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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씨 인재 영입

오영환 “공공안전 위해 희생하는 분들께 몸 던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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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1/07 [10:40]

더불어민주당 ‘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씨 인재 영입

오영환 “공공안전 위해 희생하는 분들께 몸 던질 것”

최영 기자 | 입력 : 2020/01/07 [10:40]

▲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영환 소방관  © 최누리 기자


[FPN 최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 다섯 번째 인재로 소방관 오영환 씨를 영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위원장 이해찬 대표)는 7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 인재로 전 중앙119구조본부 항공대원 오영환씨(31세)를 영입한다고 밝혔다.

 

오영환 전 소방관은 지난 2015년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청년 소방관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방관의 노고와 열악한 처우를 그려낸 이 책을 출간한 오영환 소방관은 인세의 약 86%를 순직 소방관 유가족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기부해 왔다.

 

2010년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으로 소방에 입문한 그는 서울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와 성북소방서를 거쳐 최근까지 중앙119구조본부에서 현장 대원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그간 현장 대원으로 복무하면서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는 소방관들의 땀과 눈물을 알리는 일에 묵묵히 앞장서 왔다. 소방관들의 애환을 담은 ‘어느 소방관의 기도 - 세상이 우리를 잊어도 우리는 영원한 소방관입니다’라는 저서는 제1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소방관과 가족을 응원하는 캘린더리를 비롯해 시각장애인을 후원하는 선글라스 브랜드 모델 등으로도 활동하면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국민에게 알려왔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광화문에 나가 소방공무원 국가직화를 외치며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강연과 홍보활동을 오면서 ‘청년 소방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오영환 전 소방관은 입당식에서 “평생을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으로 살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꿈이자 삶의 가치였기 때문”이라며 “이제 저는 평생의 꿈을 접고 정치를 시작한다.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많은 선후배 소방관들, 그리고 공공의 안전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이 우리 사회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저를 던지는 것 또한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경찰, 군인, 국민을 위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제복 공무원들이 당당하고 마음껏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제 나이 스물한 살 때 강풍으로 파도에 휩싸인 10살 어린 소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적이 있다. 깊은 수심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소녀의 손길이 닿았을 때 그 작은 손의 놀라운 힘을 기억한다. 정치를 시작하는 지금 그 간절했던 소녀의 손길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의 장례업체 버스를 운전하는 아버지와 보험설계사를 했던 어머니를 둔 오영환 소방관은 2015년 스포츠클라이밍 여제로 유명한 김자인 씨와 결혼한 이후에도 소방관의 활동을 알리는 데 힘써 왔다.

 

다음은 오영환 소방관의 프로필과 영입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 오영환 소방관 프로필
△1988년 경기 동두천 출생
△2006년 부산 낙동고등학교 졸업
△2010년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
△2012년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
△2015년 성북소방서 현장대응단 구급대원
△2016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졸업
△2017년 중앙119구조본기회부 항공대원(2019.12 퇴직)

 

■ 기자회견문 전문

안녕하십니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살아 온 서른한 살 청년, 오영환입니다.
 
저는 청소년시절부터 소방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열여덟 살 때 우연히 TV뉴스 속 화재 현장에서 한 중년 여성의 절규를 봤습니다. 

 

처절한 절규 속에 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때부터 삶과 죽음의 갈림길, 사람의 생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저는 사람을 구하고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학원 대신 식당, 피시방,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만큼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이었지만 오직 소방관이 되겠다는 일념 뿐 이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무 살부터 소방시설관리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의무소방대에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렇게 소망하던 소방관이 됐습니다.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소명의식을 버려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면 구할수록 더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커집니다. 눈앞에 있는 생명을 보고도 끝내 구하지 못하는 소방관의 상처는 목숨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깊고 아픕니다. 지금도 많은 소방관들과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국가공무원들은 눈앞에서 도움을 줄 수 없어 죽어가는 동료와 재난의 피해자들을 지켜봐야 합니다. 그 아픔과 트라우마 때문에, 온몸을 칭칭 감은 호방호스보다 훨씬 더 무거운 절망과 죄책감으로 해마다 너무 많은 소방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소방관은 영웅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영웅을 꿈도 꾸지 않습니다. 동료가 죽어 나가야만 열악한 처우에 겨우 관심을 보이는 현실, 함께 화재현장을 누비던 동료가 암에 걸려도 소방업무와의 연관성을 직접 밝혀내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 소방관들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하고 더 지키지 못해 눈물짓고 있습니다.  

 

이 땅의 소방관들 소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소방청 독립에 이어 작년 10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이 천신만고 끝에 통과됐습니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을 국가공무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구급활동을 국가사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정치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 정치가 국민들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있는지, 참으로 슬펐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저의 동료들은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화재현장에 진입하고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정치에 꼭 한번 묻고 싶었습니다. 국민들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꼭 들어가야 할 예산을, 포퓰리즘이라 표현하고 퍼주기라고 막말하는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 맞습니까?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안이 왔을 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며칠 밤을 뒤척였습니다. 평생의 꿈, 명예로운 소방관 직업을 내려놓기도 싫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결심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낮이나 밤이나,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해 필요한 법과 제도와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소방관 그리고 공공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감히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절박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더 절박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구조대원으로 현장에서 느꼈던 법과 현실의 괴리,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는 뼈아픈 현실을 이제 정치를 통해 바꿔보고 싶습니다.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홀로 죽음을 맞이하시는 어르신들,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숨이 끊긴 작은 아이, 삶이 고달파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제 또래의 젊은 청년들, 저의 미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이 땅의 구조적인 문제들입니다. 이 비참한 현실 앞에서 꿈 많던 청년소방관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평생을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꿈이자 삶의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평생의 꿈을 접고 정치를 시작합니다. 한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많은 선후배 소방관들, 그리고 공공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이 우리 사회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저를 던지는 것 또한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경찰, 군인, 국민을 위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제복 공무원들이 당당하고 마음껏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제 나이 스물한 살 때, 강풍으로 파도에 휩싸인 10살 어린 소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깊은 수심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소녀의 손길이 닿았을 때 그 작은 손의 놀라운 힘을 기억합니다. 정치를 시작하는 지금 그 간절했던 소녀의 손길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국민이, 아픈 국민이, 안전한 일상이 필요한 국민이 내미는 그 간절한 손길을 꼭 붙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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