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 소방(12)] 소방차 통행문제로 골머리 썩이는 독일소방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5/10 [12:10]

▲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소방차량에 길을 잘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본보기로 자주 거론되는 독일. 하지만 독일 소방관에게 불법주차 차량과 제때 양보하지 않는 차량들로 인해 사고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라고 반응할 것이다.


주차차량 장애
독일 일간지 라이니쉐 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월 25일 일요일 밤에 독일 뒤셀도르프 시 엘러라는 지역에서 다세대 주택화재가 있었다. 순간전기온수기로 인해 불이 났고 신고를 받은 2개 안전센터에서 현장으로 출동했다. 화재신고 4분 만에 관할구역 안전센터에서 도착했고 다행히 집주인 70대 노부부가 정원 물호스로 초기진화를 시도한 탓에 진화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의 각 층 방에 대해 인명검색과 잔화확인 작업을 지원하는 후착 안전센터는 인근에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결국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 불법주차로 인해 비좁아진 도로를 어렵게 통과하는 독일 소방사다리차

 

이 사건이 있던 그 주에만 뒤셀도르프에는 유사 문제가 2건 더 발생했다.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현장으로 소방차량이 출동하는 동안 무분별하게 주차돼 있던 많은 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출동에 지장을 받게 된 것. 소방차량은 계속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려댔지만 결국 소용없었다. 며칠 뒤에는 이중 주차 차량 한 대 때문에 출동시간이 늦어졌던 일도 발생했다.

 

▲ 폭 3미터 이상 확보 의무 위반 여부를 측정하는 마인츠 경찰 독일 SWR방송 동영상 캡쳐     © 기고자 제공

 

▲ 주차위반행위에 대한 독일의 범칙금 표(출처. 독일 Bußgeldkatalog)

 

소방차 진입을 막았던 운전자에게는 범칙금이 부과 됐다고는 하지만 화재현장으로 가는 소방차량의 진입에 장애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과되는 범칙금은 최대 65유로(구급차 60유로)에 불과했다. 차량이 견인되었을 경우 약 130유로의 수수료만 추가 납부하면 된다.


신속한 출동이 생명인 소방차량이 이렇게 주차위반 차량으로 인해 비좁아진 도로를 무리해서 통과해야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주차차량과 접촉사고를 내는 일도 발생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소방잡지 Feuerwehrmagazin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뒤셀도르프에서 이런 일이 한해 평균 25건이나 발생한다. 올해만 해도 벌써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량이 출동 중 파손하는 사고가 16건이나 발생했다. 주차된 차량을 파손하면서 소방차량이 통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독일 현행법상 이런 파손사고의 경우 소방서에 변상책임이 있다. 때문에 사후 처리비용이 큰 부담이 된다고 한다. 뒤셀도르프 시에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구역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정기적으로 소방서와 자치단체가 캠페인을 벌이고 방송으로도 호소하고 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 양보하지 않는 주행차량 장애
대다수 사람들은 독일에서 소방차량이 출동하면 일제히 길을 비켜주던 영상의 장면을 기억한다. 지난 2009년 5월 중순 독일 실습기간 중 소방차량을 타고 출동하며 촬영한 영상을 모아 언론사에 보낸 것이 유명포털사이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1일 15만 조회건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사편집과정에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도로위 모세의 기적’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이런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방차에 길을 비켜주는 모범적인 나라로 독일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당연히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꼈던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소방서 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지 10년이 돼가던 지난 2015년 다시 독일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런데 소방서 차고에서 길을 비켜달라는 절절한 캠페인 문구가 요란하게 적혀있는 차량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범적으로 소방차량에 길을 양보해 주는 나라에서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현지 소방관들은 양보 해주지 않는 운전자들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했다. 한 번은 소방대원 자가용에 동승해 뒤쪽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옆으로 길을 비켜 다른 차량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예상대로 차량들이 일제히 길을 비켰다. 나는 동승한 소방대원에게 “이렇게 잘 비켜주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그는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앞으로 잘 진행하던 구급차가 교차로 바로 앞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차량 한 대 때문에 한참을 서 있었고 결국 신호가 바뀌고 나서야 앞차를 추월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운전자는 여성 노인이었다. 소방대원은 주로 노인이나 외국인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소방차량에 길을 비켜주지 않았을 시 부과되는 범칙금은 겨우 20유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노인이 탑승한 관광버스 화재로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현장에 당시 양보하지 않는 차량으로 인해 소방대가 제때 도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공분을 사게 됐고 이를 계기로 범칙금이 현재는 200유로로 크게 올랐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소방차량 출동 시 양보를 하지 않는 차량 운전자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러시아가 80유로, 룩셈부르크 74~145유로로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다. 최대 2,180유로를 부과하는 오스트리아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이렇게 언급한 여러 사례를 통해 독일소방도 출동시 통행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힘들다는 것이지 우리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또 소방대가 출동하는 청사가 많다는 점도 우리와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독일도 소방차량 통행에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해결 방법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참고한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사항으로 더 적어본다.
2015년 독일의 유력 인터넷 언론(Der Postilion)에서 보건부와 교통부가 구급차 앞에 통행을 방해하는 차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갈 수 있도록 제거장치를 장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와 영상이 나오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신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동과정에서 구급차의 파손과 탑승한 환자의 안전을 고려할 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에 넘어져 있는 차량은 아직 구급차가 충돌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또한, 정부의 정책추진이라는 보도임에도 이 기사 외에는 어떠한 언론도 보도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면서 베를린소방서의 국장에게 관련 보도에 대해 문의하였는데, 그는 전혀 들은 바 없는 가짜뉴스일 것으로 추정한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구급차가 통행을 방해하는 차량을 밀고 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다.  ©기고자 제공

관련 동영상(https://youtu.be/mz5g_hO4rtE)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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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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