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소방관은 국가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터뷰]정은애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

유은영 기자 | 입력 : 2019/03/25 [10:23]

▲ 정은애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     © 유은영 기자


[FPN 유은영 기자] = “피땀으로 표현되는 현장은 결코 기획 또는 행정을 하는 그 가치보다 작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피_더 펜’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됐죠. 이 구호가 단순히 제도개선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현장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1984년 전북소방에 입문한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은 민원부서와 행정부서, 119안전센터 현장대원, 119상황실 근무 등을 지냈다. 2007년부턴 현장지휘조사팀장, 센터장 등을 역임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도나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을 키웠다.


올해로 35년차 소방관이 된 그는 지난해 4월 고 강연희 소방경이 주취자로부터 당한 폭언과 폭행 사고에 지금도 밤 잠을 설친다. 고 강연희 소방경은 당시 사고 직후부터 불면증과 어지럼증, 딸꾹질 등을 지속하다가 뇌동맥 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숨을 거뒀다. 고 강 소방경과 정은애 센터장은 함께 인화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한 동료였다.


하지만 지난 2월 13일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심사위원회는 고 강 소방경의 죽음을 위험순직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고도로 위험하지 않다’, ‘폭행사고와 사망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부결 소식을 전해 듣고 심사하는 의사나 변호사, 고위공직자분들이 위험 현장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현장을 알면서도 저런 결정을 내렸겠나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런데 위험직무순직 심의 과정에서는 현장 전문가는커녕 참고인 진술조차 할 기회도 없었어요”


정 센터장을 중심으로 전국의 소방관 200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지난 4일부터 1명씩 돌아가며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시위에는 고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부결이 곧 정부가 현장의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분노와 설움이 담겼다.


“업무 매뉴얼 상 소방관은 100% 위험하지 않으면 위험을 감수하고 활동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직무순직 심사가 100% 위험한 현장 상황만 인정하겠다고 한다는 건 사망을 해도 국가가 그 희생에 대한 예우를 해줄 수 없다는 것과 다름 없는 거죠. 이런 믿음이 없다면 그 어떤 소방관이 위험 현장에 뛰어들 수 있을까요”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이 1인 시위는 잠정 보류된 상태다. 인사혁신처가 일선 소방공무원의 외침에 귀 기울여 제도개선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우리의 희생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국가를 상대로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헌법적 권리인 생명권 위협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할 것입니다. 국가의 의무인 국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위협하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예우를 해주지 않는 모순되고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거부할 거고요. 물론 과정이 공정하면 당연히 결과도 정의로울 거라 믿습니다”

 

▲ 정은애 센터장은 ‘#피_더 펜’이라는 이름의 1인 시위의 선발자로 나섰다.     ©소방방재신문

정은애 센터장이 1인 시위를 주도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6월에도 광화문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2012년 군산에서 물탱크에 추락한 인부를 구하려고 들어갔던 구조대원이 순직한 사고가 있었다. 선임 구조대원들이 교관으로 차출돼 경험 적은 구조대원이 현장에 출동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부른 참사였다.


인원을 충원해서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함이 옳다고 믿었지만 지휘부는 “지방직이라 예산이 없어 인원을 보강하기 힘들다”고 답변했다. 이 일이 그녀를 1인 시위자로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아무말도 못하고 지켜만 보다가 또 이런 일을 겪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직에서 찍히거나 국민들께서 소방관이 뭘 해달라고 떼쓴다고 오해하고 욕할까봐 두려워서 침묵을 한다면 오히려 제가 죽는 것보다 못할 것 같았습니다”


1인 시위는 말 그대로 외로운 싸움이었다. 당시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사주를 받아 국가와 정부를 비난하는 거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국민의 뜨거운 응원들이 이어졌다. 그 응원은 주춧돌이 돼 정부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본격 논의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대한민국의 재난을 책임지는 ‘소방’은 과거 노후화된 개인 장비조차 교체하지 못해 비번 직원 것을 돌려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여건이 개선될 여지조차 없었죠. 국민에게 공평한 소방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은 국가직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수많은 소방공무원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구조, 구급, 화재진압 등의 소방활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국민과 소방관의 목소리가 한결같이 이어졌고 드디어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소방청의 독립이 이뤄졌고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국가직으로의 신분 전환을 앞두고 있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필요성은 정부와 정치권, 많은 국민이 관심을 주신 덕에 이뤄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저 잘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고 있죠”


정은애 센터장은 특별히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그냥 현실에 맞서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소방관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기도 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에 부당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정 센터장은 믿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국민의 가슴을 울려 한 번쯤은 되돌아봐 줄 거라는 게 그가 강조하는 믿음의 가치다.


“소방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현장 대원들의 피땀과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주는 국민의 열화 같은 성원 덕분이에요. 그런 국민들에게 더 없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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