갑 재고는 업계에서도 악성 재고로 불리며 소진하지 못하면 무조건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을 낮춰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장갑으로 인한 불똥은 소방청으로도 튀었다. 각 시ㆍ도 소방관서로부터 장갑 구매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탓이다. 소방청 역시 이 문제로 조달청과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달청은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계약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비 폐단, 원천 문제는 ‘따로 있다’


소방장비 구매 폐단이 발생되는 배경은 우리나라 소방장비의 효율적인 구매와 관리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조직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현재 소방청 장비항공과에는 과장을 포함해 총 14명이 일하고 있다. 이 인원이 930여 종에 달하는 소방장비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셈이다.


소방청과 함께 국민안전처에서 독립한 해양경찰청의 경우 해경 장비에 대한 업무를 장비기술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 장비기술국은 현재 4과(장비기획과, 장비관리과, 항공과, 정보통신과)로 구성돼 운영되고 있으며 총 85명이 근무한다. 소방, 해경처럼 제복공무원으로 분류되고 있는 경찰도 1정책관, 3담당관 조직에서 151명의 인원이 장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을 제외하면 소방은 정부부처 중 가장 많은 장비를 운용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장비를 담당하는 인력은 한 손에 꼽힐 정도다. 실제로 무검사 방화복 유통 사건과 같은 이슈가 불거지거나 국회 국정감사라도 진행되면 본연의 업무는 마비 수준이 되는 게 현실이다. 체계적인 소방장비의 관리나 구매는 꿈 속 이야기일 뿐이다.


소방장비관리법, 장비 문제 실마리 풀까


현재로서는 조달청의 소방장비 구매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부조달을 통해 이뤄지는 수많은 물품 구매 행태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해법은 소방장비관리법이다. 소방장비관리법은 그동안 소방조직 내에서 나타났던 소방장비 분야의 산적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는다. 특별법 성격을 가진 이 법률은 지난해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2월 26일 공포됐다.


소방장비 표준규격 지정에서부터 인증과 품질 개선, 구매와 보유ㆍ관리, 운용, 점검ㆍ정비, 처분에 이르기까지 소방장비의 전반적인 사항이 담겨 있다.


소방청은 이 법의 하위법령 제정을 위한 전담팀을 꾸린 상태다. 현행 입찰 방식에서 한계로 나타나는 장비 품질 문제의 해소방안을 하위법령을 통해 마련한다는 게 소방청의 방침이다.


이 과정에선 소방장비의 특정규격을 지정하고 구매할 수 있는 조항을 세부적으로 명시할 예정이다.


공포 1년 뒤인 올해 12월 말부터 시행 예정인 이 법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취재 결과 전담팀에서 일하고 있는 인원은 기존 장비항공과 인력 3명에 고작 파견 인원 두 명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장비항공과 직원의 경우 본연의 업무까지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법령 정립과 대책이 마련될 수 있겠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방장비 구매를 담당하는 일선의 한 소방공무원은 “십수년간 지속된 소방장비 구매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련법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일선에서는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며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관리할 사람이 없는데 과연 제대로 돌아갈 수나 있겠냐”며 의문을 나타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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