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3일, 31세 청년 고 김범석 소방관은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직무수행을 하던 중 발병한 심장혈관육종으로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가족은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와 태어나 돌이 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에게 ‘소방관 아빠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유족의 소 제기와 기각선고의 과정을 보면 2015년 9월 1일 공무원연금공단에 고 김범석 소방관 사망을 공무상 재해 인정과 유족보상금지급 청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2015년 10월 23일 공단에서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을 했고 유족은 불복으로 재심 심사청구를 했습니다.
2018년 10월 10일 또다시 혈관육종이 발병한 강화소방서 소방관의 혈관육종 진단서를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에서 득해 법원에 제출하고 2019년 1월 현재 2차 소송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 변론과 판결일 결정을 앞두고 결과를 기다리는 실정입니다.
유족으로서 헌신했던 소방관이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알리고 국가가 버린 소방관의 명예를 찾기 위한 과정도 한낱 허공을 향한 허무한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기각 판결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해냈던 엄중한 과정들이 희귀암이란 질병 앞에 따라다닌, 그 누구도 입증하지 못한 인과관계라는 하나의 이유로 위험직무 전체가 부정되고 있는 법의 강제에 의해 자신의 생애 모든 것을 국가에 내어준 소방관의 죽음의 가치가 무참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구조하는 위험직무 소방관이 현장의 발자국으로 새겨진 자기희생의 과정과 헌신의 가치야말로 재해를 입은 자에 대한 공적으로 입증된 인과관계 그 자체임을 인정할 때 소방관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함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 두 번을 죽어야 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값진 희생의 과정을 부정하는 법만 존재하지 헌신과 목숨을 국가에 내어준 희생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명예를 기리고 유족에게 따스한 손을 내미는 상식에 맞는 법은 없는 것입니까?
희귀병이란 불명예를 지고 이름 없이 죽어간 그들을 생각할 때 국가가 입증하지 못한 인과관계를 설정해 놓은 비상식적인 제도 아래 살아생전 구명현장에서 자기희생의 참모습과 재난 현장에 묻혀진 최소한의 인권마저 인정받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험직무 소방관의 재난현장 투입은 국가가 내린 명령입니다. 그에 따라 목숨을 건 활동 중 희귀질환으로 죽어간 그들에 대한 최종 책임을 국가가 지지 않는다면 국가 스스로 그들 구명장비 뒷면에 보이지 않은 한 줌의 인권마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살아생전 헌신이란 무거운 소임에 가려진 그들의 기본적 삶의 욕망과 그래도 마지막엔 소방관이란 이름으로 남고자 했던 작은 소망, 죽어서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명예와 최소한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일반적 상식으로 생각해 보건대, 국가가 현장직무 수행과정을 외면하고 있는데 타인의 생명을 대신한 의로운 죽음의 인과를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국가를 믿고 온 몸을 던졌듯이 국가는 그들의 선 봉사 후 희생의 과정과 제복에 새겨진 이름을 지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는 위험직무 소방관의 희귀질환 발병과 죽음에 대한 불명확한 인과를 의학적인 설명만으로 회피하지 말고 발병 전 수백 수천의 현장직무 과정과 죽어간 자들의 절망과 고통을 피부로 느껴본다면 그들이 마지막 눈 속에 담아간 유족의 아픔을 치유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몫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유족의 숯검정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국가에서는 유공에 대한 공훈을 기리고 헌신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그분들의 사심 없는 활동과정과 희생정신의 가치를 높이 삼으로서 명예를 내리고 유족을 보호하는 것이지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 죽음 그 자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방관은 그 자체로만 보면 소방공무원일 뿐이지만 재해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며 구명을 위해 뛰어드는 행위는 소방관이기 이전에 자기희생이 각오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온갖 유독성 물질과 물리적인 위험을 온몸으로 이겨낸 출동현장 자체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살려내고 재산을 보호하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으며, 그러한 직무수행 과정 자체가 소방관에게 일어나는 희귀암과 정신적 질병, 외상 등에 대해 이미 입증된 인과관계로 인정돼야 옳지 않겠는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소방관의 업무가 발암 연관성이 높은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발병과 사망 통계가 보여주고 있듯이 현장직무 소방관에 대한 질병의 인과관계는 국가가 입증함으로써 헌신에 대한 명예 회복과 최소한의 보훈으로서 소임을 다한 후 사라져간 그들에게 국가의 책임 또한 다 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국가는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묻지 말고 왜 죽었는가를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난 속의 국민을 대신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공무원이건 일반 국민이건 공동체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자기를 버리면서 희생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그 뜻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여기 힘없는 칠십 노인은 31세 아들을 국가에 바쳤다는 스스로의 위안으로 살아가지만 자식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젊은 아들이 먼저 가고 늙은 아비가 유족이 돼 있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깊으며 일찍 가버린 그의 빈자리가 허망하고 저희와 같은 소방 가족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늦게나마 인사를 드려야 할 분들, 대한민국 소방관으로서 불꽃같이 살다가 이슬처럼 떠나간 순간부터 이승에서의 장례절차를 진행했고 주황색 소방복과 땀에 젖었던 육신을 태우고 처연한 유골로서 헤어진 마지막까지 동참해 주신 고 김범석 소방관의 동료, 선후배 그리고 이승의 인연으로 찾아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개선은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과제입니다. 그들의 위험직무 특성상 보이지 않은 질병 감염의 인과관계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직의 그들은 살아생전 언젠가는 몸에 큰 탈이 날 거라는 불안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소방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정감으로 바꿔야 하며 국민의 생명을 구명구조하는 본연의 직무에 열정을 다하도록 국가의 실질적 제도개선과 위험직무 소방관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모든 국민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이 국가의 목표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 과정과 탁상 위의 정무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안전의 한 축을 더욱 단단히 쌓아야 합니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개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도개선을 통해 업무 중 희귀질병으로 생을 마감한 그들의 화재진압과 구조구급, 그리고 수방의 출동 과정을 인정하고 질병 감염의 인과관계는 국가가 입증함으로써 헌신에 대한 옳은 행정을 구현하는 것이 국민의 상식에 맞는 제도라고 감히 적어봅니다.
재난 현장에 이름을 묻고 가신 소방관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2019년 1월 초
엄동절기에 소화구명장비와 수방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김정남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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