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기자의 눈] 담뱃값, 차라리 119원 내려주시죠

광고
이재홍 기자 | 기사입력 2017/06/23 [10:43]

[기자의 눈] 담뱃값, 차라리 119원 내려주시죠

이재홍 기자 | 입력 : 2017/06/23 [10:43]
▲ 이재홍 기자    

[FPN 이재홍 기자] = 2015년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담뱃값이 2,000원이나 올랐다. 정부가 밝힌 공식 이유는 흡연율 감소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다수의 경제학자는 심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격정책 도입을 우려했고 실효를 거두지 못하리라 전망했다. 순간적으로 급감했던 담배 판매량은 이내 제자리를 찾았고 지난해 담배 수입액은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담뱃값 인상을 확정 짓기 전,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정부는 인상의 당위성을 증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여기서 담배에 대한 sin tax(죄악세) 개념이 등장했다.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 발생률이 전체 2위(1위는 전기)에 해당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조명이 이어졌다. 장갑이 지급되지 않아 사비로 구입하는 소방관들, 그들에게 장갑을 사줘야 한다는 논리가 ‘소방안전교부세’를 낳았다.

 

담뱃값 인상과 ‘소방안전교부세’ 신설이 확정되자 물밑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안전처 내 중앙소방본부는 어떻게든 더 많은 예산을 끌어오려 애썼지만 노련한 일반직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최초 ‘소방교부세’로 기획됐던 예산은 ‘소방안전교부세’로 바뀌었고 소방에는 2,000원의 인상분 중 단 118.8원 만이 주어졌다. 교부 권한마저 소방의 총수가 아닌 국민안전처 장관에게 돌아가면서 ‘소방안전교부세’는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 외에 교량과 댐의 보수, 도로 정비 등에도 쓸 수 있는 예산이 돼버렸다.

 

여론이 들끓고 국회의 지적도 쏟아졌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노후 소방장비 교체의 시급성을 고려해 3년간(2017년까지) 소방 분야에 75% 이상 투자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처음부터 소방에 쓰기 위해 마련된 재원이건만,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3년간 한시적인 75%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로 내려간 ‘소방안전교부세’는 역시나 본래의 목적을 다 하지 못했다. 갑자기 내려진 교부세는 지자체에 있어 생색내기 좋은 ‘공돈’이나 다름없었고, 때는 공교롭게도 20대 총선(2016년 4월 13일)을 목전에 둔 시기였다. 처음 교부세가 내려진 2015년부터 2016년 상반기(6월 23일 기준)까지 각 지자체는 도로와 하천ㆍ산림 정비, 시설물 점검 등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에 수십에서 수백억 원을 편성했다.

 

소방청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 연간 4,000억 원(올해 4,588억 원)이 넘는 ‘소방안전교부세’의 교부 권한이 또다시 행정관료에게 넘어갈 모양이다. 전체 소방 예산(4조588억 원) 10%에 해당하고 중앙소방본부 예산(1,045억 원)의 네 배가 넘는 금액이다. 소방 조직의 허울뿐인 독립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장관이 집중 투자를 약속한 3년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 사이 안전처는 “노후ㆍ부족 소방장비 개선사업을 예정보다 빨리 마무리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다. “소방차만 바꿔주면 불이 꺼진다더냐” 인력이 없어 펌프차에 두 명이 타고 출동한다는 한 지방소방관의 푸념은 중앙정부까지 닿지 못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족한 소방의 현장 인력은 1만9,254명에 달한다. 노후 소방장비 교체만으로 자축하기에 여전히 소방력은 부족하고, 소방관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인력이 없어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가 안타깝게 순직한 구급대원 故 강기봉 소방교. 그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건 독립 소방청도, 국가직도 아니라 그저 소방관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소방안전교부세’는 그런 수많은 강기봉 소방교의 희생 위에 만들어졌다. 더 이상 소방에 집중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차라리 담뱃값에서도 119원을 내려라. 하천이나 도로는 담배 때문에 넘치거나 유실되지 않는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