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자동식 스프링클러는 수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박물관, 컴퓨터 서버실, 도서관 등에 사용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처음 개발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준비작동식 밸브는 탄생부터 잘못되면서 개발 취지를 상실한 지 오래다.
선진국에서는 고가 장비나 유물 등 귀중한 자산을 방호하기 위해 방수시간이 지체되더라도 더블 인터록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갤러리나 도서관처럼 인명과 자료 등을 동시 방호하면서 조기 방수가 필요한 곳에는 싱글 인터록을 통상적으로 적용한다. 이러한 인터록 방식 외 비인터록(Non-Interlock) 방식도 허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화재안전기준에서는 선진국과 같은 개념을 두지 않는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오로지 감지기로만 작동되는 싱글 인터록과 유사한 밸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주로 동파 방지를 목적으로 쓴다. 이 배경은 일본의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습식밸브, 건식밸브, 일제개방밸브의 장점을 모아 준비작동식을 개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리지날 준비작동식을 변형해 개발한 일본형 준비작동식밸브를 도입하면서 각종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런 변질된 준비작동식 밸브의 영향으로 지금의 우리나라 시스템이 화재발생 시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기술자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변형된 우리의 준비작동식밸브는 선진국의 밸브와 달리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다.
유지관리도 전혀 할 수 없고 심지어 정상적인 작동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무용지물 설비와 다를 게 없다고 보는 이유다.
첫째로 해외기준은 배관 모니터링은 기본(NFPA13 8.3.2.4.1)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밸브시스템은 2차 측 배관에 감시 기능이 전혀 없다.
습식과 건식의 경우 배관 내부에 항상 압력수와 공기압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국내 준비작동식 시스템은 대기압 상태의 감시 기능이 전무하다.
준공 이후에는 통수시험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아 배관이 연결돼 있는지를 보장할 수 없다. 즉 배관 물 빼기가 만만치 않아 작동시험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배관 기밀이나 배관 손상, 헤드 탈락 여부의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대전의 아모레퍼시픽 물류 창고 화재 시 밝혀진 스프링클러 작동불량 사건은 이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해외의 경우 배관 내에 최소한 7psi(0.5 bar) 이상 저압을 유지(NFPA13 8.3.2.4.4) 하도록 하고 누기 시에는 경보가 발생하도록 구성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이다.
둘째는 국내 스프링클러의 조기 작동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국내 준비작동식 시스템은 밸브의 개방이 법적으로 감지기에 의한 작동방식만 고집하고 있다. 게다가 해외와 달리 감지기회로 방식을 교차회로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주차장의 경우 노출 천정에 보가 설치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보로 둘러 쌓인 공간 내부에 적정한 감지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법 기준에 보에 따른 설치 기준이 없고 교차회로 방식으로 조기 감지의 중요성이 무시되는 게 현실이다.
스프링클러 헤드의 감열 개방보다 먼저 감지기 작동 후 밸브를 개방시켜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감지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함에도 이를 법규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가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 그간 실제 화재 사고의 미작동 사례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인명안전과 재산 보호라는 의무를 져버리는 일이다. 관련 기준 개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준비자동식 스프링클러를 습식이나 건식 방식으로 교체토록 해야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택구 소방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